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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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시대가 가진 모든 면면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 당대의 목소리와 관심사를 조망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최근 읽은 책 <외사랑>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품이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현대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사랑>은 200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외사랑? 짝사랑? 워낙 스릴러의 거장이기에 남녀 간 사랑을 둘러싼 치정물 같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하며 책장을 펼친다. 주요 등장인물의 공통된 배경은 졸업한 데이토대학 미식축구부 동료들이다. 미식축구부의 여자 매니저 '히우라 미쓰키'가 팀의 쿼터백이며 리더였던 '니시와키 데쓰로'에게 털어놓는 살인사건의 전말과 그 뒤에 숨겨진 믿기 힘든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제법 흥미롭다.

독자를 이야기의 미궁 속으로 안내하는 게이고 작가의 기술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1000피스짜리 퍼즐을 방바닥에 흩뿌려 놓는 것만 같다. 책의 전면에 깔린 큰 주제는 젠더 이슈다. '성 정체성 장애'를 겪고 있는 팀의 여자 매니저였던 미쓰키는 남성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녀의 생물학적 성은 엄연히 여성이다. 남성을 갈망하며 남성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고백하는 미쓰키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과의 역학적 관계가 밀도 있게 펼쳐진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다고 정의 내리는 게이고 작가의 독특한 통찰에 눈길이 간다. 완전한 남자, 완전한 여자가 없음을 이야기하며 남성안에 존재하는 여성성, 여성안에 존재하는 남성성에 대한 그만의 진실을 소설 속 지면을 빌려 이야기한다.

지금도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와 같은 이슈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는 주제다. 그런데 작가는 이처럼 상당히 예민한 주제를 무려 20여 년 전 자신만의 필치로 쏘아 올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시대를 앞서는 선견지명을 갖춘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가 보다.

작가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인물을 대학 미식축구부라는 아마추어 스포츠팀의 구성원들로 설정했다. 왜 그랬을까? 책은 살인사건, 젠더,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 사회적 책임감과 인식의 문제,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호적상의 차이가 갖는 갈등, 스포츠 팀 안에 내재한 성별의 문제와 비뚤어진 시각 등 다양한 이슈들이 서로 치열하게 치받는 것이 마치 미식축구 경기에서 양 팀의 선수들이 볼을 쟁취하기 위해 진을 짠 상태로 벌이는 스크램블을 연상케한다.

작가는 책이 갖는 내용상 혼재를 미식축구라는 스포츠에 대입했고, 그것을 팀원들의 역할에 맞게 부여하는 치밀함으로 설정했다. 팀의 리더인 쿼터백 데쓰로는 사건의 모든 전말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처음부터 결말까지 끌고 가는 소설 속 주인공(리더)이다.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며 팀의 리더답게 자신만의 감각으로 사건을 조율한다.

반면 실제 살인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로서 등장하는 '나카오'는 미식축구에서 볼을 잡고 날렵하게 뛰는 러닝백이다. 이야기 속 나카오의 역할이 책의 끝까지 스토리의 핵심인 볼을 잡고 상대팀 수비수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달리는 러닝백과 같다.



쉽게 양보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 간 충돌의 가장 큰 핵심은 윤리로 대변되는 전통적 가치관과 시대가 급속도로 변화하며 생겨나는 새로운 시대의 어젠다다. 작가의 집필 의도는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짤막한 메시지 속에 압축되어 있다.

다양한 사람을 생각하며 썼다는 것!

사회적 윤리 문제에 봉착하여 이미 난항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의 이면을 바라볼 때 이 작품의 진의를 발견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젠더 문제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이 아니다.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젠더를 통해 바라본 우리 사회가 갖는 배타적 통념에 대한 일갈이다. 이질적인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사회가 가진 뿌리 깊은 배타성에 대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현대판 버전을 보는 것만 같다.

분명 게이고의 이 책은 킬링 타임용 소설이 아니다. 스토리 속에 현재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성찰을 철학적으로 녹였다. 세대, 인종, 성별, 종교, 지역, 민족, 국가 간의 다양한 갈등의 문제가 중첩된다. 이렇듯 게이고의 시대를 앞선 문학적 시각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고민하며 체감하는 문제에 대해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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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한국사연구소 지음 / 챔프스터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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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바른 역사 관점, 즉 올바른 사관을 갖기 위한 것이다. 사관이 없거나 잘못된 사관을 가질 때 시대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총체적 세계관이 망가진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바른 역사 교육과 사관을 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중요성이 인정되서인지 요즘 공공기관과 다양한 영역에서 한능검 자격 검정 등급을 채용 필수 서류로서 요구하는 곳이 많다.

