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행성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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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행성>은 <고양이>,<문명>에 이어지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명성만 듣다가 처음으로 그의 책을 만난다.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스토리텔링의 대가답게 처음부터 흡입력이 대단하다.

한 광신주의자로부터 시작된 사건이 단초가 되어 내전이 발발했고, 인류 문명은 순식간에 와해된다. 문명이 사라진 세상은 설치류인 쥐들의 세상으로 뒤덮였다. 주인공은 화자로서 인간이 아닌 암고양이 '바스테트'다. 이마에 제3의 눈이라는 기계장치를 이식했고, 이를 통해 인간과 소통하며 인간의 지식을 배우고 흡수할 수 있는 일종의 초능력을 지닌 비범한 고양이다.

온 세상이 쥐 떼로 뒤덮인 가운데 바스테트 일행은 자신들의 고향 프랑스를 떠나 배를 타고 항해하여 미국 뉴욕에 이른다. 전작 <고양이>와 <문명>의 이야기가 끝나고 <행성>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전작과 연속성이 있지만 굳이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작가의 스토리 구성력이 환상적이리만치 탁월하다.

35일의 항해 끝에 도착한 뉴욕 또한 쥐 떼로 덮여있다. 남은 인간들은 뉴욕의 높은 빌딩에 갇혀 쥐 군단의 공격을 방어하며 연명한다. 바스테트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뉴욕 빌딩의 인간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고 이후 시시각각 조여오는 쥐 군단의 공격에 맞서 위기에 빠진 인류 문명의 회생을 위해 다양한 노력과 모험을 시도하게 되는데...

고양이 바스테트가 가진 제3의 눈은 고대 이집트의 '호루스의 눈'을 연상케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알 수 있는 전지적 지혜의 전시안을 가진 바스테트는 그가 가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통해 인류의 모든 지혜에 접속한다.

책의 곳곳에서는 바스테트가 위기의 순간을 맞아 지구와의 소통, 자연과의 합일, 우주와의 교류를 행하는 장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바스테트는 육체에 갇혀있지 않고 물질을 초월할 수 있는 순수한 정신을 통해 인류를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내는 구세주로서 묘사된다.



저자는 촌각을 다투는 쥐 군단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이익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살아남은 인간 집단의 모습을 통해 인간 문명의 패악성과 내면적 취약성을 비꼼과 동시에 종간 소통을 말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동물과 동물의 소통과 평등, 모든 차별의 종식이다. 신이라는 절대자가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가 가진 무한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충분히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 완벽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

책의 메시지는 범아일여, 범신론적 세계관의 극치다. 만물 안에 깃든 신성,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인간이 곧 우주이며 신이라는 인간 잠재력의 극대화를 외치며 내면 안에 잠든 신성을 깨운다. "절대적인 신적 존재는 없다. 당신이 곧 신이다!"

이렇듯 살아남은 항서류와 설치류의 대결구도 속 책의 이면에 숨겨진 저자의 메시지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자 포인트다. 온 땅을 뒤덮은 쥐 군단은 병든 인간 본성의 상징이며 결과물이다. 세계의 절멸이라는 직접적 도화선이 된 내전은 어느 광신주의자의 어린이 학살로 시작되었다. 참된 정신이 마비된 광적 행위가 인간을 파멸로 몰았다. 결과는 뼈아프다.

저자는 아나키스트이며 무신론자로서 인간 이성의 빼어남과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허구의 신을 마음껏 희화화하며 인간의 절대성과 무한 잠재력을 신뢰한다. 반면 참된 이성을 망각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일갈한다. 자신들의 욕심과 이기적인 탐욕의 결과가 빚어낸 끔찍한 현상을 목도케하는 장치로 쥐를 사용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작중 인간들은 쥐고기를 단백질 공급원으로 취식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죄로서의 쥐'를 먹는 인류에 대한 풍자이며 문학적 메타포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베르나르를 연호하고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흥미 있는 킬링타임용 소설로만 정의하기에는 책이 너무 아깝고 집필에 들어갔을 저자의 노력이 허망하다. 요 며칠 재미있게 잘 쓰인 종교 철학서 한 권을 만난 것 같다.

