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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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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숨기는 게 많아, 인생에서는 B+짜리 학생, 무엇보다 먼저 바그너와 스트라우스를 응얼거리는 사람, 불법 외인, 정서적 외인, 장르광, 황화 : 신미국인, 침대에서는 훌륭함, 과대평가되고 있음, 파파 보이, 감상주의자, 반낭만주의자, _____분석가(빈칸은 스스로 채우도록), 낯선 사람, 추종자, 반역자, 첩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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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헨리의 아내 릴리아는 이런 내용의 메시지가 담긴 종이를 남겨두고 여행을 떠난다. 헨리 박,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흔히 우리가 흥신소라고 부르는 그런 류의 회사를 다닌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물론 아내는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헨리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한인들을 상대하는 청과상을 열었다. 아버지는 청과상 일로 돈을 벌고 어느 정도 자리도 잡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헨리의 어머니는 집안일만 하다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겨우 열 살 밖에 되지 않는 헨리를 보살펴 주기 위해 아버지는 한국에서 아줌마 한명을 데려왔다. 20년 동안 헨리와 아버지 곁에서 일한 아줌마, 그러나 헨리는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 그냥 한국식으로 '아줌마'라고 부르면 됐기 때문이다. 헨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줌마는 한국의 어느 곳에서 살듯이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나 권리, 정체성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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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p.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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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있는 헨리. 그러나 그도 완벽한 "네이티브 스피커"라고 할 수 없다. "박병호"가 아닌 "헨리 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금새 알아버린다. '박'이라는 성은 중국인도, 일본인도 사용하지 않는 한국인만의 성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가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긴 메시지의 의미를 곱씹어 보던 헨리는 새로운 임무를 맡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가 새롭게 맡은 임무는 한국계 시의원 존 강을 밀착 조사하는 것이다. 퀸스에서 시의원이 된 존 강은 뉴욕시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다. 헨리는 존 강의 선거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지금까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어머니도, 아줌마도 그랬다. 반면에 존 강은 달랐다. 보다 나은 삶을 원했고, 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원했다. 자신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시민들이 하는 일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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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정체성이 주는 희망을 위하여 이곳에 와 있다. 그 정체성이 어쩌면 내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 삶의 구멍가게와 교회에서 안전만을 원할 때, 공적인 규모로 드러났던 그 정체성. (p.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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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제가 발생해 추락하기 시작한 존 강의 정체성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해 결국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것이 바로 이민자의 한계인 것이다. 만약 그가 네이티브 스피커였다면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갔을 문제가 '역시 이민자들(유색인종)은 다 그래'라는 선입견이 붙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고 백인 여자와 결혼까지 한 헨리지만 그의 아버지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주로 한인들을 상대하며 장사를 했던 것처럼 그 역시 이민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이민자들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자신이 절대 '네이티브 스피커'가 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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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는 이곳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빈약했기 때문에 그것이 허용하는 야망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재편성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간을 다시 발명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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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창래는 세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 1.5세대다. 그는 미국 사회에 동화되고 싶어서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1995년 『네이티브 스피커』를 발표해 6개 문학상을 휩쓴 그는 1999년에는 <뉴요커>가 선정한 '40세 미만의 대표적인 미국 작가 20명' 중 한 명으로, 2002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인문학과 창작과정 교수로 재직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실 1995년에 한국에서도 『네이티브 스피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지만 '네이티브 스피커'라는 제목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탓인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원한 이방인』에는 미국 사회에 동화되어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다양한 이민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통해 미국 사회에 동화되고 싶어 작가가 되었다는 저자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민 1.5세대인 저자와 그들은 한국을 모르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그들의 세계를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한국은 어떤 곳인지, 또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 충분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체성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쯤에 있는지 한번 돌아보자.
2008/06/06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