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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연극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0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이 지음, 홍재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한 번 나는 시도해 보았다!
만약 이것이 실패한다면, 그때가 다시 시도할 때일 것이다! _ 31쪽
『꿈의 연극』은 '스웨덴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대표작 가운데 두 작품을 묶은 책이다.
「미스 줄리」는 '자연주의'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으로, 당시 보수적이었던 스웨덴 사회가 이 작품의 상연을 허용하지 않아 초연은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연극의 무대는 하지절 전야, 백작의 부엌이다. 백작의 딸 '미스 줄리'가 하인 '장'과 요리사 '크리스틴' 사이에 끼어든다. 하지절 파티 때 장은 크리스틴의 춤 파트너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는데, 미스 줄리가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제안한다. 장은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을 걱정하지만 미스 줄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에게 플러팅을 보낸다. 장은 미스 줄리의 플러팅을 사양하는 척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미스 줄리를 처음 봤을 때 사랑에 빠졌으며 죽을 결심까지 했다고 말이다.
사람들이 백작의 부엌으로 몰려오자 미스 줄리는 장의 방으로 몸을 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이 벌어진다. 다음날 새벽, 미스 줄리를 취한 장의 태도가 돌변한다. 미스 줄리 역시 돌변한 장의 태도에 당황한다. 자신이 모시던 미스 줄리와 장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크리스틴은 더 이상 존경할 수 없는 주인을 모실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하지절은 스웨덴의 전통 명절로, 젊은 미혼 여성이 하지절 전야에 아홉 종류의 꽃을 꺾어서 베개 밑에 넣고 자면 꿈속에서 자신의 미래 배필감을 보게 된다는 전설과 함께 에로틱한 의식이 행해지는 날이라고 한다.
이렇게 에로틱한 의식이 행해지는 날, 신분이 다른 두 남녀(심지어 그들은 꿈도 상반된 꿈을 꾼다)가 서로를 희롱하고 농락했으니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스 줄리 : 가끔 꾸는 꿈이 있는데 지금 그 꿈이 생각나ㅡ기둥 위에 올라가 앉았는데, 내려갈 방법이 없는 거야. 아래를 보면 아찔해. 내려가야 되는데, 뛰어내릴 용기는 없어. 더 이상 내가 있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너무 뛰어내리고 싶어. 근데 그게 안 돼. 내려가기 전까진 안식도 없고, 쉴 수도 없어. 내려갈 수만 있다면 날 땅에 묻어 버리고 싶은데 …… 이런 거 혹시 알아?
장 : 아뇨! 전 어두운 숲속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누워 있는 꿈을 종종 꿔요. 거길 기어오르고 싶어요. 오르고 올라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햇빛이 찬란한 경관을 둘러보고, 새 둥지에 있는 황금 알을 훔쳐 보고 싶어요. 전 올라가고, 또 올라가는데 나무는 너무 굵고 미끄럽고, 첫 번째 가지까진 아직도 멀었어요. 첫 번째 가지에만 닿을 수 있다면 꼭대기까지는 사다리 오르는 것처럼 수월하리라는 걸 압니다. 아직 거기 닿진 못했지만, 전 언젠가 그곳에 오를 겁니다. 비록 꿈속에서라도요.
_「미스 줄리」, 48쪽
표제작 「꿈의 연극」은 스트린드베리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자, 연출가라면 누구나 꿈꾸어 보는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어려우면서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인드라(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삼주신인 브라흐마, 비슈뉴, 시바를 제외하면 신화 내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신으로 인도 신화에서 신들의 왕으로 불린다.)의 딸이 '사람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가장 어둡고 무거운 땅인 지구로 내려와 경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드라는 딸에게 사람들의 불평을 듣고, 그들이 비통해하는 이유와 원인도 알아보라고 한다. 인드라의 딸은 '자라나는 성'에서 장교를 구해주고, 변호사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이혼한다. '사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시인'을 만나서 '꿈'과 '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에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각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불에 태워 버린 후 퇴장한다. 인드라의 딸은 신발을 벗어 불속에 넣는다. 이제 사람들의 고통을 모두 들여다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여행을 끝낼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작가는 「꿈의 연극」을 "일관성이 없지만 논리적으로 보이는 꿈의 형태"를 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이 완성된 것은 1901년인데, 1900년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나왔다. 제목에서부터 그들이 말하는 꿈의 특성까지 유사성이 보인다.
프로이트는 "꿈은 일관성이 없고, 가장 큰 모순을 쉽게 조정하며, 불가능한 것을 허용하고, 당대의 영향력 있는 지식을 제쳐두고, 우리가 윤리적, 도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라고 설명한다.
_「해설」, 241쪽
시인 : 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딸 : 저도요!
시인 : 꿈을 꾼 걸까요?
딸 : 아니면 시를 쓴 건지도요, 어쩌면!
시인 : 시를 쓴 건지도요!
딸 : 그러면 당신은 시가 무엇인지 알겠군요!
시인 : 나는 꿈이 무엇인지 알아요!
딸 : 전에 우리가 다른 곳에 서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시인 : 그러면 현실이 무엇인지 곧 알아낼 수 있어요!
딸 : 아니면 꿈!
시인 : 아니면 시!
_「꿈의 연극」, 쪽
'스트린드베리'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 수도 있는데, 우리에게 낯선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는 것이 <을유세계문학전집>의 매력이다. 고전의 멋스러움을 더하는 브라운 톤의 표지 디자인은 덤이다. 앞으로도 <을유세계문학전집>을 통해 다른 세계문학전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들을 볼 수 있기를 응원한다.
✎ 밑줄긋기
인생이 그렇지!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행하면 항상 추한 것이 옆에 있고…… 무언가 선함을 행하면, 다른 사람에겐 유해하지. _「꿈의 연극」, 115쪽
인간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_「꿈의 연극」, 176쪽
모든 인생은 재연일 뿐이에요……. _「꿈의 연극」, 177쪽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_「꿈의 연극」, 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