역사와 자연 철학, 영지주의와 같은 고대종교와 불교, 힌두교, 기독교, 뉴에이지 세계관을 적절하게 혼합하고 패러디한 작가의 박학다식함과 문학적 상상력, 위트가 신선하다. 역시 세계적 글쟁이 다운 면모다. 책의 곳곳에 숨겨진 인문학적, 종교적 코드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에 그의 전작들이 궁금하고 후속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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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실무 엑셀 + 파워포인트 + 워드 & 한글 - 개념은 쉽게, 기능은 빠르게, 실무활용은 바로_현장밀착형 입문서 (모든 버전 사용 가능)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시리즈
전미진.이화진.신면철 지음 / 한빛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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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간 실용서를 출판하고 있는 '한빛미디어'에서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실무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한글>을 출판했다. 기존 각 권으로도 출판된 바 있는 책들을 합본으로 모은 기획이다. 엑셀만을 설명하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엑셀 초심자들이 쉽게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순서대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이번에 파워포인트와 워드&한글까지 함께 수록된 합본을 만났다. 역시 책의 구성은 동일하다. 초심자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타깃 했다. 엑셀을 알면 한글보다 엑셀이 더 편하다고들 말한다. 엑셀로 능숙하게 문서를 작성하고 표를 만들며 각종 복잡한 함수식을 이용해 데이터를 뽑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부럽다.

저자는 문서작성의 기본을 설명하고 이어 엑셀의 강점인 수식과 함수 활용법을 강의한다. 차트, 데이터베이스 관리까지 가면 조금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가능한 쉽게 설명하려고 했기에 차분하게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기본적인 사용법을 익히는 데 무리가 없다.

파워포인트는 어떤가? 학교나 회사에서 멋진 PPT를 가지고 발표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워포인트에 욕심이 난다. 사실 기본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한글을 어느 정도 다뤄 본 사람들은 한글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눈치(?)껏 조작해서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조악스럽지도 않은 평범한 PPT 자료 정도는 만들어낸다. 나 또한 그렇다.

사실 이것은 엑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고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기왕이면 더 멋지고 가독성 좋은 문서를 만들어낼 때 유저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그렇기에 본서의 가치가 크다.



다양한 프레젠테이션 시각화 방법 및 꾸미기와 슬라이드를 정리하고 저장하기까지의 방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한다. PPT 초심들에게 있어서는 슬라이드 안에 텍스트를 넣는 작업보다 표와 차트, 오디오, 비디오 등의 멀티미디어를 삽입하는 기술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책은 이러한 문제들을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헤아렸다. 엑셀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시 그림을 두고 작업의 프로토콜을 성실하게 설명한다. 저자의 잡은 손을 놓치지 말고 따라오라는 의미다.

마지막 챕터는 워드&한글이다. 한글은 이제 대중화된 문서 작성 툴이다. 그런 한글에 비해 워드는 사용하는 사람만 사용하는 것 같다. 나부터 그렇다. 한글 사용에 워낙 편하게 길들여져 있다 보니 회사에서 많이 사용하는 워드의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한글을 어느 정도 다루면 워드에 접근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다. 워드&한글의 쓰임새와 사용법 또한 앞의 도구들과 동일하다.

책의 장점은 첫째는 수준을 철저하게 초심자들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점이다. 책의 제목과 같이 '회사에서 바로 통'할 수 있도록 매우 평이하게 구성했다. 이는 다양한 예제 그림과 상세한 순서를 곁들여 설명하는 부분에서 빛난다.

둘째는 문서작성 삼총사라 불리는 대표적 툴을 합본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교본을 찾을 필요가 없이 책상에 이 책 한 권만 올려져 있으면 된다.