좋은 기회가 주어져 <2022 해커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회차별 기출문제집 심화(1,2,3급)>을 만났다. 같은 출판사의 시대별 기출문제집과 함께 볼 수 있었기에 두 권의 수험서를 비교하기 용이했고,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차별 기출문제집은 2020년 10월 시행된 50회 시험부터 최근 6월에 시행된 59회 시험까지 총 10회에 걸친 기출문제를 전문 수록했다. 분량에서부터 놀랍다. 10회분의 기출문제를 풀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수험생들에게는 시쳇말로 혜자스럽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책의 전면에 붙어있는 뭔가를 보고 거의 전율했다. '시험장까지 가져가는 합격생 필살기 필기노트'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소책자였다. 다름 아닌 완벽 요약 핵심노트다.

시험장에 들어가서 감독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 긴장되고 짧은 시간에 수험생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두툼한 개념서를 꺼내볼 것인가? 아니면 이미 풀어서 완벽히 숙지된 문제집을 꺼내볼 것인가? 말 그대로 필살기 노트는 그 짧은 자투리 시간을 완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무기다.

필살기 노트를 보고 적잖이 놀랐고 흥분했다. 노트는 두 파트로 분류된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시대까지 필수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건과 포인트를 타임라인 상에 완벽 복원했다. 그뿐인 줄 아는가?

다른 챕터에서는 주제별로 핵심 요약을 정리했는데 이게 또 신의 한 수다. 가령 많이들 혼돈하는 다양한 국가의 통치제도, 수취제도, 토지제도, 교육제도와 같이 테마별 내용을 필살기 노트에 담았다. 각종 유물과 유적지 사진들을 모아서 시대와 연관시키는 문제에 대비토록 했다.

정말 여기서 해커스 편집팀의 학습 아이디어에 전율했다. 다년간의 수험서 출판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하면 수험생이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또한 본서의 구성적 특징은 책이 정답 해설집과 분권되어 있다는 점이다. 10회에 걸친 회차별 기출문제를 풀고 분권되어 있는 약점 보완 해설집을 통해 채점을 한다. 그런데 이 해설집에 눈여겨볼 만한 특색이 있다. 단순한 정답 해설집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약점을 보완하고 해설해 주는 정답집이다.

각 문제의 정답과 오답을 체크해놓았고 노란색 형광펜으로 왜 그 문제가 정답이고 오답인지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 달렸다. 마치 '빨간펜 선생님'의 친절한 첨삭 지도를 받는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책의 백미는 시대별 기출문제집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 모바일 기출문제집이다. 책의 앞장에 2016년 30회부터 2020년 49회까지의 회차별 기출문제집이 QR코드로 수록되어 있고, 역시 QR코드로 선사 시대부터 현대 시대까지 시대별 기출문제집을 볼 수 있다.

더불어 본서가 참 잘 만들어진 책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마지막 포인트는 모바일 회차별 기출문제집에서 각 회차별로 과거 그 회차의 출제경향이 깨알같이 코멘트 되어 있다는 점이며 모바일 시대별 기출문제는 시간이 없는 수험생들에게 우선적으로 풀어보고 갈 수 있도록 별표로 중요도를 표시해놓았다는 점이다. 수험생에 대한 무한 배려다.

이론 학습을 완벽히 끝내고 과거 출제경향을 분석하며 실전 감각을 쌓기 원하는 수험생들에게 안성맞춤인 교재다. 함께 출간된 시대별 기출문제집과 병행하며 다양한 문제를 풀이할 수 있다면 시험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22 해커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회차별 기출문제집 심화(1,2,3급)>은 한능검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는 최적의 교재가 될 것이고, 단순히 자신의 현 한국사 실력을 점검해 보기 원하는 사람에게도 자체적으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역사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과거를 알 때 현재를 볼 수 있고 미래를 예단할 수 있다. 정확하고 바른 사관과 건강한 역사 인식이 바른 인간과 사회를 양산한다. 좋은 교재 한 권으로 그 첫걸음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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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한국사연구소 지음 / 챔프스터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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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역사(국사, 세계사)였다. 고등학교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시대까지 노트 한 권에 연대별로 주요 사건을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할 정도로 역사 마니아로서의 열정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역사와 관련된 다큐나 책들을 참으로 좋아했는데 졸업 후 머리에 남아 있는 역사 지식은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유명한 사건들 위주의 단편뿐이다.

