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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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말하는대로' 소원을 들어줬을뿐! 그러니 소원 함부로 말하지마라!

   우리는 가끔 이런 상상들을 합니다. 내 키가 5cm만 더 컸더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내 얼굴이 조금만 더 예뻤더라면, 나에게 글 쓰는 재능이 있었더라면, 하고 말이죠.​ 이런 작은(!) 소망들만 이루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여기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작은 악마가 있습니다. '아자젤'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악마는 뿔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겨우 2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셔츠 주머니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우리의 작은(!) 소망들은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대로, 그리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말이죠.


   "아, 아자젤은 ─ 아자젤이 그 악마 이름입니다 ─ 상냥합니다. 제 생각에는, 원래 사는 곳에서 좀 무시를 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 힘을 이용해 저에게 인정받으려고 좀 심하게 안달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를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 그 힘을 쓰지는 않으려고 하더군요.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을 생각해 보면 그래야 마땅한데 말이지요. 아자젤 말로는, 자기 힘은 반드시 다른 이들을 위해 착한 일을 하는 데에만 쓰여야 한답니다." (「2센티미터짜리 악마」, 20~21쪽)


   이 작은 악마를 불러낸 것은 화자의 친구 조지입니다. 작가인 화자 ─ 어쩌면 아이작 아시모프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는 자신의 글감을 찾기 위해 만날 때마다 자신을 무시하고 돈 한 푼 쓸 줄 모르며, 심지어 돈까지 빌려가는 조지의 이야기를 기꺼이 청해 듣습니다. 다소 황당하기는 하지만 조지의 작은 악마 이야기가 그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 악마를 불러내는 법이 적힌 스벤의 책을 찾아냈거든요. 저는 한때 우리 가문 소유였던, 지금은 폐허가 된 영국의 낡은 성에서 그 책을 찾아냈습니다. 그 책에는 정확한 관목의 종류, 관목을 태우는 방법,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 힘의 원천의 이름들, 주문을 외우는 어조 등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고대의 영어, 그러니까 앵글로색슨어로 적혀 있었지만 마침 제가 언어학자인 덕분에 ……." (「2센티미터짜리 악마」, 18~19쪽)


   조지, 아자젤 2인조가 펼치는 활약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조지에게는 성격이 급한 '모르데카이 심스'라는 작가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는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방금 전에 출발해서 평소보다 더 기다려야 할 때,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예약을 했는데 예약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때, 은행 창구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때마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뭔가를 기다리는 시간만 줄어들어도 자신이 쓰는 원고의 양이 10에서 20퍼센트쯤 늘어날거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의 양이 늘어나면 당연히 그의 수입도 늘어날테고, 조지에게 멋진 식사를 대접하는 날도 많아지겠죠? 그래서 조지는 그를 도와주기 위해 작은 악마 '아자젤'을 불러냅니다.

   아자젤은 조지의 친구를 도와주려면 확률의 법칙에 간섭해야 하며,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친구의 삶이 질서 정연해지는 대신 다른 것들은 조금 무질서해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에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게 되는 시기가 예정보다 250만 년이나 더 빨리 찾아온다고 하지만, 어차피 조지는 그때까지 살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아자젤에게 친구를 도와줄 것을 청합니다.


   "은행에 들어갔는데 줄이 없는 빈 창구가 있었고, 직원은 생글거리며 웃고 있더라고. 우체국에 갔을 때도 줄이 없는 빈 창구가 있었고, ─ 뭐, 자네 설마 우체국 직원이 생글거릴거라고 기대하지는 않겠지 ─ 그 직원은 거의 아무런 불평도 없이 내 편지를 등기로 부쳐 줬어. 내가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는 그 즉시 버스가 도착했고, 어제 러시아워에는 내가 손을 채 다 들기도 전에 택시가 방향을 바꾸더니 내 앞에서 멈추더라고. 게다가 체커 캡이었어. 그리고 5번지와 49번가로 가자고 하니까 운전사는 시내 거리 구석구서을 잘 안다는 티를 팍팍 내며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 줬어. 심지어 그 운전사는 영어로 말하기까지 했다니까." (「글 쓸 시간」, 156쪽)


   며칠 후 조지를 다시 만난 모르데카이는 조지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전혀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원하는대로 이뤄졌는데, 그는 왜 글을 못 쓰게 된 것일까요?