셋째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나온 모든 버전을 망라해서 설명하기에 버전과는 상관없이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각 챕터마다 우선순위 기능을 설명함으로써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다는 것과 실무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핵심기능을 꼭 집어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사실 네 개의 도구들을 단기간에 마스터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내용이 제법 많다. 한 번에 외우기는 어렵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책을 펼쳐놓고 사전 찾듯 찾아가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 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요즘 엑셀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오래전 배웠던 엑셀의 기억을 되살리곤 하지만 막힐 때도 많다. 그때마다 본서를 펼친다. 답답한 난제 끝에 해답을 찾아보는 듯한 즐거움과 시원한 지적 쾌감을 느낀다. 문서작성의 시간이 진땀 빼는 고통과 짜증의 시간이 아닌 아름다운 결과물을 창작해 내는 환희의 순간이 되도록 만드는 마법!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실무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한글> 한 권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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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변곡점
정윤진 지음 / 마인드셋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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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변곡점>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변곡점이라는 것은 어떠한 현상이나 상태가 전과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 기점이다. 부(富)에도 과연 변곡이 존재할까? 로또 1등 당첨이 아니고서야 한 달 벌어 한 달을 연명하는 서민들에게 부의 변곡은 요원한 이야기다.

책의 저자 정윤진 대표는 <부의 변곡점>을 통해서 부의 변곡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책은 총 7파트로 나뉜다. 저자는 서두를 통해 자신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과거의 흑역사를 부끄러움 없이 공개한다. 숨기고만 싶은 가족사를 투명하게 오픈한 이유는 책의 핵심을 독자들에게 더 진정성 있게 펼쳐 보이기 위한 그만의 고민이었으리라 본다.

막노동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교통비 마련을 위해 병원에 불법 매혈을 했다. 지방대를 나온 후 이름 없는 중소기업에 취업 후 받은 그의 월급은 190만 원. 이후 단돈 600만 원을 가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는 30년 된 낡은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삶은 항상 돈에 쪼들리고 가난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수렁 자체였다. 바닥 밑에 지하가 있었다고 말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설상가상으로 주식과 가상화폐에 손을 댔지만 -95%라는 손실을 기록하며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이 정도면 그냥 죽으라는 신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우연히 만난 스마트 스토어의 세계를 통해 부의 변곡점, 부의 추월 차선에 올라탄다.

스마트 스토어는 레드오션이며 포화상태이기에 이제 시작하는 후발 주자들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팽배해 있던 당시 2년 만에 23억 매출이라는 믿기지 않는 성과를 올린다.

인상 깊은 점은 레드오션에 대한 저자만의 긍정적인 해석과 독특한 견해다. 사람들은 경쟁자들이 많이 몰려서 더 이상 파이가 없기에 레드오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먹을 파이가 많기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이라는 획기적 발상을 설파했다. 생각건대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는 돈 버는 방법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올곧게 펼친다. 많은 돈을 사치와 향락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다. 넉넉한 돈은 나의 가족과 내 주변의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준다.

실제로 저자는 책 속에서 평생을 가난 속에 사셨던 부모님과 누이의 빈곤을 탈출시켜드리는 데 자신의 돈을 사용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저자가 정말 바른 정신의 소유자임을 느낀다.

저자가 독서모임에서 만난 연세 지긋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는 경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아보니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대부분일 뿐입니다. p33


머리를 때리는 문장이다. 십분 이해했고, 많이 동의했다. 행복은 돈에 있지 않다고들 말한다. 로또 1등 당첨된 사람들의 불행한 종말을 예로 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100% 맞다고도 볼 수 없다. 배고픈 자의 상황 속에서 행복이 돈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말은 배부른 자의 여유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성경에는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이 있다. 돈의 속성과 타락한 인간 본성의 커넥션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예견한 말이자 돈이 인간의 패악성과 만날 때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경고다. 돈은 가치 중립적이다. 잘 쓰면 의사의 손에 들린 메스가 되고, 잘 못쓰면 강도의 손에 든 회칼이 된다.

