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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ㅣ 암실문고
마리아 투마킨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우리에게!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가끔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이다. 과연 이해할 수 있다, 공감한다, 이런 말을 감히 건네도 되는 건지. 혹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줘도 되는 건지.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은 내가 의문을 품고 있던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 마리아 투마킨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고통이 가지고 있는 성질 때문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한다.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고통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고통에 대해 가지런히 정리해서 전달한다면 냉정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문장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읽다 보면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집중이 되지 않고,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해서 산만하고 당황스러운데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고통스러운 경험을 듣게 된다면 바로 그런 식으로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문장 자체가 고통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저자 마리아 투마킨은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소련 하르키우에서 태어나 10대 때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인간 내면의 수수께끼 같은 측면을 함께 탐구하며 그 과정을 독특한 산문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암실문고>는 '서로 다른 색깔의 어둠을 하나씩 담아 서가에 꽂아 두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암실문고> 시리즈는 처음인데 저자의 문장만큼 디자인이 독특하다. 처음에는 컨셉인 줄도 모르고 인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깜짝 놀랐다. 이것 역시 의미가 있는 컨셉일까? 이를테면 희미했던 일들이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선명해진다는 그런 의미일까.
인간들은 자신의 고통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그 고통이 참을 수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모든 선택지가 사라져 버리는 순간은 언제 찾아올까? 철조망 속에 갇힌 상황에서는 어디로 움직여야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_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