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 소설가 박완서 대담집
김승희 외 지음, 호원숙 엮음 / 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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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당신을 참 많이도 오해했습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여전히 읽히고 있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 그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5주기를 맞아 맏딸 호원숙이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엮어냈습니다. 이 대담집은 1980년부터 2010년까지 사람들이 그와 나눈 이야기를 묶은 것으로, 소설가 김연수와 정이현, 평론가 신형철, 한겨레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최재봉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존경했던 박완서 작가지만, 내가 그의 작품을 아끼고 열심히 읽었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나가면서, 우연히 몇 편을 읽긴 했지만 오롯이 그의 작품을 읽기 위해 읽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잘 알지도 못하는 '오해'로 그의 작품을 아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쓴 잘못된 평론을 그대로 옮겨 평한 것도 본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몇 편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지레 짐작해 버리고 멀리했습니다. 그의 글은 말랑말랑하기는 하겠지만, 날카롭고 뽀족한 것이 숨어있지는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다른 시대를 산, 그래서 늘 자극적이고 기발한 이야기를 찾는 내게는 고리타분하거나 지루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말들은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냈을 때도 들었던 말이에요. 그 책에서는 이번보다 늙은이들 얘기를 더 많이 썼었지요. 그래서 저는 내 작품들은 노년층에서 많이 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조사한 것을 보니 제 책을 가장 많이 사는 세대들이 이삼십대라는 겁니다. 깜짝 놀랐지요. "정말이에요? 정말이에요?" 하고 여러 번 되물어봤습니다. (163쪽)


   이삼십대들이 그의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 윗세대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정도로 냉정한 소설'(162쪽)을 쓰기도 했습니다.


   선생님한테는 사늘함이 있어요. 서늘한데 따뜻한. 따뜻한 것은 오래 남는 모양새라서 알겠는데 그 따뜻한 사늘함은 유리병에 저장된 채로 진하고 또 진해요. 그 병을 들이켜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죠. 그것이 아직도 우리가 당신 소설을 읽는 이유이며, 아직 우리 옆에 당신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맞아요. 건배를 할 때마다 매번 그러셨어요. "행복하자!" 사늘한 말투였어요. 그럴 때마다 행복의 감각은 폐부를 휘감았더랬습니다. 자신을 찌르지 않으면 무엇도 자기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211쪽)


   시인 이병률은 그를 사늘하다고 기억합니다. 서늘한데 따뜻하다. 늘 따뜻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라 그의 글도 마냥 그렇기만 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글이 따뜻하면서도 어딘가에는 날카롭고 냉정한 것이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게 결국은 동시대인과 소통하고 싶어서가 아니겠어요? 모두에게 다 통하는 언어를 쓰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주인공이 노인이건 젊은이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언어라고 생각해요. (166쪽)


   그는 끊임없이 동시대인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소통하려고 노력했는데, 무작정 귀를 닫아버린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그와 동시대인으로 살며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그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아야겠습니다.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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