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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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빅데이터로 읽히고, 빅브라더에게 감시받는 유리인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점점 더 "투명"해질 것을 요구합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분야에 걸쳐 숨김없이 드러내라고 합니다. 정보는 즉각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유명인사들의 사소한 행적까지 거리낌없이 공개됩니다. 이렇게 모든 정보가 공개된다면, 이 사회는 진정으로 공평하고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포스트프라이버시'의 이데올로기는 극히 단순하다. 이 이데올로기는 투명성의 이름으로 사적 영역의 완전한 포기를 요구하며, 이를 통해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하고자 한다. (p.17)


   이것은 '투명성'의 함정입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의 고유한 정보 역시 공개될 수 있으며, 이런 정보들이 모여 빅데이터가 되고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 패턴들이 그대로 읽혀집니다. 심지어 이런 데이터 분석들을 통해,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통제될 수도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정보는 일방적으로 공유되고 통제됐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합니다. 디지털 사회에서 공개되는 정보의 특징 중 하나는, 『피로사회』에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불러온 '성과' 중심 때문에 스스로를 착취했던 사람들처럼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훤히 비추고 노출하는 사람들"(p.7)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외적인 강제가 아니라 내적인 욕구에 의해서 스스로에 대해 밝히기 시작할 때, 즉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이 드러나게 될까 꺼림칙해하는 마음보다 뻔뻔하게 그런 부분까지 내보이고 싶은 욕구가 앞서게 될 때"(p.7~8) 전면적으로 스스로를 전시합니다. 이렇게 "전면적인 전시와 노출에 밀려 비밀이 사라지는 바로 그때부터 포르노는 시작"(p.56)됩니다. 이런 자발적인 노출 또한 긍정성의 과잉이 불러온 단면입니다.


   정치인들은 행동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일반의 관심은 오히려 정치인 개인에 쏠려 있고, 이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이미지 연출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공론의 상실 뒤에 남은 빈자리 속으로 내밀한 것, 사적인 것 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공론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사적 개인의 공개다. 이로써 공론의 장은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공동의 행위를 위한 공간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점차 퇴색되어 간다. (p.74~75)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악플 또한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사회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이웃'이나 '일촌' 등과 같은 관계를 내세우며 거리까지 없애버립니다. 신비주의 전략을 사용하는 연예인들처럼,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숨겨진게 있어야 대상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존경심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내밀한 영역까지 보이고픈 욕구를 감추지 못하고 전면에 드러낼 때, 악플러들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게다가 디지털 매체는 익명성을 보장하고 즉각적인 감정의 분출이 가능합니다. "익명적 커뮤니케이션은 존경심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며, 조심성 없고 존중할 줄 모르는 문화의 확산에 함께 기여"(p.117)하고 있습니다. "손이나 타자기로 공들여 편지를 작성하는 사이에 즉각적인 흥분은 수그러"(p.118)들 수 있지만,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빨라도 너무 빨라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감정을 분출시킬 수 있습니다.


   존경심이 사라지면 공공성도 무너진다. 공공성의 붕괴와 존경의 소멸은 서로에 대해 원인이자 결과이다. 공공성은 무엇보다도 존경심을 가지고 사적인 것에 대해 눈을 감는 태도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 거리두기는 공적 공간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거리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내밀한 영역이 공적으로 전시되고, 사적인 것이 공개된다. 떨어짐 없이는 예의도 가능하지 않다. 이해 또한 떨어져 있는 시선을 전제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영역에서 거리를 파괴한다. 공간적 거리의 해소는 정신적 거리의 소멸로 이어진다. 디지털의 매체적 속성은 존경심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린다. (p.116)


   무엇보다도 디지털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대중들이 그토록 원했던 "투명성"이 초래합니다. 디지털 사회에서 우리가 남긴 모든 데이터들은 빅데이터로 수집되고 분석됩니다. 빅데이터들은 우리의 행동양식을 분석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지만, 정부나 정보기관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대중들이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유리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저 정보만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시도때도 없이 우리에게 노출되고 있는 무수한 정보들의 대부분은 가치없는 파편이기도 합니다. 사유를 통해 이 정보들이 재조합 될 때 비로소 유용한 지식이 되고,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 모든 클릭은 저장된다 내가 디딘 모든 발걸음은 역추적될 수 있다. 우리는 도처에서 디지털 발자취를 남긴다. 우리의 디지털적 삶은 네트워크 안에 정확히 모사된다. 삶의 완벽한 프로토콜이 남겨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해, 신뢰는 완전히 통제로 대체된다. 빅데이터가 빅브라더의 자리를 차지한다. 삶의 완벽한 프로토콜화는 투명사회를 완성한다. (p.211)


   한병철의 『투명사회』는 '투명성'을 강조하는 독일 사회의 주류 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을 제기해서 출간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고, 스스로 정보를 노출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공감과 경각심을 함께 가져다 주는 책입니다. 매일 SNS에 사로잡혀 사는 당신, SNS에 극히 사소한 부분까지 노출하는 당신, 그리고 SNS를 줄이고 싶은데 싶지 않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주민들은 수감자가 아니다. 그들은 자유롭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전시하고 훤히 비추어줌으로써 디지털 파놉티콘에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자기 조명은 타자 조명보다 더 효율적이다. 이 점에서 자기 착취와의 유사성이 드러난다. 자기 착취 역시 자유의 감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타자 착취보다 효율적인 것이다. 자기 조명의 메커니즘에서 포르노적 과시와 파놉티콘적 통제는 하나가 된다. 주민들이 외적인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적인 욕구에 따라 자기를 밝힐 때, 자신의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이 알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것을 뻔뻔하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커질 때, 즉 자유와 통제의 구별이 불가능해질 때 통제사회는 완성에 이른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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