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엘리자베스 히키 지음, 송은주 옮김 / 예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젬병인 것이 한 두개가 아닐지언대, 그 중에서도 그림이라는 것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게 무슨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인지, 인상파 화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그때 뿐이다. 다음에 다시 마주하게 되면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냥 그렇게 대하곤 한다. 나의 안목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림들 앞에서 언제나 좌절을 맛보곤 한다.

 

그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누구의 어떤 그림이라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는 화가가 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와 구스타프 클림트이다. 그들의 그림에는 다른 사람들은 절대 흉내낼 수 없는 터치와 언어가 담겨져 있다. 장황한 설명이나 묘사가 없어도 한눈에 고흐의 그림이구나 혹은 클림트의 그림이구나를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담겨져 있다.

 

 

<키스>, 1907~1908년

 

이게 어떤 화가의 그림이라는 것은 몰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그림 <키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물음표들이 솟구친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여자를 품에 안고 있느라 얼굴을 볼 수 없는 남자, 얼핏 구릿빛 피부에 오똑한 코를 가졌다는 것 정도만 짐작할 수 있는 이 남자는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벼랑을 등 뒤에 두고 불안하게 발끝으로 지탱하며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도 불안한 기색은 커녕 편안하게 눈을 감고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저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

황금빛의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있는 두 남녀, 어쩌면 저 여자는 지체 높은 신분의 남자를 상대로 벼랑 끝에 매달린 듯한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자의 얼굴은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도 안 보여주는 것보다는 조금 보여주는 것이 더 궁금증을 유발한다고 하는데, 보면 볼수록 궁금증이 증폭되는 그림이다.

 

세상 모든 여자를 아낌없이 사랑했던 천재 화가, 클림트

으레 화가들 곁에는 많은 여자들과 추문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클림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의 곁에는 많은 여성 후원자들과 모델, 연인들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들과의 사이에서 나온 12명의 사생아들도 있었다.

이 정도되면 클림트는 타고난 바랑둥이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곁에는 유독 순수한 사랑을 지키며 그가 죽는 순간까지 그의 곁에 있었던 한 여자가 있었다.

에밀리 플뢰게, 구스타프보다 12살 어린 그녀는 클림트에게서 그림 수업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클림트,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의 그의 여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그와 그를 스쳐지나가는 많은 여자들을 애태우며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싫었다. 그런 여자들과 같은 부류의 여자로 취급받는 것이 싫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 여자들처럼 온전히 그의 여자가 되길 원한다면 그녀들처럼 클림트에게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클림트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처럼 그녀 또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녀는 클림트처럼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 욕망을 채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오직 첫사랑인 클림트만 바라봤을 뿐이다. 다행히 클림트는 죽기 직전에 그녀를 찾았고,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도 그녀의 이름이었다. 덕분에 그가 죽은 후 36년 동안 그녀는 클림트와의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우린 어렴풋이 <키스> 속 여자는 에밀리 플뢰게이며, 얼굴을 감추고 있는 남자는 클림트 자신이 아닐까 짐작하며 물음표들을 잠재울 수 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클림트가 아니라 그를 사랑한 에밀리 플뢰게이다. 베르메르를 향한 소녀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묘사 때문에 소설로 몰입할 수 있게 해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귀고리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런 강력한 몰입은 없었다. 좀더 섬세하게 에밀리 플뢰게의 감정을 묘사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에 책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클림트의 그림들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 그림들을 그리게 된 과정이나 뒷 이야기들이 곁들여져 있어서 그것을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클림트, 그는 바람둥이에다가 자신의 자식조차 나몰라라 했던 냉혹한 남자였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내게는 매력적인 작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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