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김진송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어릴적 우리집 옆집에는 목수 아저씨가 한분 계셨다. 덥수룩한 머리에 수염, 너털 웃음을 지으시는 소박한 모습의 아저씨. 사실 어릴적에는 그 아저씨를 아버지로 둔 옆집 언니가 매우 부러웠었다. 항상 멋진 물건들을 손수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언니가 나이가 들어 더이상 어릴적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책상을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운좋게도 그 책상을 물려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찌나 정교하고 정성스럽게 만들었던지, 네모난 책상에서 뽀족한 모서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랍 손잡이도 둥글게 깍아서 예쁘게 모양을 내놓았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책장도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진 책상이었다. 그런 물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아버지를 둔 언니가 정말 부러웠었는데, 정작 그 언니 자신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목수'라는 직업은 전문직이라기보다는 서민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목수는 목수일 뿐이다.

 

처음 이 책의 표지에 스케치 되어있는 도안들(디자인들)을보면서 나는 DIY 관련 서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한장 두장 책을 넘기면서 그건 나의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DIY와는 거리가 먼 책이다.

목수 김씨는 국문학과 미술학을 공부하고, 목수일을 시작한지 겨우 10년 밖에 되지 않는 초보 목수이다. 사실 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일을 했으면 숙련직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초보는 아닐텐데, 목수 김씨는 자신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는 시대에 따라 연금술사가 되기도 하고, 기술자가 되기도 하며 과학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과거든 현재든 그냥 나무를 다루는 목수일 뿐이다. 예술가도 디자이너도 아니다.

 

목수는 물질의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다만 물질의 변형이 주는 이로움을 생각할 뿐이다.

목수는 목수일 뿐이다. (p. 343)

 

목수는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목수가 예술가도 디자이너도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목수는 예술적인 감각을 살려서 디자인을 하며 물건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목수 김씨가 말하는 목수는 단지 이 산 저 산 굴러다니는 나무들을 구해서, 그 나무들을 보고 쓰임새를 생각하며, 나무의 형태나 결을 따라서 디자인하고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예술성을 고려해서 디자인을 만들고, 그 디자인에 어울리는 나무를 구해 물건을 만드는 것은 목수가 하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목수는 어느 누구보다도 나무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나무의 성격과 심성을 잘 파악해서, 거기에 어울리는 물건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목수는 나무에 칼을 대고 잘라내지만, 어찌보면 나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단지 재료와 용도를 연결해주는 데 필요한 절차이기는 한데, 이미 재료가 결정되고 용도가 분명해지면 그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단순한 통로를 찾아내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쓰임을 찾다보면 디자인은 뒤따라지고, 거기서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아닌가?...아름답게 보여야 한다거나 세련되게 보여야 한다는 의도를 디자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게 우선되어서는 주객이 전도된다는 말이지. 물론 그게 예술가와 목수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p. 279~280)

 

소박해도 목수가 좋다.

 

영화 속에서 나무를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화려하고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목수 김씨는 아직도 초보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박한 목수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아졌다.

나무는 쇠붙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다른 재료들에 비해 매우 소박한 재료이다. 그러니까 그 나무를 다루는 사람은 소박할 수 박에 없다. 자신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솔직하고 겸손한 사람, 목수 김씨. 소박해도 나는 그런 목수 김씨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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