"역사를 잊는 자, 미래가 없다!" 했는데 나는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래가 암울할 정도로 역사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을까?

이런 상념 속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대한 관심이 샘솟는다. 요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각종 공무원 시험은 물론이거니와 주요 공기업, 사기업 등에서 한국사 능력 자격 등급을 요구하기에 그렇다. 뭔가 요구하기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역사가 좋고 더 알고 싶어서 학구열이 불붙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좋은 기회에 수험서 전문 출판사 해커스에서 출간한 <2022 해커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시대별 기출문제집 심화 1,2,3급>을 만났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점은 역사 공부는 시대별 흐름의 맥을 잘 익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EBS 수능 한국사를 통해 공부할 때 강사분이 항상 강조한 것은 시대별 흐름이다. 역사는 단편적이지 않고 연속적이며 포괄적이다. 머리와 팔다리가 따로 놀 수 없듯 역사는 하나의 몸통으로 이어진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시대별 흐름과 전후 사건의 연관성 속에서 큰 그림을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실제 문제를 접했을 때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수능과 한능검의 출제 패턴 중 두드러지는 특징 하나가 바로 임의의 두 가지 시대적 상황과 사건을 제시하고 가운데 시대를 비어두는 경우다. 시대별 흐름의 연관성을 모르면 결코 풀기 어려운 문제 유형이다.

<2022 해커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시대별 기출문제집 심화 1,2,3급>은 바로 이러한 문제 유형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기출문제집마저 시대별로 구성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단원을 시대별로 나눠 그 시대에 중요한 사건과 이슈를 묻는 문제들을 수록했다.

또한 기출문제집답게 전혀 새로운 문제들이 아닌 지금까지 치러진 '한능검'시험에서 이미 출제되었던 빈도수가 높은 문제들을 위주로 구성했다. 그렇기에 시험을 목전에 둔 수험생들에게는 이론 학습을 완벽히 마친 후 최종 점검을 해볼 수 있는 매우 좋은 교재다.

각 챕터가 시작되는 초입에는 주제별 기출 트렌드가 제시된다. 달리 말해 핵심 키워드다. 자주 출제되는 문제와 관련된 키워드만 잘 알고 있어도 문제 접근과 해석이 한결 쉽다.



개인적으로 본 교재가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편집은 바로 시대별 기출문제와 해답 해설을 한 장에 양쪽 페이지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문제를 풀고 바로 옆에 정답과 오답 해설이 데칼코마니와 같이 대조되어 있다. 문제를 풀고 정답풀이를 위해 책의 뒷면을 넘겨봐야 하는 작은 불편마저 해소시킨 출판사 편집자의 깨알 배려다.

책의 백미는 책의 후반부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Final 실력 점검 기출문제다. 지난 8월에 시행된 제60회 한능검 시험의 문제지가 그대로 붙어있다. 말 그대로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최신 기출 시험 문제지다.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있어 마지막 최종 점검을 통해 마치 실제 시험을 치르는 듯한 실전 감각을 키우도록 하는데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더불어 책의 앞장에는 총 6개의 QR코드가 보인다. 난이도별 모바일 기출문제다. 지금껏 치러졌던 시험 중에서 가장 쉬워서 합격률이 높았던 두 번의 시험과 난이도 중간의 평균 합격률을 보인 두 번의 시험, 가장 어려워서 저조한 합격률을 보인 두 번의 시험을 모바일로 접속해서 풀어볼 수 있다.

한 권의 수험서가 참 다채롭다. 무엇보다도 시대별로 기출문제를 풀어볼 수 있다는 점이 본서의 가장 큰 강점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될 수도 있지만 역사 공부의 시간은 시험이 끝난 후에도 우리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회다. 자신이 태어나 몸담고 살다가는 조국의 기본적인 역사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기에 그렇다.

