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국내 유일 장별 해설 수록 현대지성 클래식 77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현동균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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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내려가면 기업은 고용을 늘릴 것이고, 급여를 받은 사람들의 소비와 저축의 증가는 기업을 위한 소득과 재투자로 이어져 경기는 활성화되며 시장경제는 스스로 균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실물경제는 기계의 매뉴얼과 같이 정확한 수학적 공식대로 결괏값이 도출되지 않는다. 시장경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아서 때마다 바뀌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상황과 미래 변동이라는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장경제의 현상을 일관된 틀에 박제화시킨듯한 느낌의 고전적 견해와 달리 경제 화두를 철학적 지평 위에서까지 조망하며 인간 본성의 영역까지 관통한 위대한 경제학자의 저작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 현대지성 펴냄>이 현대 자본주의 시장판에도 심심찮게 소환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1936년 발간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은 주류 고전 경제학 이론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반론을 통해 거시경제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기념비적 저작이다.

책은 총 6편 24장 5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중량적 무게감과 정치경제학 고전으로서의 진중함을 두루 갖추었다.



케인스는 기존 고전 경제학의 약점과 한계에 대해 치열한 연구와 깊은 사유 끝에 탄생시킨 저작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경제 난제에 관한 대안적 비판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 경제 위기가 찾아왔고, 1933년 뉴딜정책을 통해 정부의 적극적 시장경제 개입이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시장이 스스로 경제적 혼선을 정리할 것이라는 고전경제 이론의 맹점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케인스는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 중 하나를 수요로 보았고, 특별히 유효수요라는 개념은 케인스 이론의 핵심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앞으로 팔릴 것이라는 예측과 믿음 안에서 결정된다. 정해진 디폴트 값 안에서의 예상이 아닌 향후 미래 전망이 기업의 고용과 산출을 자극한다는 견해는 시장경제가 가진 유동성과 생명력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맞물린다. 케인스가 철학을 전공했기에 저작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사유가 알게 모르게 묻어나며 이 또한 본서를 읽어가는 깨알 재미 중 하나다.

본서에는 케인스가 주장한 다수의 이론이 등장하지만 실업에 관한 이해는 참으로 명징하다. 고전학파는 스스로 일하지 않기로 선택한 자발적 실업에 방점을 둔 반면 케인스는 기업이 채용을 하지 않기에 일자리가 없어서 일할 수 없는 비자발적 실업에 무게를 둔다.

청년실업문제와 노인 일자리 문제가 대두된 작금의 한국 사회 현상 속 실업은 케인스가 주장한 일하고 싶은 욕구가 넘치지만 일자리가 없는 비자발적 실업의 형태다. 위에서 언급했듯 기업은 잘 팔릴 것이라는 미래 예측과 전망 안에서만 움직이는 집단이다.

가령 S 전자가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출시하려고 할 때 예상되는 유효수요의 전망이 직원 채용과 공장 가동의 문제를 결정한다. 기업은 결코 현재의 경제 상황, 즉 올해 많이 팔리고 있다고 채용을 늘리며 새로운 설비를 무분별하게 확충하는 나이브 한 조직이 아니다.

케인스 이론의 핵심은 공급이 아닌 수요가 시장경제 전체의 상황을 움직이며 수요의 부족으로 인한 비자발적 실업과 경기 침체의 위기는 정부라는 제3의 힘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 역할론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warm heart, cool heads' 사람과 사회를 배려하는 공감과 도덕적 능력, 냉철한 논리적 증거와 분석을 통한 판단은 경제학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필요한 미덕임을 보여주는 케인스의 스승 '알프레드 마셜'의 명문이다.

이를 볼 때 따스한 소명의식과 차가운 이성의 머리로 경제적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의 삶을 위해 애쓴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게서 재야의 경제학자 <진보와 빈곤>의 '헨리 조지'의 삶이 오버랩된다.

한 달여간 긴 호흡 속에 읽은 책의 마지막 뚜껑을 덮으며 떠오르는 생각은 경제학의 모든 화두는 인간 본성이 가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한 두려움에서 발아한다는 사실.

더불어 더 많이 갖고 소비하고자 하는 소유에 대한 근원적 욕망과 욕구라는 인간 본연의 모습 속에서 경제학의 모든 시작과 끝이 출발하고 끝맺는다는 이해가 싹튼 시간이다.

