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당신'이라 불리는 '누구나'의 이야기!

'우연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한 폴 오스터. 지금까지 읽은 폴 오스터의 소설들은 모두 '우연'에 대한 소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겨울일기』는 조금 색다른 소설입니다.

『겨울일기』는 1947년 생인 폴 오스터가 그동안의 삶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독특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나 '그'가 아닌 2인칭 '당신'입니다. 서술자 본인이 자기 자신을 '당신'이라 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폴 오스터는 태어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들을 서술하고 있는데, 단순히 시간에 따라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사건 혹은 주제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살았던 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47년 2월 3일, 뉴저지 뉴어크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2011년 1월의 어느날까지 그 긴 세월동안 자신이 몸을 부렸던, '집'이라고 불렀던 장소들은 21곳이나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머문 곳이 뉴욕과 브루클린인데, 그래서 『뉴욕 3부작』과 『브루클린 풍자극』이라는 소설이 나올 수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면서 그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가족이겠죠? 그는 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두 명의 아내와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어머니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죽음도 함께 되돌아 봅니다. 지금은 존재하고 있지만, 그 역시 할아버지나 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조만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도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p.7)

『겨울일기』가 '당신'이라는 2인칭으로 이야기를 쓴 이유는, 비록 작가 자신의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띄고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들도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라는 것이죠. 작가의 소설의 첫 문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평생 '우연'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폴 오스터. 이 소설, 이 순간만큼은 '우연'을 노래할 수가 없었겠죠. 태어나고, 늙고, 죽어가는 과정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운명일테니까요.

"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쉰일곱 살에 나는 늙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제 일흔네 살이 되니 그때보다 훨씬 젊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당신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진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당신과 뭔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공유하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그에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7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당신은 그의 말을 계속해서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희미하게 반짝이면서 그가 한 말의 진실을 거의 이해할 것만 같은 때가 간혹 있다. 사람은 일흔네 살 때보다 쉰일곱 살 때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는, 어쩌면 이런 간단한 뜻인지도 모른다.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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