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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평점 :

문학이 시대가 가진 모든 면면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 당대의 목소리와 관심사를 조망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최근 읽은 책 <외사랑>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품이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현대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사랑>은 200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외사랑? 짝사랑? 워낙 스릴러의 거장이기에 남녀 간 사랑을 둘러싼 치정물 같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하며 책장을 펼친다. 주요 등장인물의 공통된 배경은 졸업한 데이토대학 미식축구부 동료들이다. 미식축구부의 여자 매니저 '히우라 미쓰키'가 팀의 쿼터백이며 리더였던 '니시와키 데쓰로'에게 털어놓는 살인사건의 전말과 그 뒤에 숨겨진 믿기 힘든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제법 흥미롭다.
독자를 이야기의 미궁 속으로 안내하는 게이고 작가의 기술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1000피스짜리 퍼즐을 방바닥에 흩뿌려 놓는 것만 같다. 책의 전면에 깔린 큰 주제는 젠더 이슈다. '성 정체성 장애'를 겪고 있는 팀의 여자 매니저였던 미쓰키는 남성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녀의 생물학적 성은 엄연히 여성이다. 남성을 갈망하며 남성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고백하는 미쓰키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과의 역학적 관계가 밀도 있게 펼쳐진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다고 정의 내리는 게이고 작가의 독특한 통찰에 눈길이 간다. 완전한 남자, 완전한 여자가 없음을 이야기하며 남성안에 존재하는 여성성, 여성안에 존재하는 남성성에 대한 그만의 진실을 소설 속 지면을 빌려 이야기한다.
지금도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와 같은 이슈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는 주제다. 그런데 작가는 이처럼 상당히 예민한 주제를 무려 20여 년 전 자신만의 필치로 쏘아 올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시대를 앞서는 선견지명을 갖춘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가 보다.
작가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인물을 대학 미식축구부라는 아마추어 스포츠팀의 구성원들로 설정했다. 왜 그랬을까? 책은 살인사건, 젠더,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 사회적 책임감과 인식의 문제,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호적상의 차이가 갖는 갈등, 스포츠 팀 안에 내재한 성별의 문제와 비뚤어진 시각 등 다양한 이슈들이 서로 치열하게 치받는 것이 마치 미식축구 경기에서 양 팀의 선수들이 볼을 쟁취하기 위해 진을 짠 상태로 벌이는 스크램블을 연상케한다.
작가는 책이 갖는 내용상 혼재를 미식축구라는 스포츠에 대입했고, 그것을 팀원들의 역할에 맞게 부여하는 치밀함으로 설정했다. 팀의 리더인 쿼터백 데쓰로는 사건의 모든 전말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처음부터 결말까지 끌고 가는 소설 속 주인공(리더)이다.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며 팀의 리더답게 자신만의 감각으로 사건을 조율한다.
반면 실제 살인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로서 등장하는 '나카오'는 미식축구에서 볼을 잡고 날렵하게 뛰는 러닝백이다. 이야기 속 나카오의 역할이 책의 끝까지 스토리의 핵심인 볼을 잡고 상대팀 수비수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달리는 러닝백과 같다.

쉽게 양보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 간 충돌의 가장 큰 핵심은 윤리로 대변되는 전통적 가치관과 시대가 급속도로 변화하며 생겨나는 새로운 시대의 어젠다다. 작가의 집필 의도는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짤막한 메시지 속에 압축되어 있다.
다양한 사람을 생각하며 썼다는 것!
사회적 윤리 문제에 봉착하여 이미 난항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의 이면을 바라볼 때 이 작품의 진의를 발견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젠더 문제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이 아니다.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젠더를 통해 바라본 우리 사회가 갖는 배타적 통념에 대한 일갈이다. 이질적인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사회가 가진 뿌리 깊은 배타성에 대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현대판 버전을 보는 것만 같다.
분명 게이고의 이 책은 킬링 타임용 소설이 아니다. 스토리 속에 현재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성찰을 철학적으로 녹였다. 세대, 인종, 성별, 종교, 지역, 민족, 국가 간의 다양한 갈등의 문제가 중첩된다. 이렇듯 게이고의 시대를 앞선 문학적 시각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고민하며 체감하는 문제에 대해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