본서는 오늘도 지갑을 열고 닫아야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아들들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이에게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훌륭한 정치경제학 저작으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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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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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5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백만 부가 팔린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충격적 저작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완독 후 한동안 넋을 잃고 상념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책 한 권이 던지는 메시지의 후폭풍이 그렇게 클 줄 예상치 못했기에 사유의 갈피를 잃었던 경험이다.

아내, 부모, 남동생이 학살되었고, 여동생과 자신만 살아남았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생지옥에서 생환한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어조가 너무나 담담했기에 소름 돋았다. 그런 그가 생전에 강연한 네 편의 글이 하나로 엮여져 <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 지음 / 북하우스 펴냄>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아비규환의 현장 속 저자가 깨달은 사유의 총체는 전작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밀도 있게 녹아져 있다. 반면 후속작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믿기 힘든 광기의 시대 속 인간 실존의 진짜 의미를 찾고 바른 삶에의 방향을 제시하는 저자의 지성적 혜안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이 인간을 푸줏간 고깃덩어리로 취급한 강제수용소의 현장 속에서 '의미'라는 기괴한 명제를 제시했다. 당장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스실로 들어가 한 덩어리의 시신으로 분하는 공허의 현장 속 의미를 찾는 행위는 그야말로 넌센스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이러한 해괴한 의미 찾기는 '로고 테라피'라는 정신심리학적 기법으로 명명되었다. 그 현장이 바로 지옥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기치 않는 갈망과 그로 인한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를 되새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더라는 것!

사람은 살아야 할 의미를 상실할 때 살아갈 생의 의지를 잃는다. 반면 살아야 할 실낱같은 이유와 명확한 의미를 붙잡은 이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서 아리아드네의 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무사 귀환할 수 있었던 테세우스와 같이 아수라의 현장 속에서 인간 세상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시대를 의미 상실의 세대로 진단한다. 살아야 할 참된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대표적 보상 기제는 쾌락이다. 더불어 공허함은 채움을 갈망하기에 진짜 삶의 의미와 의지를 잃어버린 이들은 인생이 어찌할 수 없다는 숙명론적 태도와 대충 살아가는 삶의 행태를 보이고, 소망이 없는 극강의 허무와 공허함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깊이 배어 나온다.

프랭클 박사의 캐나다 방송 협회 TV 인터뷰 녹취록 또한 흥미롭다. TV 강연 사회자는 저자의 '로고 테라피'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묻는다. 돌아온 답변은 생의 의지와 의미에 관한 저자의 깊은 철학적 사유는 이미 그가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 탄생했고,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오히려 그의 정신심리학 이론을 체계화시키며 그의 확신에 정당성을 부여한 임상의 현장이었음을 말한다.

저자가 삶의 의미를 타의에 의해 송두리째 강탈당하는 경험을 자신의 정신심리학 이론을 확증, 발전시키는 기회로 선용했다는 점이 믿기지 않는다. 수용소 동료들과 자신의 삶으로 입증한 '로고 테라피'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감과 생의 의지를 일깨운 훌륭한 교보재가 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라고 말한 저자의 통찰 또한 예리하다. 참된 의미를 상실한 시대 속 쾌락과 물질적 풍요만을 좇는 현대인의 텅 빈 사고와 공허한 심상은 그 자체가 아우슈비츠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사유함을 고통스러워하는 세대 속 인간 실존이 보이는 삶의 양상은 천사 아니면 악마다. 프랭클 박사 또한 인간은 두 부류가 있는데 품위 있는 인간과 품위 없는 인간이 그것임을 역설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유하며 사회적 연대 책임에 대한 의무를 신성시하는 품위 있는 인간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앞날은 밝다. 인간의 유한성과 필멸성이 인정될 때 잘못에 대한 책임은 강조된다. 시간이 없기에 그렇다. 반면 인간 실존의 불멸성이 강조되면 집단의 과오와 시대적 아픔에 대한 책임은 희석된다. 분명 모두 다 죽지만 영원히 살 것이라는 착각이 집단 책임의 짐을 가볍게 만들기에 그렇다.

