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컴퓨터 하드를 날리는 바람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 문서 등 모든 자료를 잃어버린 이후로는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한번 날아갔는데 두번 날아가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컴퓨터 뿐만이 아니다. 혹시 그동안 차곡차곡 써온 블로그의 리뷰들이 시스템 오류로 모두 날아가면 어떡하지?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귀찮지만 문서 파일로도 저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마 이런 경험은 다들 있으리라. 블로그에 임시저장 기능이 생기기 전, 기껏 머리를 짜내 써내려가고 있는 리뷰가 날아가버린 경험 말이다. 다시 쓰기는 하지만 이전에 썼던 리뷰를 그대로 복원하기는 힘들다.

이런 일에도 이렇게 불안함을 느끼는데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게다가 타자기나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 복사본 만들기가 여의치 않아 손으로 쓴 원본이 유일한 것이었을 때는 '원본사수작전' 같은 것도 필요했으리라.
자신의 글이 후세에 남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불 태워버린 카프카나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이 나치에게 발각돼 위험에 빠질까봐 없애버린 토마스 만처럼 자의로 없애버린 작가도 있지만 뜻하지 않게 잃어버린 작가도 있다. 헤밍웨이처럼 원고가 든 가방을 도둑 맞기도 하고, 출판하려고 맡긴 원고를 출판업자가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처럼 유일한 원본을 보관하던 곳이 불에 타기도 하고, 진시황처럼 사상적인 이유로 나라 안의 책들을 불태우기도 한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은 바로 이런 책들을 위한 곳이다. 다행히 이 도서관에서라도 만나볼 수 있는 책들도 있지만,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만큼 완전히 사라진 책들도 있을 것이다.

   
  실낱같은 존재의 개연성만 있어도 그 책은 얼마든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런 책들이 있다. 평소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가 어느날 문득 절판되었음을 발견했을 때,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누군가로부터 더이상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책에 대한 관심이 비로소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책을 구해서 읽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갖지 못한 것을 향한 열정이 아닐까? 읽혀지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지만 더이상 읽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샘솟는 열정, 그것이 바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을 채우고 있는 책들의 매력이리라. 

   
  어떤 작품이 검열관과 권력자의 주의를 끌 만큼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면, 그 작품에 담긴 불편한 사상을 없애기엔 이미 늦었을 만큼 그 작품의 사본이 넉넉하게 유통되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p.110)  
   


[덧붙이는 말] 이 말에 따르면 국방부의 불온서적 선정은 완전 뒷북치는 격이리라.

2008/08/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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