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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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거대한 향유고래와의 투쟁을 그린 해양 대서사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 멜빌은 한때 포경선 선원이었다. 자신의 체험을 소환하여 집필했기에 포경업에 관한 전문적 배경지식과 묘사가 매우 상세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적인 포경 투쟁의 현장을 묘사한 그의 글이 사뭇 비리다.

멜빌은 자신을 '이슈메일'로 불러달라고 청하는 한 남자를 1인칭 작중 화자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슈메일은 '피쿼드'호라는 포경선에 승선하여 포경 항해를 시작한다. 신비한 베일에 둘러싸인 선장 '에이해브'는 '모비 딕'이라는 거대 향유고래와 싸우다 다리 한쪽을 잃었다. 오직 모비 딕을 잡겠다는 불타오르는 복수심으로 뭉친 에이해브와 모비 딕의 조우, 투쟁은 책의 백미다.

끝없이 이어진 추격 끝에 만난 백경 모비 딕을 향해 복수의 작살을 던졌고 작살줄이 풀려나갔다. 이후 선장과 선원들, 피쿼드호 그리고 모비 딕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740여 페이지의 분량적 무게감이 압권이다. 흰 고래와 인간의 사투가 흥미진진하며 거대한 창조물에 대한 경외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명성이 자자한 본서를 집어 들고 책이 드러내는 다양한 중첩된 의미를 발견한다.

역자는 해제를 통해 책이 갖는 다섯 가지 해석적 관점을 제시한다. 그만큼 책이 내비치는 의미가 다양하다. 외적으로는 단순한 킬링타임용 해양모험소설이다. 하지만 저작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때 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뽐내는 프리즘은 바라보는 관찰자의 위치와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로 수렴된다. 흰 고래 모비 딕은 시대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일종의 문학적 프리즘이다. 독자는 자신의 삶의 정황과 인생의 관점에 따라 모비 딕이 갖는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답은 없다. 해제가 제시하는 모범적 관점이 있지만 책을 덮고 독자만의 관점으로 해석해도 좋다.

어차피 향유고래가 갖는 상징적 수사는 하나가 아니다. 소설 전체가 마치 거대한 수메르어 쐐기 문자판과 같이 코드화되어 있다. 상징과 수사, 은유가 내러티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져있기에 해석은 독자가 모비 딕이라는 프리즘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깊은 심해에 살고 있을 미지의 대상인 모비 딕은 피쿼드호 선원들에게는 자신들의 생활을 책임져 줄 생계의 대상이다. 반면 선장 에이해브에게는 다리를 절단 낸 반드시 죽여야만 할 원수로서의 존재다. 피쿼드호의 선주와 지분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비 딕은 자신들이 나눠가질 몫으로서 노략의 대상이다. 이처럼 소설 속에서도 보이듯 모비 딕을 향한 인물들의 생각은 동상이몽이다.



독자로서 나는 향유고래 모비 딕을 모든 인간 내면 안에 내재하는 실재이지만 실재를 인식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으로서의 존재로서 이해하고 해석했다. 급속한 변화의 물결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관점은 어떤가? 


내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과 갈망의 대상으로서의 미지의 실재가 인간 안에 상존한다. 추격에 추격을 거듭하며 모비 딕에게 작살을 던지듯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형의 실체를 미친 듯이 쫓는다. 바다안개에 싸인 듯 어렴풋한 실체의 불투명함이 모비 딕을 향한 현대인의 감정을 대변한다.

멜빌은 기존 사회의 사상적 틀을 깨야 리얼리티, 진실, 존재의 신비,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비 딕은 바다라는 기존 사회의 포괄성 속 다양함을 담지한 존재다. 각자가 정의하는 가치가 다르고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도 상이하다.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가 그랬다. 노예제도로 사회는 양분되었고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갈등의 화약고였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어떤가? 잡다한 사상의 용광로다. 절대 진리를 인정치 않는 시대사조 속 현대인들에게 모비 딕은 추구하고 동의하는 바가 다른 그 무엇이다.

각자가 진리라고 여기며 굳건히 붙잡은 포경 작살을 저마다의 백경 모비 딕을 향해 힘껏 내던진다. 내던짐의 시간은 일평생이며 나에게만큼은 영원할 것 같았던 아름답고 탄력 있는 젊음이 지나 희끗한 백발이 머리를 덮을 때쯤 우리는 그토록 갈망하며 추격한 모비 딕의 실체를 발견한다.

멜빌은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의 발현은 자신이 고수하는 고착화된 사고적 틀을 깰 때에만이 가능함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멜빌 사후에 더 큰 평가를 받았다는 <모비 딕>. 고전이 갖는 무게감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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