타자의 아픔과 책임, 공감 능력의 상실은 별다방 논란으로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며 이는 곧 본서에서 빅터 프랭클이 말한 품위 없는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실례다.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관한 농도 짙은 사유의 작업을 행할 수 있는 <죽음의 수용소 이후>를 통해 품위 있는 인간상에 한걸음 더 다가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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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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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일이기에 교회에 간다. 주일이 돌아왔고, 그래서 예배한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왜 예배하는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주일이고, 신자이기에 관성적으로 예배당을 찾는 일만큼 서글픈 모습은 없다.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는 30년 전 초판 출간 이래로 약 13만 부 이상 팔린 예배에 관한 스테디셀러다.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예배의 모습이 일상화된 우리네 신앙의 현주소에 폭탄을 던진 저작이다.

성도라 칭함 받으며 오랜 시간 예배했지만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습관적으로 자리만 채우고 갔던 수많은 이들의 아까운 시간과 헛된 노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책의 전면에 흐른다.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이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정형화된 틀 안에서 지루함과 졸음, 잡생각으로 점철된 무감각한 예배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드려지는 무력한 예배의 삶에서 탈피하여 진짜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슴 떨리는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자인 김남준 목사님은 우리의 예배가 충분치 않은 이유가 신앙적 무지와 영적 무기력에 있음을 말한다.

신앙적 무지가 예배를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일종의 가벼운 쇼로 만들었고, 이는 곧 쉽게 얻는 구원, 깨어짐과 자기 성찰이 없는 방만한 기독교 신앙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지적한다.



본서는 총 9장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핵심은 예배를 통해 신자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며 생명력 있는 감격의 예배는 신자의 삶을 회복시키고, 회복된 신자의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승화된다.

예배를 견디는 것이 일상화된 우리네 예배 풍경 속 저자의 지적은 제법 매섭다. 예배를 견디도록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설교자에게 있다. 회중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이 설교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값싼 유머를 남발하게 만들며 그것을 듣는 성도의 영혼은 고사되어간다.

깊은 진리의 말씀이 강단에서 사라져 가는 교회의 설교는 설교자의 가벼운 유머와 생각 없는 애드립이 대체한다.

저자는 참된 예배자,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 가지의 방편을 말한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바른 설교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생동감 있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강조한다.

바르게 선포되는 성경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을 때 성도의 영혼은 영적 방종을 성령 안에서의 자유함으로 착각하며 영적 무지로 치닫는다. 진리는 회중의 눈높이에 맞춰 가능한 쉽게 이해되도록 설파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진리 자체의 농도가 옅어져서는 안 된다.

순도 높은 설교는 듣는 이들의 지성을 일깨워야 할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해야만 한다. 한 주간 설교를 준비하는 설교자들이 누구보다 많이 공부해야 하고, 연구에 매진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다.

더불어 예배를 통해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의 두 번째 요소는 순도 높은 설교가 선포될 때 그것을 나의 것으로 취하려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성도의 능동적이며 열렬한 갈망이다. 아무리 설교가 탁월해도 귀를 닫고,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와서 앉아 있다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요원하다.

세 번째 요소는 성령의 일하심이다. 한 주간 목숨을 걸고 준비한 설교자의 순도 높은 말씀, 말씀에 내 삶을 걸겠다는 절박함으로 귀 기울이는 신자의 필사의 예배 태도, 거기에 더해 성령의 임재하심이 더해질 때 죄 고백과 용서하심의 은혜 속 더 깊고 깊은 신령한 은혜의 예배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

그 밖에도 저자는 예배와 삶, 봉헌, 참회, 찬양, 성수주일이라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예배 속 결핍과 회복되어야 할 예배의 참모습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다룬다.



오래전 읽었던 본서의 리뉴얼 복간을 펼치며 가장 기본을 다루는 책의 가치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퇴색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책장을 덮으며 나의 부족함과 죽은 시체와 같이 살아가는 게으름과 영적 무지, 한없는 무기력함을 부드럽게 질타하시는 성령의 음성 앞에 얼굴이 붉어진다.

반복되는 예배 현장 속 기대감 없이 자리만 채웠던 경험들이 죄스럽다. 예배할 때 예배자의 최대 관심은 삶이어야 하며 살아갈 때 예배자의 최대 관심은 예배여야 한다는 저자의 순환적 가르침이 무지한 지성을 뒤흔든다.

