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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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어와 서술어가 제대로 갖추어진 단문을 좋아한다. 주어는 없이 수식어들만 장황하게 나열되어 있고, 언제 맺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문장을 싫어한다. 그런 문장들을 보면, 마치 머리에는 든 것도 없이 겉모습만 치장하다가 볼일 다 보는 사람 같다. 번역된 외국 문학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문학 속에서 번역체 문장들이 난무하는 것은 도저히 볼 수가 없다. 그럴 땐 정말 책을 집어 던지고 싶다. (사실 말뿐이지, 한번도 그것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여진 문장이라면 무조건 쉽게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라고 하면 평소에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무슨 지식의 척도인양 자랑스러워하며 쓰는 사람들, 그 글을 쓴 사람조차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를 정도로 긴 복문을 쓰는 사람들, 내가 보기엔 그들은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글로 위장하려는 것 같다.

읽기 쉬운 단문으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김훈을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그의 문장이 너무 건조해서 읽히지가 않는다고 한다. 문장 속에서는 절대 그 누구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그. 극도로 절제된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읽으면서 복받쳐 오름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 지인이 내게 책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그즈음허삼관 매혈기』의 개정판이 나왔고, 나는 서슴없이 이 책과 김훈의 『강산무진』을 선택했다. 물론 『강산무진』은 단편들을 수없이 곱씹어 가며 읽었지만, 『허삼관 매혈기』는 반대였다. 내가 좋아하는, 읽기 쉬운 단문들로 쓰여져 있었지만 맺음이 없었다. 장면 하나 하나가 제대로 서술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무언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선물로 받은 책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읽었다. 어느 정도 읽고 나니 그의 문장이 적응이 되었고, 그 어느 문장보다 쉽게 쓰여졌다는 것을 느꼈다. 절대 문장이나 내용의 가벼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위화식의 해학'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허삼관 매혈(賣血)기』,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초코파이나 문화상품권에 자신의 피를 팔아본 사람이라면 '피를 파는 어려움'을 알 것이다. 정작 나는 팔고 싶어도 무엇이 미달이었는지 한번도 팔 수가 없었기에 그 어려움을 안다. 보통 '전혈'이라고 하는 320 혹은 400cc의 피를 뽑고 나면 2개월이 지나야 다시 할 수 있다. 허삼관도 다르지 않았다. 한번에 400리터씩, 3개월이 지나야 다시 팔 수 있다. 처음에 그는 피를 파는 것이 '건강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를 팔아서 번 35원이 한달동안 노동을 한 대가보다 커서, 그 이후로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팔았다. 35원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한 그는 땀이 아닌 피를 팔아서 번 돈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그는 큰 돈이 필요할 때마다 피를 팔았다. 지금껏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하며 키웠던 큰 아들이 사고를 쳐 병원비를 물어내야 할 때, 결혼 전에 마음에 품고 있던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대가를 치뤄야 할 때, 가족이 가뭄으로 끼니를 거르고 있을 때 등. 그때까지는 3달에 한번이라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생각만큼 그리 규칙적이지 않다. 어느날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할 때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또 그런 때가 한꺼번에 겹치기도 한다. 허삼관은 아픈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때문에 한달만에 다시 피를 팔고, 또 며칠 만에 거듭해서 피를 팔았다. 예전에는 피를 판 후 몸보신용으로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을 꼭 챙겨 먹었지만, 지금은 한두푼도 아쉬워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는 아들 녀석이 살 수만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허삼관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삶이 고단해서였을까. 툭툭 내뱉는 말에서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허삼관은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아내도 욕했고,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첫째 아들도 미워했다. 그러나 부인을 위해, 아들을 위해 피를 팔러 뛰어 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어느 누구보다 깊은 정이 느껴진다.

투박함 속에 해학이 있었다. 거친 말 속에는 정이 있었고 따뜻함이 있었다. 마치 대문을 열고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처럼 친근함이 느껴졌고, 그리움이 생겼다. 지금도 어디선가 피를 팔고 반점에서 외치는 허삼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여기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구.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2007/10/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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