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호, 나는 그의 작품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제왕의 문』, 『잃어버린 왕국』 등 그가 쓴 작품들의 제목에서 풍겨오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일부러 피해왔다. 덕분에 처음으로 『꽃밭』의 표지 날개에 있는 그의 프로필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가 다작을 하고 있는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작가 생활을 해왔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는 불과 열여덟이라는 나이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해 문단에 데뷔했다. 40년이 넘도록 글쓰기에만 매진해 온 그, 그는 천재적인 소질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그를 나는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꽃밭』은 지난 10여년 동안 그가 써 온 짧은 단편들을 엮은 작품이다. 제목과는 달리 여전히 그의 문체가 강렬한 것이 아닐까 우려했던 나는, 단편들을 읽으면서 왜 그런 생각으로 그를 외면해 왔던가를 후회하게 되었다. 역시 그는 대작가였다. 이야기를 써내려 감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정말 술술 읽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편안했다. 마치 그가 내 곁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했다. 나는 그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만 기울이면 되었다. 이것은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 골치 아프게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귀만 기울이고 있으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대로 전해졌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바라볼 때처럼,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게다가 김점선 화가의 그림들이 더욱 그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암투병 중에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그림들도 따뜻하고 편안했다.

좋은 책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쓴 이들이 전하고자 함이 그대로 읽는 이에게 전해지는 책, 그것을 알고자 읽는 이를 절대 불편하거나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책.

 

꽃밭의 편암함과 따사로움에 흠뻑 취해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꽃밭이 떠올랐다. 이제 막 씨를 뿌린 나의 꽃밭, 따가운 햇빛과 맞짱을 뜨더라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지루한 장마비와 쌀쌀한 가을 바람에도 꺾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꽃밭으로 가꾸기 위해선 아직 손 볼 일이 많다. 나도 그만큼 나이가 들면 그런 꽃밭을 가질 수 있을까. 꽃밭의 아주 사소한 것까지 소중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오랜만에 지나간 유행가를 들으며 한구절을 되새겨 본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어찌 그리도 농염한지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 유생 최한경이 지은 연시 중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

 

2007/10/2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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