실낱같은 기대조차 없이 드려지는 예배의 무미건조함을 떨쳐버리고, 복음 앞에 아멘으로 반응했던 첫사랑의 순간을 회복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집어 들고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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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 현대지성 클래식 75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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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뭔가 잘못 가고 있어!"

스스로의 결점과 결핍의 상기는 건강하지만 다소 위험이 따르는 행위다. 더군다나 그것이 경쟁 대상 또는 자신보다 못한 존재들과의 비교를 통해 끄집어낸 견해일 때 매우 불편한 진실이 된다.

국경을 맞댄 이민족을 거울삼아 조국 로마 사회의 변질과 부패함을 용기 있게 고백한 쇠락한 영혼의 탁월한 저작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 / 타키투스 지음 / 현대지성 펴냄>이 바로 불편한 진실의 보고서다.

로마 제국 북방 유럽 본토와 흑해, 북해 너머 스칸디나비아반도에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던 게르마니아족은 당시 문명화 된 로마 제국의 눈에는 그야말로 짐승과 다름없는 야만족이다.

날것 그대로의 태곳적 원시성을 담지한 게르마니아의 존재가 로마인들에게는 정복과 경계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와 차별의 출구가 아니었을까!

민족적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듯했던 로마 제국의 오만과 허영은 방종과 광기로 이어지며 제국의 급속한 사회적 변질과 부패를 가속화했다. 이러한 상황 속 로마의 지성 타키투스는 로마가 그토록 경멸했던 야만의 세계, 게르마니아족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관습의 일면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낸다.

그는 의도성 짙은 저작 <게르마니아>를 통해 스러져가는 로마와 비교할 때 야만이라 지칭한 게르마니아 사회가 가진 도덕적 고결함과 순수함을 드러내어 조국 로마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로마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게르마니아의 만장일치 부족 민회의 민주적 의사 결정 장면을 통해 '도미티아누스'라는 미치광이 황제 치하에서 권력의 부패와 변질을 경험하며 로마 사회의 남용된 권력의 현장을 고발했다.

또한 일부일처제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남편과 아내가 혈맹으로 맺어지며 아이들은 유모가 아닌 어머니가 직접 양육하는 게르마니아의 가정 형태에 관한 기사는 '팍스 로마나'가 가져다준 기형적 사회 구조물로서의 로마 사회의 향락과 오락적 현상에 대한 일갈이다.

용맹함과 신의, 끈끈한 공동체성이 강조된 게르마니아인의 단일적 특성은 편안함과 안일함 속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한 당시 로마 제국의 유약함과 비견되어 읽는 내내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더불어 재미있는 사실은 <게르마니아>를 저자의 집필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읽고 해석해 낸 이들이 있었다는 것! 다름 아닌 순수 혈통 게르만족의 우수성과 단일성을 강조하며 인종 우월주의를 표방했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고전 텍스트의 해석이 원독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시대적 컨텍스트를 일정 부분 반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만 <게르마니아>를 자신들의 이념과 주관적 사상의 틀에 집어넣고 가공한 나치의 이해는 동일한 책을 어느 각도와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가 펼쳐지는지에 관한 명징한 예다.



타키투스는 로마 제정의 명암을 직시한 역사가다. 한 해에만 황제가 네 번이나 바뀌는 미친 형국 속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폭정과 새로운 황제 가문이 시작되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뼛속까지 로마인이었음과 동시에 로마의 녹을 먹는 공직자로서 조국 로마를 향한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게르마니아>라는 탁월한 저작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

로마 사회 전반에 누룩처럼 번져갔던 향락과 쾌락에의 탐닉, 부에 기인한 인간 내면의 타락은 로마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안목을 안이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며 하대했던 야만족 게르마니아는 로마의 부패상을 비추는 거울임과 동시에 미처 정복하지 못한 미완의 과제이며 끊임없이 로마의 정수리를 겨눈 칼끝이었다.

<게르마니아>가 2000년 시간의 간극을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이 견지하며 고수해야 할 덕목은 자기자랑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고행에 가까운 노예적 겸손함이 수반되지 않을 때 교만한 인간 본성은 고개를 쳐든다.

로마 사회는 끝없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타락한 인간 본성의 출몰을 제어하지 못한 채 자신을 잃어간 반면 거친 수풀 속 북방의 짐승 같은 이들은 그들만의 엄격한 규례와 관습의 힘으로 민족정신과 사회문화적 순수성을 지켜냈다.