책의 저자는 돈이 인생에 있어서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라는 점을 명확히 간파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월급이라는 연명 장치에 호흡을 맡기며 살아가는 경제적 시한부 인생들에게 부의 변곡점, 부의 추월 차선에 올라타기를 독려한다. 동시에 그 방법으로써 자신이 직접 경험했고, 가능성이 보이는 스마트 스토어 창업을 권하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스마트 스토어를 창업하는 실제적인 방법과 깨알 조언이 매우 평이한 언어로 마치 유아에게 이유식을 떠먹여주듯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물고기를 잡아야지만 굶어죽지 않습니다!"만 강조한 게 아니라 "이런 방법으로 고기를 낚으십시오!"까지 안내하는 저자의 친절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말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수학 공식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지극히 정상적인 정답의 삶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현실 안주를 거부하며 경제적 변화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부의 변곡점에 이르는 유용한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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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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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는 서로를 향한 증오가 남긴 사회의 끔찍한 생채기를 자신의 작품 속에 적실성 있게 녹였다. 이념과 정치사상의 차이는 스페인을 내전이라는 포화 속으로 인도했다. 1,2차 세계대전의 전간기 속 내전의 상처를 전선에서 오롯이 한 몸에 받아낸 셀라의 기억은 그의 대표작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에 선 굵은 흔적으로 새겨진다.

책은 주인공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로페스'라는 수신자를 향해 쓴 자신의 회고록이 우연한 장소에서 발견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발견된 두아르테의 자전적 기록은 책의 전체적인 플롯이다. 어린 시절 두아르테는 난산 직후의 아내를 가죽 혁대로 폭행할 정도의 비인간적인 아버지와 그에 못지않게 비이성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한마디로 그의 가정은 병적이고 역기능적이다. 가난과 술 주정, 폭행이 일상화된 어둡고 불우한 가정의 모습은 두아르테의 삶이 정상적일 수 없음에 대한 당위성으로 비친다. 그러나 두아르테 또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후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의 행복도 잠시뿐 이내 그의 가정에는 불행의 먹구름이 짙게 깔린다.

칼부림, 부정과 외도, 살인 또 살인... 두아르테의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치닫는다.

독자 포인트 중 하나는 차츰 무너져가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의 삶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배경적 도구들이 무딘 칼날의 면과 같이 독자의 정서를 지긋이 저민다.

두아르테의 인생을 망친 외적 요인은 다름 아닌 그의 가족이다. 사랑과 행복의 대명사인 '가족'이 갖는 진의를 뒤집어엎는 역대급 역설이 책의 전면을 수놓는다. 사랑 대신 미움과 증오가 자리를 대신한다. 용서와 화해보다는 갈등과 반목이 팽배했다.

두아르테의 가족은 각종 이념과 사상의 각축장이었던 내전 이후 스페인 사회의 누더기 같은 비참함을 담지한 문학적 메타포다. 그리고 두아르테는 그 다툼과 비극의 현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망가짐을 강요당한 환경의 희생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자의와는 상관없이 묶여있다. 우리네 삶의 일정 부분은 아니 많은 부분은 타인에 의해 드라이빙 되는 경우가 많다. 오른쪽으로 가고 싶지만 왼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두아르테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주범으로 불우한 환경과 자신을 둘러싼 진저리 쳐지는 가족들을 지목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족쇄에 묶여 자신의 삶이 벼랑 끝에 서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문학비평가들 또한 본서를 범죄심리학적 측면과 사회학적 관점에서 대동소이한 의미로 해석했다.

책을 시작하며 두아르테는 자신의 험한 인생 이력을 만들어 준 이들이 자신의 가족이며 동시에 원수임을 고백한다. 소위 '불행 유발자들', 가족!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럴까? 책을 덮으며 던진 사유의 물음이다.

존경하는 나의 멘토 목사님께서는 "가족은 특별한 타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삶이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 속에 묶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야 할 책임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가족은 남보다 조금 더 특별한 타인일 뿐이라는 말은 개별적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나약함에 대한 일갈이다.

주체성을 상실한 채 자신의 환경과 조건만을 탓하며 모든 잘못과 불행의 원인을 가족과 가정 환경 즉, 타인에게 돌린다. 이는 곧 수동성에 찌든 한 명의 인간이 자신과 가족을 역기능적으로 엮는 가장 손쉬운 핑계다.

두아르테는 자신의 인생이 불우한 가정환경과 원수 같은 가족들에 의해 '이생망'했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겠지만 두아르테가 삶의 비극적 결말을 오롯이 가족에게 전가함은 그가 얼마나 인생에 대해 주체적이지 못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개별적 자아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상실했기에 가족과 내가 건강한 분리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수많은 가정은 비극의 주요 무대다. 작가는 내전 후 각종 사회 문제와 이슈로 점철된 스페인 사회의 단면을 한 인물과 그의 가족을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냈다. 동시에 두아르테라는 이방인을 통해 가족 속 개별적 주체로서의 인간 실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오늘도 개인과 가족이 엮여 비극과 참상의 모판이 되어가는 현대 가족의 비애가 매스컴을 장식한다.

