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올로구스 -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
피지올로구스 지음, 노성두 옮김 / 지와사랑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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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 <피지올로구스>, 독특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다양한 동식물과 사물이 기독교적 상징물로써 중세 미술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책은 55개의 동식물과 광물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기독교의 성경적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그림에 등장하는 동식물이 표징 하는 의미를 파악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의미가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 중세의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자연의 사물들이 뿜어내는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 그들이 신앙했던 신의 존재와 계시를 묵상했고, 믿음의 교훈과 삶의 실천으로서의 진의를 캐냈다.


'피지올로구스'는 '자연에 대해 박식한 자'라는 의미로서 작자 미상의 책 이름임과 동시에 그 자체가 익명 저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혼용되었다. 초기에 민담으로 전해지다가 AD200년 경 근동지역에서 문자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후 독자들의 염원으로 23년 만에 복간됐다. 중세를 뒤흔든 베스트셀러가 가진 가치와 지위는 이렇다. 중세 기독교 도상학의 등장과 중세 유럽 기독교 건축, 장식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문헌의 가치는 높다.


성경을 읽다 보면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조상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든 뱀이 있다. 그에 반해 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양이 있다. 사탄을 상징하는 뱀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어린 양과 같이 자연의 피조물은 창조주의 탁월한 메타포다.


자연의 피조물을 통해 창조주의 창조 섭리와 사역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중세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발견한 자연적 대상들을 그들의 미술 작품 속에 형상화시켰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신앙한 신에 대한 경배를 완성했다.


반면 종교 서적인지 인문학 도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장르의 모호성은 책을 읽으며 살짝 혼란스러웠던 부분이다.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이라는 부제답게 성경적 메시지로 연결되는 책의 내용과 표현 때문에 그렇다. 다소 상상적인 요소가 혼재하기에 온전히 성경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인용문 또한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했기에 가톨릭적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메시지와 색채가 강한 인문학 장르로 결론 내렸다. 그렇기에 예비 독자들에게 무겁게 볼 필요 없이 가볍고 흥미롭게 독서하길 권한다.



책에 등장하는 55가지의 동식물과 광물 중에는 세상에 없는 상상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레네(사이렌)나 켄타우로스, 유니콘과 같은 존재가 그렇다. 그렇기에 책은 중세 기독교가 가진 신앙의 혼합성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내용들도 많다. '살무사'를 통해 세레 요한이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비난하던 장면을 소환한다. 살무사(독사)의 특징이 이렇다. 어미 살무사의 배를 찢고 나오는 살무사 새끼들처럼 영적 부모인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잡아 죽이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살무사의 새끼들이라고 상징적으로 비유했다.


또한 악어는 마귀로 상징된다. 입을 벌린 채 잠자고 있는 악어의 입에 들어가 목구멍과 내장을 파먹는 수달은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다양한 형상과 회화로 중세 미술의 전성기를 이루어내었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눈에 보이는 실재에 대한 감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와 존재에 대한 믿음과 결부된다고 확신했다. 비가시적 절대자는 분명 가시적인 세상 속에 그의 존재 여부를 투영시켰을 것이며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이 분명하다는 확신 속에 '피지올로구스'와 같은 저작이 구전으로 탄생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고 신앙하는 나약한 인간의 믿음, 높은 문맹률의 대중에게 복음을 가시적으로 효과 있게 전하기 위해 고안된 중세 기독교의 다양한 형상들의 이해는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진리의 핵심을 전달하는 일은 수신자가 글을 모른다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송신자의 진실성과 투명함에 있다. 중세에는 그것이 없었고 지금의 시대에도 그것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중세의 것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떠한 반성도 없다.


책을 통해 생각이 짙어진다. 작은 기독교 도상학 책 한 권을 통해 중세의 기독교를 돌아보고 지금의 기독교를 성찰한다. 위에서 가볍고 흥미롭게 읽기를 권했다. 하지만 책이 쓰이고 전해진 의미를 조금만 깊이 숙고해 보면 더 많은 것을 건져낼 수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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