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그저 책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스쳐 넘길 수 없는 제목의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여기에는 책과 관련된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팔아도 팔아도 자꾸 돌아오는 책, 내 책장에 꽂혀있는 누구의 책인지도 모르는 책, 헤어진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있는 책, 누군가의 메시지를 담고 끊임없이 헌책방을 돌아다니는 전설의 책 등 누구나 한번쯤 이런 책은 가지고 있었을 것만 같은 책들의 이야기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과 당신의, 개인적인 교제에 대한 이야기를.

─ 작가 가쿠타 미쓰요

 

그래서 나는, 책과 나의 이야기를 살짝 해보려 한다. 가쿠다 미쓰요는 '언젠가'라고 했지만, 왠지 이 책을 덮으면서 나의 이야기도 꼭 들려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작가 가쿠타 미쓰요와 책의 이야기'는 '나와 책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유치원에서는 한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뛰노는 것만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각이 있는 유치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모친 또한 집에서 숫자 개념만 잡아 주었을 뿐 한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읽고 쓸 줄 아는데, 서울에서 이사온 이상한 말투의 나는 까막눈이었으니 아무래도 친구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미 한글을 배워온 친구들보다 더 빨리 읽고 쓸 수 있었다. 받아쓰기를 하면 그 친구들은 으레 한 두개 틀리게 마련인데 나는 절대 틀리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주변 목격자들의 분석으로는 너무 일찍부터 한글을 배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관심이 떨어지기보다는, 뒤늦게 배웠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목격자들의 분석이 맞는 것 같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나는 무엇이든 읽으려 했다. 다행히 우리집에는 책이 많았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언니, 오빠들이 많아서 그 책들을 모두 물려 받을 수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그 책들이 겨우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읽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청소년용이었다는 것뿐. 덕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당시 안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트렌디 드라마 한편 본 적이 없었고 심은하와 서태지, 문경은의 얼굴조차 몰랐다.

내가 읽는 책들의 2/3 정도가 소설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나에게 "소설 같은 것은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지식 습득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물론 그래서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기분은 나쁘다.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를 말했다면 나에게도 책을 읽는 이유를 물어봐야 하는데, 자신들이 책을 읽는 이유가 마치 정답이라는 듯 절대 물어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어떤 이들이 드라마를 보고, 가십거리로 수다를 떨고, 먹고 마시는 것과 같다. 그런 이유로 책을 읽으면서 어찌 철학서나 인문서를 읽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에게 같은 이유로 다큐멘터리를 보고 철학을 주제로 수다를 떨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한번도 '책'이라는 것을 학문과 연관시켜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내가 받았던 가장 굵직한 상들은 모두 책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선생님 혹은 주변인들은 국어 선생님이나 도서관 사서와 같은 것을 하면 어울리겠다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것을 업으로 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것을 학문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들이 드라마를 보고 수다를 떠는 즐거움이 내게는 없어진다. 물론 '책'은 좋아했지만 국어는 좋아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한번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책을, 아니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덕분에 이런 기회를 준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

 

2007/11/0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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