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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디지털 심리정치 시대 빅3! 빅브라더, 빅데이터, 빅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독재자 '빅브라더'는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들을 감시합니다. 분명 『1984』는 조지 오웰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1949년에 쓴 소설인데,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빅브라더'와 '텔레스크린'은 무엇일까요?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자동차 내부, 심지어 백화점 탈의실 앞에까지 설치되어 있는 CCTV가 그것일까요? 이것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CCTV가 '그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등장한 이상 그 자리는 이것에게 내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빅데이터'에게 말이죠.
'빅데이터'는 우리가 쏟아내는 모든 말과 행동, 습관 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서 패턴화하고 분석합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모르고 있는 부분까지 수집해서 데이터로 제시합니다. 나 자신도 A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A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A를 사라고 떡하니 내놓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편하게 됐다며 덥썩 그것을 사버립니다. 얼마나 편리한 일입니까? 알아서 우리가 관심 있을 법한 것들을 내놓으니 말입니다.
오늘날 빅데이터는 빅브라더의 모습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빅데이터는 빅딜Big Deal이기도 하다. 빅데이터는 무엇보다 큰 장사다. 개인 관련 데이터는 남김없이 상품화되어 금전적 거래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인간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패키지로 다루어지고 거래된다. 인간 자신이 상품으로 전락한다. 빅브라더와 빅딜은 동맹을 맺는다. 감시국가와 시장은 하나가 된다. (p.92~93)
이런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상품을 탐색해서 선택할 자유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상품을 선택해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장이 팔고자 하는 상품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빅데이터'는 시장에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빅데이터의 몸값이 비싼 이유는 활용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디지털 심리정치의 시대로 들어가고"(p.24)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감시만 했다면, 디지털 심리정치의 시대에서는 "수동적 감시의 단계에서 능동적 조종의 단계로 전진"(p.24)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더 깊은 자유의 위기 속으로"(p.24)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빅데이터는 인간 행동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미래는 계산하고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자유로운 결정의 부정성을 사실관계의 긍정성으로 탈바꿈시킨다. 인간 자체가 긍정화되어 양화하고 측정하고 조종할 수 있는 사물이 된다. 사물은 자유롭지 않지만, 어쨌든 인간보다 더 투명하다. 빅데이터는 인간의 종언, 자유 의지의 종언을 선포한다. (p.25)
오늘날의 사회는 점점 더 투명해질 것을 요구하고, 점점 더 투명해질 수 있도록 기술이 발달하고 있지만 그 투명성으로 인해 우리들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조종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명사회』로의 전환을 경계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는 심리학적 프로그래밍과 제어를 통해 지배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는 통치술이다. 따라서 자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은 탈심리학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기술은 예속화의 매체인 심리정치를 무장해제시킨다. 주체는 탈심리화되고, 비워진다. 이로써 아직 이름이 없는 삶의 형식을 위한 자유가 생겨난다. (p.110)
우리는 빅데이터로도 분석될 수 없는 지혜로운 바보, 현대의 이단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심리정치의 시대에서 통제되거나 조종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병철은 아웃사이더, 천치, 바보가 되어라고 말합니다. 바보(Idiot)는 기인(Idiosynkrat)입니다. "Idiosynkrasie"는 독특함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빅데이터로도 분석하기 힘들어집니다. 동일한 것이 반복될 때 분석 또한 빠르게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바보는 "어떤 상상을 초월하는 외부 공간에 거주"(p.114)하며, "바보짓은 자유의 실천을 의미"(p.113)합니다.
바보는 현대의 이단아다. 이단은 본래 선택을 의미한다. 즉 이단아는 자유로운 선택권을 쥐고 있는 자다. 그는 정통에서 이탈할 용기가 있다. 그는 순응의 압박을 용감하게 떨쳐버린다. 이단아로서의 바보는 합의의 폭력에 맞서는 저항의 형상이다. 그는 아웃사이더의 마력을 보존한다. 순응의 압박이 점점 더 강화되어가는 오늘날, 이단적 의식의 날을 버려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다. (p.114)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것들 중에 "인공지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태어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지능"을 가진 것은 시스템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것들 사이에서는 완벽하게 제 할일을 해냅니다. 반대로 시스템 내에 없는 것들이 주어지면 오류가 생깁니다.
우리들은 이런 '지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지혜로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 "완전히 다른 지식에도 접근할 수 있고 단순히 정보화되고 네트워크화되어 있는 상태를 넘어, 더 고차원적 영역으로 상승"(p.115)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바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