한능검 시험을 통해 자신의 한국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때 <2022 해커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시대별 기출문제집 심화 1,2,3급>이 효과적인 학습을 돕는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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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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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거대한 향유고래와의 투쟁을 그린 해양 대서사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 멜빌은 한때 포경선 선원이었다. 자신의 체험을 소환하여 집필했기에 포경업에 관한 전문적 배경지식과 묘사가 매우 상세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적인 포경 투쟁의 현장을 묘사한 그의 글이 사뭇 비리다.

멜빌은 자신을 '이슈메일'로 불러달라고 청하는 한 남자를 1인칭 작중 화자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슈메일은 '피쿼드'호라는 포경선에 승선하여 포경 항해를 시작한다. 신비한 베일에 둘러싸인 선장 '에이해브'는 '모비 딕'이라는 거대 향유고래와 싸우다 다리 한쪽을 잃었다. 오직 모비 딕을 잡겠다는 불타오르는 복수심으로 뭉친 에이해브와 모비 딕의 조우, 투쟁은 책의 백미다.

끝없이 이어진 추격 끝에 만난 백경 모비 딕을 향해 복수의 작살을 던졌고 작살줄이 풀려나갔다. 이후 선장과 선원들, 피쿼드호 그리고 모비 딕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740여 페이지의 분량적 무게감이 압권이다. 흰 고래와 인간의 사투가 흥미진진하며 거대한 창조물에 대한 경외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명성이 자자한 본서를 집어 들고 책이 드러내는 다양한 중첩된 의미를 발견한다.

역자는 해제를 통해 책이 갖는 다섯 가지 해석적 관점을 제시한다. 그만큼 책이 내비치는 의미가 다양하다. 외적으로는 단순한 킬링타임용 해양모험소설이다. 하지만 저작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때 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뽐내는 프리즘은 바라보는 관찰자의 위치와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로 수렴된다. 흰 고래 모비 딕은 시대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일종의 문학적 프리즘이다. 독자는 자신의 삶의 정황과 인생의 관점에 따라 모비 딕이 갖는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답은 없다. 해제가 제시하는 모범적 관점이 있지만 책을 덮고 독자만의 관점으로 해석해도 좋다.

어차피 향유고래가 갖는 상징적 수사는 하나가 아니다. 소설 전체가 마치 거대한 수메르어 쐐기 문자판과 같이 코드화되어 있다. 상징과 수사, 은유가 내러티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져있기에 해석은 독자가 모비 딕이라는 프리즘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깊은 심해에 살고 있을 미지의 대상인 모비 딕은 피쿼드호 선원들에게는 자신들의 생활을 책임져 줄 생계의 대상이다. 반면 선장 에이해브에게는 다리를 절단 낸 반드시 죽여야만 할 원수로서의 존재다. 피쿼드호의 선주와 지분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비 딕은 자신들이 나눠가질 몫으로서 노략의 대상이다. 이처럼 소설 속에서도 보이듯 모비 딕을 향한 인물들의 생각은 동상이몽이다.



독자로서 나는 향유고래 모비 딕을 모든 인간 내면 안에 내재하는 실재이지만 실재를 인식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으로서의 존재로서 이해하고 해석했다. 급속한 변화의 물결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관점은 어떤가? 


내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과 갈망의 대상으로서의 미지의 실재가 인간 안에 상존한다. 추격에 추격을 거듭하며 모비 딕에게 작살을 던지듯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형의 실체를 미친 듯이 쫓는다. 바다안개에 싸인 듯 어렴풋한 실체의 불투명함이 모비 딕을 향한 현대인의 감정을 대변한다.

멜빌은 기존 사회의 사상적 틀을 깨야 리얼리티, 진실, 존재의 신비,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비 딕은 바다라는 기존 사회의 포괄성 속 다양함을 담지한 존재다. 각자가 정의하는 가치가 다르고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도 상이하다.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가 그랬다. 노예제도로 사회는 양분되었고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갈등의 화약고였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어떤가? 잡다한 사상의 용광로다. 절대 진리를 인정치 않는 시대사조 속 현대인들에게 모비 딕은 추구하고 동의하는 바가 다른 그 무엇이다.

각자가 진리라고 여기며 굳건히 붙잡은 포경 작살을 저마다의 백경 모비 딕을 향해 힘껏 내던진다. 내던짐의 시간은 일평생이며 나에게만큼은 영원할 것 같았던 아름답고 탄력 있는 젊음이 지나 희끗한 백발이 머리를 덮을 때쯤 우리는 그토록 갈망하며 추격한 모비 딕의 실체를 발견한다.

