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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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지루한 하루, 한 템포 늦은 하루, 너무 바쁜 하루...

여기 완벽한 하루를 꿈꾸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들고, 다시 그 다음 날 눈을 뜰 때까지 오직 자살만을 생각하는 남자이다.

아침 뉴스 시작 2분 전에 잠이 깬 그는 아스피린 한 알을 먹고,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출근을 하기 위해 면도를 하면서, 성능 좋은 삼중 면도날 면도기로 자신의 대동맥을 베어 버린다. 갑자기 복통이 찾아오면 온갖 종류의 약과 술을 섞어 마신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는 쇠줄로 만든 올가미를 천장에 걸고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버팀목으로 삼아 목을 매단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컴퓨터를 켜고 시한폭탄을 설치한 뒤 타이머를 점심시간 1분 전인 11시 59분으로 맞춰 놓는다. 퇴근을 할 때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사무실 창문으로 뛰어 내린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잠자리에 들면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성냥에 불을 붙인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변함없이 청명한 아침 햇살을 보게 된다.

난 양복 속으로 몸을 들이민다.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나는 매일매일 마치 선물용 포장 상자처럼 넥타이를 두른다. 하지만 아무리 예쁘게 포장을 한들 나라는 선물을 풀러 보는 사람이 없으니 개탄스러운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불만족스럽다. 사람들은 그저 선물 상자만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아무개라는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보여 주기 위해 직접 포장을 개봉하는 그런 유(類)의 누군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본문, p26~27>

그는 보통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복통을 호소한다. 그의 몸 속에는 길이 6미터 짜리 백상어가 살고 있어, 그의 몸 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의 내장 기관들을 갉아 먹고 다닌다. 그러나 이 백상어 또한 그의 자살에는 크나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 그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다. 그가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자 목 속으로 기어 올라와 결국 입 밖으로 뛰쳐 나가고야 만다.

그는 그 대신 완벽한 그를 대신할 배우를 사서 자신인양 연기하며 돌아다니게 하고, 예쁘고 귀여운 아내와 아이들을 고용한다. 동료들과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매주 개그맨과 대학 교수에게 자신이 나누어야 할 대화의 원고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남들 눈에는 그가 아주 지적이고 멋진 남자이며, 문화생활을 즐기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완벽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6개월전 친구 6명의 합동 영결식을 치루고 공동묘지에 묻었다. 비록 인간으로서는 존재하지만 친구로서는 이미 유령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시신도 없는 친구들의 합동 영결식을 지내고 매일 공동묘지를 찾아간다. 

집으로 돌아온다. 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절망과 고독이 내 침대 위에 누워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 녀석들은 자제라는 말을 모르는지 밤만 되면 내 곁을 찾아와 수없이 사랑을 나누곤 한다. 난 다만 녀석들의 건강이 걱정될 뿐이다. 맥주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연다. 텅 비었다. 어제 분명히 장을 봤는데... 순간 등 뒤에서 캔을 따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두려움이 내 마지막 캔 맥주를 염치없이 홀짝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문, p167>

그로테스크, 이 한 단어보다 이 책을 더 잘 나타내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는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 나 자신이 정형화된 인간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는 기발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그의 하루를 엿보다 보니 소설 속 그가 참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스물다섯 살에, 나름대로 보수도 많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 받으며 살고 있는 그가 왜 매일 자살을 꿈꾸어야만 하는걸까? 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걸까?

그에겐 그의 고독을 달래줄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 그가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 조차도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은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가면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진짜 얼굴은 무표정하고 무관심할 뿐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숨막혀 한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런 생활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미 중독되어 있다. 그는 값비싼 옷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완벽한 남자처럼 행동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한다. 만약 그가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벗어 던진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웃고 있는 가면조차 보여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그것을 버리지는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나 자신은 한번도 죽음을 꿈꾸어 본 적이 없는지, 남들이 동경하는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아둥바둥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의 삶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차마 그것에 맞서지 못하는 마음, 차라리 죽음이 쉬울거라는 자신감. 어쩌면 그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독백들이 자꾸 되뇌여 진다.

 내게도 친구가, 진정한 친구, 소꿉친구, 여자 친구들, 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정을 붙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거리감, 거짓말로 인한 상처, 성인이라 착각하며 갖게 되는 서로 다른 성향, 이기주의적인 태도, 비열하고 무기력한 생활, 자존심 세우기, 매사에 심각하게 대하는 태도, 소리 없이 주고받는 상처, 미소와 무관심으로 치장한 채 행하는 공격 등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온갖 종류의 벌레들 때문에 이제 내 주변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슬픈 일은 아니다. 슬프지 않다는 그 사실이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 자체로는 그다지 슬프지 않다. 나는 시간과 삶의 무게에 견디지 못하는 그런 우정은 좋아하지 않는다. 갑자기 절교를 하거나, 그럴싸한 일로 욕설을 주고받는다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의 우정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시나브로 자연스럽게 사라져 간다. 우리를 이어 주던 그 연결 고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끊어진다 하더라도 그 고리가 너무도 가늘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정의 소멸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 몸의 모세 혈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게 바로 그 연결 고리이다. 어느 날, 그 연결 고리의 모세 혈관이 모조리 끊어지고 나면 우리는 모두 남남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모르는 타인처럼 말이다.  가끔은 그렇게 잊혀졌던 친구들이 자동 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기는 일도 있다. 간만에 동창회나 저녁 식사 모임 같은 "그래, 요즘은 무슨 일 하는 거야? 어떻게 사는 거야?"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자리에 나오라는 연락을 한다. 우리는 무조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어야 하고, 어떻게 되어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변치 않는 존재로 머물 수가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누군가가 되는 것, 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누군가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자신에 불과했을 뿐이다. <본문, p17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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