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코맥 매카시만큼 불친절한 작가가 또 있을까? 
   코맥 매카시와의 첫번째 만남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서였다. 때마침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됐고, 그의 명성을 몰랐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너무 만만하게 보고 덤볐던 탓일까? 첫번째 만남은 나의 완벽한 KO패였다. 책을 다 읽고나면 영화도 챙겨봐야지 생각했는데, 결국 책도 반을 채 읽지 못하고 그냥 덮어버렸다. 이후 그의 다른 작품인 『로드』와  『모두 다 예쁜 말들』이 연이어 출간됐지만 차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설왕설래를 지켜보며 언젠가는 그와 끝장을 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데, 『핏빛 자오선』이 출간됐다.
   『핏빛 자오선』은 코맥 매카시가 1985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초기 고딕풍 소설에서 묵시록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서부 장르 소설로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수작이자 그에게 본격적으로 문학적 명성을 안겨 준 작품이라고 한다. 꼭 한번 그와 끝장을 봐야한다면 이 책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그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책장은 넘어가지 않고 제자리거나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무엇 때문일까? 

선혈이 낭자한 서부 장르 소설!
   1846년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서 텍사스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1848년 멕시코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미국은 서부 지역의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게 됐다. 
   이즈음 14세의 이름없는 한 소년이 길을 나선다. 미국의 서부지역을 지나며 약탈과 살육의 현장을 만나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소년은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살인으로 인해 소년은 부대에 들어가게 되지만 습격을 당해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죽임을 다하고, 겨우 목숨을 건진 소년은 미국 군대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감옥에서 풀려난 소년은 감옥에서 만난 토드빈과 함께 글랜턴이 이끄는 머리 가죽 사냥꾼 부대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머리 가죽 사냥꾼들은 미국인들을 위협하는 인디언들을 죽여 주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지만, 무법 천지에선 힘없는 멕시코인이든 같은 미국인이든 상관없다. 그저 돈만 받으면 될 뿐이다. 
   머리 가죽 사냥꾼 부대에 합류하게 된 홀든 판사는 그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피부가 거뭇거뭇한 인디언들과는 달리 새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이다. 그러나 부대원들은 그를 '검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홀든 판사는 그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인디언들보다 더 잔인하다. 부대원들이 감탄할 정도로 무엇이든지 잘해내는 홀든 판사, 악행을 저지를 때조차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하는 소년은 그나마 선해보일 정도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소년의 여행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30년 후 다시 만난 소년과 홀든 판사, 여전히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뿐. 결론만 살짝 얘기하자면, 해피엔딩이나 권선징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년의 발이 향하는 곳은 어김없이 선혈이 낭자하다. 어쩜 이리도 잔인한 풍경이 있을까? 그들 사이에서 소년이 미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냈다는 코맥 매카시, 그는 『핏빛 자오선』을 통해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토록 잔인한 세상, 게다가 "죽음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실"이라니! 정말 허무하다. 

코맥 매카시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즐겨보세요! 

밤하늘에 별이 어찌나 총총한지 검은 공간이 동이 나다시피 했다. 별은 밤새 쓰라린 호를 그리며 추락하지만 그 수는 도통 줄어들지 않는다. (p27) 

백열하는 태양과 창백한 복제품인 달은 최후의 심판일이 끝나고 불타 버린 세상 위로 뻥 뚫린 구멍의 양끝 같았다. (p120) 

훤한 대낮임에도 동쪽 산맥의 목구멍에 웅크리고 있던 솜 같은 달이 자정에 이르러 중천에서 굽어볼 때까지도 여전히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p122) 

   나는 단문으로 쓰여진 글들을 좋아한다. 쓸데없이 늘어지는 만연체는 질색이고, 과도한 묘사도 싫어한다. 분명 코맥 매카시의 소설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문들이 들어있다. 때론 부연 묘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고 건조하다. 반면에 너무나도 아름다워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큼 멋진 문장들도 있다. 그렇다면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표현을 절제하고 건조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문장을 좀 더 들여다보면, 배경은 풍부하게 묘사하고 인물은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인물들은 더욱 건조하고 삭막하게 다가온다. 코맥 매카시는 자신의 문장을 이용해 최대한 삭막하고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싶었으리라. 
   그에게 질질 끌려다녔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진작에 건조체와 만연체의 향연을 눈치챘더라면, 아름다운 문장을 즐기며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2008/12/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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