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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평점 :

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는 서로를 향한 증오가 남긴 사회의 끔찍한 생채기를 자신의 작품 속에 적실성 있게 녹였다. 이념과 정치사상의 차이는 스페인을 내전이라는 포화 속으로 인도했다. 1,2차 세계대전의 전간기 속 내전의 상처를 전선에서 오롯이 한 몸에 받아낸 셀라의 기억은 그의 대표작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에 선 굵은 흔적으로 새겨진다.
책은 주인공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로페스'라는 수신자를 향해 쓴 자신의 회고록이 우연한 장소에서 발견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발견된 두아르테의 자전적 기록은 책의 전체적인 플롯이다. 어린 시절 두아르테는 난산 직후의 아내를 가죽 혁대로 폭행할 정도의 비인간적인 아버지와 그에 못지않게 비이성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한마디로 그의 가정은 병적이고 역기능적이다. 가난과 술 주정, 폭행이 일상화된 어둡고 불우한 가정의 모습은 두아르테의 삶이 정상적일 수 없음에 대한 당위성으로 비친다. 그러나 두아르테 또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후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의 행복도 잠시뿐 이내 그의 가정에는 불행의 먹구름이 짙게 깔린다.
칼부림, 부정과 외도, 살인 또 살인... 두아르테의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치닫는다.
독자 포인트 중 하나는 차츰 무너져가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의 삶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배경적 도구들이 무딘 칼날의 면과 같이 독자의 정서를 지긋이 저민다.
두아르테의 인생을 망친 외적 요인은 다름 아닌 그의 가족이다. 사랑과 행복의 대명사인 '가족'이 갖는 진의를 뒤집어엎는 역대급 역설이 책의 전면을 수놓는다. 사랑 대신 미움과 증오가 자리를 대신한다. 용서와 화해보다는 갈등과 반목이 팽배했다.
두아르테의 가족은 각종 이념과 사상의 각축장이었던 내전 이후 스페인 사회의 누더기 같은 비참함을 담지한 문학적 메타포다. 그리고 두아르테는 그 다툼과 비극의 현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망가짐을 강요당한 환경의 희생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자의와는 상관없이 묶여있다. 우리네 삶의 일정 부분은 아니 많은 부분은 타인에 의해 드라이빙 되는 경우가 많다. 오른쪽으로 가고 싶지만 왼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두아르테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주범으로 불우한 환경과 자신을 둘러싼 진저리 쳐지는 가족들을 지목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족쇄에 묶여 자신의 삶이 벼랑 끝에 서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문학비평가들 또한 본서를 범죄심리학적 측면과 사회학적 관점에서 대동소이한 의미로 해석했다.
책을 시작하며 두아르테는 자신의 험한 인생 이력을 만들어 준 이들이 자신의 가족이며 동시에 원수임을 고백한다. 소위 '불행 유발자들', 가족!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럴까? 책을 덮으며 던진 사유의 물음이다.
존경하는 나의 멘토 목사님께서는 "가족은 특별한 타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삶이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 속에 묶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야 할 책임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가족은 남보다 조금 더 특별한 타인일 뿐이라는 말은 개별적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나약함에 대한 일갈이다.
주체성을 상실한 채 자신의 환경과 조건만을 탓하며 모든 잘못과 불행의 원인을 가족과 가정 환경 즉, 타인에게 돌린다. 이는 곧 수동성에 찌든 한 명의 인간이 자신과 가족을 역기능적으로 엮는 가장 손쉬운 핑계다.
두아르테는 자신의 인생이 불우한 가정환경과 원수 같은 가족들에 의해 '이생망'했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겠지만 두아르테가 삶의 비극적 결말을 오롯이 가족에게 전가함은 그가 얼마나 인생에 대해 주체적이지 못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개별적 자아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상실했기에 가족과 내가 건강한 분리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수많은 가정은 비극의 주요 무대다. 작가는 내전 후 각종 사회 문제와 이슈로 점철된 스페인 사회의 단면을 한 인물과 그의 가족을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냈다. 동시에 두아르테라는 이방인을 통해 가족 속 개별적 주체로서의 인간 실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오늘도 개인과 가족이 엮여 비극과 참상의 모판이 되어가는 현대 가족의 비애가 매스컴을 장식한다.
가족은 특별한 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