가족은 특별한 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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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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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깊은 곳의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가 있습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한 과자 가게 전천당에서 파는 과자들은 손님들의 간절한 바람을 채워주는 아이템들이죠.

같은 반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싶은 소년 '류스케'에게는 <인기 통통 떡>이 제격입니다. 인기 통통 떡을 먹자마자 학교에서 인기남으로 등극합니다. 때마다 지인들의 선물을 고민하는 중년 여성 '도시코'는 전천당에서 파는 <선물 부채>를 통해 까다로운 시아버지의 선물 취향까지 알아 맞춤으로써 센스 있는 며느리가 됩니다.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싶어 하는 젊은 엄마 '미사코'에게는 <뽐뽐 쿠키>가 제격이죠. 쿠키를 먹자마자 자신의 품격을 한눈에 알아보고 주변의 엄마들이 달려들어 칭찬과 부러움을 쏟아냅니다. 타인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주체적 여성 '치하루'마저도 자신에게 부러움을 느끼도록 만든 뽐뽐 쿠키야말로 미사코에게는 강력 핵인싸 아이템인 것이죠.

 

일본 어린이 판타지 소설계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부르고 싶은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의 대표작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의 14번째 내용을 간추려봤어요. 우리 집 1호가 구입한 <십 년 가게>를 통해서 히로시마 레이코를 처음 만났습니다.

아동 도서의 조잡함을 생각하며 펼친 <십 년 가게>를 앉은 자리에서 완독하게 만든 작가의 집필력에 감탄했었지요! 어린이 독자뿐 아니라 성인인 부모의 감성까지 휘어잡는 작가의 구성력에 박수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왜 이리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알 만했지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시리즈를 1권부터 정주행하지 못했기에 14권을 먼저 읽어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전체적인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도 단권으로서 어렵지 않게 스토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각 권에 실린 이야기들 자체가 흥미롭기에 흐름이 끊긴다는 생각을 안 해도 되지요.

 

 

14권에서 5개의 과자와 1개의 장난감이 소개됩니다. 전천당의 여주인 '베니코'는 소원을 들어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와 같아요. 전천당에 방문한 손님들은 구입한 과자와 장난감을 통해 소원 성취를 이룹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세상에는 규칙이 존재하는 법!

전천당에서 파는 모든 아이템에는 개별의 규칙들이 존재합니다. 그 규칙을 어길 시에는 일의 결과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책에 등장하는 손님들이 하나같이 규칙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는 결과를 맞이하고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어린이 독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아동도서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책이 뿜어내는 묵직한 무게감이 두뇌의 언저리를 지긋이 누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자신을 부러워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질시, 다른 이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고 싶은 어느 주부의 고민 등을 통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가진 공통된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지요.

전천당 과자들이 가진 규칙들은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한 욕구들의 야생성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을 향한 뼈아픈 경고,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함이 불러온 정신적 고통, 허세를 만족시키려는 행위의 따끔한 통증, 타인의 반응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효율적 삶, 인간의 진심은 통한다는 절대불변의 법칙, 이웃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주체적 인생의 중요성까지...

아이들의 책이지만 레이코 작가는 작품의 마디마다 선 굵은 인생의 메시지를 흥미롭고 신비하게 녹여냈습니다. "아! 재미있다!"를 연호하며 한 번 읽고 서가에 시리즈 인테리어로 꽂아둔다면 부모 된 독자의 직무유기입니다.

"네게 인기 통통 떡이 생긴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 같아? 뽐뽐 쿠키를 먹으면 사람들이 모두 너를 부러워한다는 데 기분이 어떨 것 같니?"와 같이 아이와 함께 읽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돼요. 한 권의 아동 판타지 소설이 우리 자녀들이 가진 사유의 용량을 넓힙니다. 히로시마 레이코 작가의 문학적 탁월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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