   "나는 전혀 글을 쓸 수 없어."

   "대체 왜 못 쓴다는 거야?"

   "생각할 시간이 없어졌거든."

   "뭐가 없어져?" 제가 희미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뭔가를 기다리는 동안, 줄을 서거나 모퉁이에 서 있거나 관공서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생각을 했었어. 뭐를 쓸지 구상했었다고. 그 시간은 내게 가장 중요한 준비 시간이었단 말이야."

   "난 그런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어.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지." (「글 쓸 시간」, 162~163쪽)


   하지만 아자젤은 한번 소원을 들어주면 절대 그 소원을 철회해 주지 않기 때문에, 친구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했던 조지의 속셈은 완전히 틀어지게 됐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조지는 '엘더베리'라는 돈 많은 조각가의 대부입니다. 엘더베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도 많았고, 자신의 작품을 팔아 번 돈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조지는 그녀가 매우 아름답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 때문에 남자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피그말리온'처럼 말이죠.


   "고대의 이야기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을 말한 거란다. 피그말리온은 너처럼 조각가였어. 차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남자였지. 그리고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었어. 남자로서 그 사람의 편견 때문에 여자를 조각한 게 다르지만 말이야. 피그말리온은 그 여자 조각품을 갈라테아라 불렀단다. 그 조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피그말리온은 그것과 사랑에 빠졌지. ……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 기도를 했고, 아프로디테는 그 진심 어린 기도에 탄복해 조각에게 생명을 주었지. 갈라테아는 살아 있는 여자가 되었고 피그말리온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단다." (「갈라테아」, 313~314쪽)


   조지의 이야기를 들은 엘더베리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 '행크'에게 누군가 생명을 줄 수만 있다면, 차갑고 단단한 대리석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백만 달러를 줄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지는 아자젤을 불러 엘더베리의 소원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주문합니다.


   "넌 단지 차가운 걸 따뜻하게, 돌을 살을, 단단함을 부드러움으로 바꾸기만 하면 돼. 부드러움이 특히 중요해. 내가 보기에 엘더베리는 조각을 껴안고, 자기 손끝으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살결을 느끼고 싶어 하니까. 너무 단단하면 안 돼. 그 조각은 인간을 완벽하게 닮아 있으니 넌 그냥 그 안을 근육, 혈관, 장기, 신경으로 채우고, 겉을 피부로 덮기만 하면 된다고." (「갈라테아」, 317쪽)


   엘더베리의 소망대로 행크는 진짜 사람이 되었고, 조지 후 며칠 후 백만 달러를 받기 위해 엘더베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엘더베리는 "행크가 부드러워지길 원한다고 말한 건 모든 곳이 영원히 부드러워지길 바란다는 뜻이 아니었다"며 오히려 조지에게 화를 냅니다.


   "조지,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설마 자네가 그 친구를 돕겠다는 생각에 아자젤과 합심하여 엉뚱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 친구를 비참함과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내용인 건가?" (「논리학에 따르면」,196쪽)


   조지와 아자젤은 늘 이런 식으로 소원을 들어줍니다. 상대가 말하는대로 소원을 들어주지만, 그 결과는 항상 친구들을 더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밀어 넣습니다. 물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섣부르게 조지에게 소망을 말한 친구들에게도 잘못이 있긴 합니다.


   『아자젤』에는 조지, 아자젤 2인조가 활약한 에피소드 18편이 담겨 있습니다. 18편이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지만, 친구들의 작은 소망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궁금해서 다음 이야기를 또다시 펼쳐보게 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머릿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단편들은 웃기게 풍자할 생각으로 쓰였으며, 만약 글의 성격이 너무 과하고 아시모프답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건 내가 일부러 그렇게 썼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걸 경고라고 생각하시길. 뭔가 다른 걸 원한다면 이 책을 사지 말라. 괜히 샀다가는 짜증만 날 테니까."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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