멜빌은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의 발현은 자신이 고수하는 고착화된 사고적 틀을 깰 때에만이 가능함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멜빌 사후에 더 큰 평가를 받았다는 <모비 딕>. 고전이 갖는 무게감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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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올로구스 -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
피지올로구스 지음, 노성두 옮김 / 지와사랑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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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 <피지올로구스>, 독특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다양한 동식물과 사물이 기독교적 상징물로써 중세 미술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책은 55개의 동식물과 광물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기독교의 성경적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그림에 등장하는 동식물이 표징 하는 의미를 파악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의미가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 중세의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자연의 사물들이 뿜어내는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 그들이 신앙했던 신의 존재와 계시를 묵상했고, 믿음의 교훈과 삶의 실천으로서의 진의를 캐냈다.


'피지올로구스'는 '자연에 대해 박식한 자'라는 의미로서 작자 미상의 책 이름임과 동시에 그 자체가 익명 저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혼용되었다. 초기에 민담으로 전해지다가 AD200년 경 근동지역에서 문자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후 독자들의 염원으로 23년 만에 복간됐다. 중세를 뒤흔든 베스트셀러가 가진 가치와 지위는 이렇다. 중세 기독교 도상학의 등장과 중세 유럽 기독교 건축, 장식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문헌의 가치는 높다.


성경을 읽다 보면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조상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든 뱀이 있다. 그에 반해 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양이 있다. 사탄을 상징하는 뱀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어린 양과 같이 자연의 피조물은 창조주의 탁월한 메타포다.


자연의 피조물을 통해 창조주의 창조 섭리와 사역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중세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발견한 자연적 대상들을 그들의 미술 작품 속에 형상화시켰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신앙한 신에 대한 경배를 완성했다.


반면 종교 서적인지 인문학 도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장르의 모호성은 책을 읽으며 살짝 혼란스러웠던 부분이다.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이라는 부제답게 성경적 메시지로 연결되는 책의 내용과 표현 때문에 그렇다. 다소 상상적인 요소가 혼재하기에 온전히 성경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인용문 또한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했기에 가톨릭적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메시지와 색채가 강한 인문학 장르로 결론 내렸다. 그렇기에 예비 독자들에게 무겁게 볼 필요 없이 가볍고 흥미롭게 독서하길 권한다.



책에 등장하는 55가지의 동식물과 광물 중에는 세상에 없는 상상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레네(사이렌)나 켄타우로스, 유니콘과 같은 존재가 그렇다. 그렇기에 책은 중세 기독교가 가진 신앙의 혼합성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내용들도 많다. '살무사'를 통해 세레 요한이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비난하던 장면을 소환한다. 살무사(독사)의 특징이 이렇다. 어미 살무사의 배를 찢고 나오는 살무사 새끼들처럼 영적 부모인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잡아 죽이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살무사의 새끼들이라고 상징적으로 비유했다.


또한 악어는 마귀로 상징된다. 입을 벌린 채 잠자고 있는 악어의 입에 들어가 목구멍과 내장을 파먹는 수달은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다양한 형상과 회화로 중세 미술의 전성기를 이루어내었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눈에 보이는 실재에 대한 감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와 존재에 대한 믿음과 결부된다고 확신했다. 비가시적 절대자는 분명 가시적인 세상 속에 그의 존재 여부를 투영시켰을 것이며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이 분명하다는 확신 속에 '피지올로구스'와 같은 저작이 구전으로 탄생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고 신앙하는 나약한 인간의 믿음, 높은 문맹률의 대중에게 복음을 가시적으로 효과 있게 전하기 위해 고안된 중세 기독교의 다양한 형상들의 이해는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진리의 핵심을 전달하는 일은 수신자가 글을 모른다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송신자의 진실성과 투명함에 있다. 중세에는 그것이 없었고 지금의 시대에도 그것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중세의 것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떠한 반성도 없다.


책을 통해 생각이 짙어진다. 작은 기독교 도상학 책 한 권을 통해 중세의 기독교를 돌아보고 지금의 기독교를 성찰한다. 위에서 가볍고 흥미롭게 읽기를 권했다. 하지만 책이 쓰이고 전해진 의미를 조금만 깊이 숙고해 보면 더 많은 것을 건져낼 수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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