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 살고 싶은 섬 하나
김도헌 지음, 이병률 사진 / 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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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가 바로 천국입니까? 

   그는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 추크에서 살고 있습니다. 원주민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마을에 모든 불이 꺼지면 별빛과 달빛만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곳,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지천인 곳, 그가 살고 있는 섬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미크로네시아 추크 섬에 정착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헷갈립니다. 아무래도 행복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채 괴로워하는 이방인처럼 보입니다. 그곳이 진심으로 좋아서가 아니라 마치 세상 끝에 있는 섬으로 도망친 것처럼 보입니다. 여전히 지난 사랑과 상실에 괴로워하면서 말이죠.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즐겁고 재미난 일들이었는데, 누군가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킴, 여기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이제는 한국보다 더 편하지 않아? 물론 쇼핑몰이나 스타벅스 같은 건 없지만 여기선 그런 것들이 필요 없잖아. 네가 살던 곳은 너무 복잡하고 매정한 세상이야. 제도를 앞세워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인간미를 말살하는 그런 데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겠어?"


   "개인의 삶을 놓고 본다면 여기가 훨씬 인간적이고 따듯하지. 한국이라는 숨막히는 데에선 한 인간이 불합리하게 억압받고, 가진 자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없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며 이용하지. 그렇지만 내가 이곳에 살면서 견딜 수 없는 것은, 다른 거야. 너희들의 그 몰염치함. 평소에는 타인들을 잘 배려하고 친절하지만 너희들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 난 그런 게 견디기 힘들어. 물론 내가 너희 풍습이나 예절에 서툴러 실수할 때도 있지만 그건 너희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전혀 익숙하지 않아 오해를 해서 그런 거지, 절대로 내가 너희를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야. 아무 설명 없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반응할 때 나로서는 난감하고 화가 날 때가 많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그렇게 돌변하면 배신감까지 느껴." (30~31쪽)


   그렇다면 그가 살고 있는 '추크'는 어떤 곳일까요? 원래 추크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몇 년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돼 알려지기 시작한 곳입니다. 2차세계대전 때 추크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고, 일본 제국의 해군 기지이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추크 곳곳에는 일본이 조성한 2차세계대전 위령비와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해의 크기가 태평양에서 두번째이며 전세계 참치의 60퍼센트가 이곳에서 잡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저 세상 끝에 있는 조용한 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이곳에서 함께 일하던 파트너를 읽고난 후 그는 상당히 괴로워했지만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그는 관상어 사업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그가 보낸 관상어 샘플이 마음에 들었던 한국의 한 사업가를 그를 찾아갑니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좋은 데서 사네. 부럽다."

   "사장님, 천국은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천국이 아닙니다. 그냥 일상일 뿐이죠. 천국은 나그네들이나 느낄 수 있는 거겠죠."

   "그런가. 김 사장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그래, 천국은 나그네들만 느낄 수 있겠지. 그러면 김 사장은 나그네가 아니라는 말인가?" (132쪽)


   그의 질문에 '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그에게도 그곳이 일상이었을까요? 아니면 천국이었을까요? 하지만 지금쯤 그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천국 같은 곳이 그에게도 '일상'이 된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렇다면 또다른 질문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데,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집니다.


   "걱정하지 마. 사랑할 때 사랑하지 못하고. 지나간 다음에 사랑하고 후회하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그렇지 않아?"

   "사람 사는 게 다 어긋남의 연속인데. 엇갈리고 어긋나고. 그리고 후회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 (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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