로마의 지성, 타키투스는 본성이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뀜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고전의 성소로 현대의 독자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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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 베이직
이정현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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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교회의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되기 전 잠시 거쳐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포지션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요즘 부교역자에 관한 생각을 환기시키는 매우 시의적절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부교역자 베이직 / 이정현 지음 / 생명의말씀사 펴냄>은 22년간의 부교역자 경험을 가진 청암교회 이정현 담임목사님이 후배 부교역자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조언으로 가득한 저작이다.

단순히 부교역자이기에 어떻게 하라는 일방적 훈계가 아닌 저자 자신이 22년간의 부교역자 시절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음 속에서 건져올린 보석 같은 체험의 열매를 가독성 높은 문체와 형님 같은 따스한 필치로 전하고 있기에 책이 주는 메시지는 편안하면서도 품격이 있다.



본서를 통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의 가장 큰 키포인트는 제목에서부터 묻어난다. 기본을 갖출 때 부교역자의 앞길은 밝다. 반면 기본이 없을 때 부교역자의 행보는 어둡다. 사실 기본기의 강조가 교회 공동체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알다시피 사회 각 분야에서 기본이 없는 사람은 거절되고, 도태되지 않는가!

그러나 저자는 영혼을 맡은 목회자로서 부교역자의 기본은 세상이 말하는 그것보다 더 진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는 부교역자의 기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자기 계발 분야의 전문가 '데일 카네기' 또한 인생의 성공은 실력 15%와 태도 85%에 달렸다고 말한다.

부족한 실력은 배우면 해결되지만 근본적인 태도의 문제는 고민스러울 뿐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을 목양하고 섬기는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목회자의 경건과 더불어 정돈된 인격을 요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사역은 실력이 아니라 태도에 달렸음을 역설한다. 부교역자의 태도는 인사, 겸손, 성실함, 커뮤니케이션 스킬, 근무 태도와 같은 세부적 요소를 포함한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기에 경시되지만 이 기본을 못해서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한 목회자들이 사뭇 많다.

그 밖에도 부교역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은 관계, 목양, 설교의 영역이다.

특별히 관계에 있어 내가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 동료 부교역자, 장로 등의 중직자, 일반 성도들을 아우르는 모든 교회 내 관계의 단추를 어떻게 끼워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답변이 책의 전면에 가득하다.

그런데 결국 관계의 밑바탕에 깔리는 것은 겸손이라는 태도다. 오해 없는 투명함, 함께 밥을 먹는 교제,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경청... 이 모든 것의 저변에는 부교역자의 겸손이라는 태도의 키워드가 자리한다.

내 것을 주장하고, 권위를 내세우며 이해함이 없고, 오해를 키우는 불투명한 사역의 모습이 관계를 망치는 주범이다. 저자가 이 부분을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교회에서 부교역자는 영원한 을이며 상대적 약자로 비친다. 담임목사나 중직자가 수족처럼 부리는 사람들, 교회의 급여를 받는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들로 여겨지는 부교역자 현실의 민낯은 마음 아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금도 이 땅의 대다수 부교역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함과 동시에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어린 영혼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성도들을 주어진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섬긴다.

좌충우돌의 경험이 상처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주어진 소명을 확인하며 이 길에 들어섰고, 누군가는 해야 할 거룩한 제단의 임무를 위해 오늘도 묵묵히 십자가 앞으로 나아간다.

<부교역자 베이직>은 안개와 같이 희미한 목회 미래에 대한 고민과 사역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상처가 생살을 찢는 아픔으로 다가올 때 목회의 본질과 소명을 일깨우기에 있어 최적의 가이드북이다.

동시에 22년간 부교역자의 삶을 직접 살아낸 현직 담임목사가 부교역자의 입장과 담임목사의 입장 모두에서 목회의 본질을 균형감 있게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짙기에 치우침이 없다.

걸어가 본 자만이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 이정현 목사님 스스로가 걸었고, 여전히 걷고 있는 목회 현장의 실제가 가득한 <부교역자 베이직>이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교역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인격적인 자질, 태도의 문제와 더불어 경건한 목회자의 신앙적이고 실력적인 영역에서의 준비 그리고 지혜롭게 사역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방법적인 조언이 매우 균형감 있게 기술되었기에 부교역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명확한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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