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포기하며 사는 20대들에게! 이렇게 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꿈이 회사원이고 공무원이었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주 어릴 적에 제 꿈은 우주인도 되었다가 과학자도 되고, 라디오 DJ도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자 어릴 적에 꿨던 꿈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극히 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주인이 꿈이었던 아이가 흔한 직장인이 되기까지 다양한 과정들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결론은 흔하디 흔한 직장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윗세대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듣곤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꿈도 없고 열정이나 도전의식 같은 것도 없이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머릿속 생각이나 상상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왜 이토록 평범함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언제부터 꿈꾸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상처투성이인 우리들에게 누구나 다 아프니 그저 이겨내라고 말합니다.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세대들이 던지는 이런 말들은 과히 폭력과도 같습니다.


   한 회사 사장님이 신입사원들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왜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는냐.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봐라. 다 자기 집 차고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지 않았느냐?" 그러자 한 신입사원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그랬대요. "차고라고? 우리집에는 차고 없는데?" 그랬더니 동료가 그러더래요. "차고는 무슨, 차도 없는데. 아, 맞다. 집도 없구나."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 자체가 꿈깥은 일입니다. 안주가 사치인 시대, 점점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p.15)


   김영하 작가는 이런 20대들에게 지난날 자신이 했던 것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려라, 예술에 투신하라, 인생을 걸어라, 이렇게 충고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20대로 살았던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객관적으로 비교할 뿐입니다.

   그가 20대로 살았던 70~80년대는 경제성장률이 1년에 10퍼센트가 될 정도로 경제가 성장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했고, 그래서 부모 세대보다 더 부유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1986년의 대학 취학률이 겨우 22.3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학만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서 한번 직장을 잡으면 평생 직장이 보장되곤 했습니다.

   김영하 작가 역시 그랬습니다. 장교로 임관만 한다면 전역과 동시에 대기업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탄한 길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ROTC 후보생을 그만두고 군대에 갔다가 제대 후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그가 입사원서 한 장 내지 않고 습작에 매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성장률이 10퍼센트를 넘나드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고,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몇 년 동안 부모님께 빌붙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면 자신 또한 그때처럼 행동할 수 없었을거라 말합니다. 게다가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고, 부모님도 안정적인 직장이 없고, 집도 아파트 담보 대출을 떠안고 장만한 것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당장의 벌이를 위해 저처럼 흔하히 흔한 직장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잘 느끼자! 감성근육을 키우자!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되자! 

   김영하 작가는 지금의 20대들에게 낙관주의자가 되는 대신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되어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항상 파이팅 넘치는 낙관주의자가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낙관주의자에게는 함정이 많습니다. 잘 될 때는 괜찮지만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 사고'와 '낙관적 태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듭니다. 이것은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p.24)하라는 것입니다. 9ㆍ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대피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곧 소방관이 구하러 올거라는 지시를 받고 자기 사무실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동차 안에 연기가 자욱했지만 기관사가 방송으로 곧 열차가 출발할거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동요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나치 수용소에 수감된 수감자들은 연합군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연합군은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대만큼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p26)고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했고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소수이긴 했지만 생존 확률이 높았습니다.

   이들처럼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되려면 남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사고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습니다. 스마트폰 액정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그저 흘려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누구나 보고 있는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 좋습니다.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바로 김영하 작가가 지금의 20대에게 내리는 처방입니다.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다양해질 겁니다. 엄친아나 엄친딸 같은 말도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자기만의 감각과 경험으로 충만한 개인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그것도 인정하게 됩니다. 요즘과 같은 저성장의 시대에는 모두가 힘을 합쳐 한길로 나아가는 것보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나름대로 최대한의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것, 그런 개인들이 작은 네트워크를 많이 건설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문학을 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문학만큼 다양한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작가마다의 독특한 스타일로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세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태생적으로 개인주의적이며 우리에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입니다.

   많은 돈을 벌거나 명예를 쌓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감각들을 최대한 활용하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깊게 느끼는 삶,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내면을 구축하는 삶, 이런 삶의 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잘 느끼자. 감성 근육을 키우자. 그리하여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p.35~36)


   김영하 산문집 삼부작 중 두번째 책인 『말하다』는 그동안 그가 여러 매체를 통해 했던 강연과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TEDxSeoul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과 수많은 청년들에게 진정한 힐링을 줬던 SBS <힐링캠프> 강연 내용도 실려 있습니다. 처음부터 글로 쓰여진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로써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라서 앞서 나온 산문집 『보다』보다 훨씬 큰 울림이 있는 산문집입니다.

   꿈꾸는 법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흔하고 흔한 직장인들에게, 낙관적이지 못해 고민인 비관주의자에게, 현실에 상처 받고 위로에 더 큰 상처를 받은 당신이라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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