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로빈슨 크루소 네버랜드 클래식 32
다니엘 디포우 지음, 김영선 옮김, N.C. 와이어스 외 그림 / 시공주니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어 쓴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읽으려고 책을 펴는 순간 『로빈슨 크루소』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분명 어릴 적에 읽었던 책인데, 큰 줄거리만 떠오르고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자세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나는 읽었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내가 읽었던 책은 이야기가 요약된 동화책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로빈슨 크루소'를 소재로 한 얼마나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는데, 『로빈슨 크루소』를 완역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하니 당연히 어릴적 내가 읽었던 책은 완역본이 아닐 수 밖에. 그러니까 분명히 읽었음에도 읽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책은 절대로 동화책으로 요약될 수 없는 소설이다. 일단 분량이 그러하고, 내용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모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니까 동화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전에 나왔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와는 차원이 다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완역본을 읽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이 아닐까.

 

로빈슨 크루소, 그는 부족함이 없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배를 탄다. 그는 운이 좋게도 여러번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큰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그 기회를 스스로 뿌리치고 또다시 배를 타게 된다. 그러나 배는 침몰하였고, 그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버려지게 된다. 무려 28년이라는 세월동안 말이다.

처음 그는 스스로 '탕아'임을 자처하며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한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혼자서 무인도에서 살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곧 구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는 커녕 어떻게 하면 이 무인도에서 잘 살 수 있을까를 철저히 계산했다. 그래서 농사도 짓고, 염소도 길렀다. 다음 수확기까지의 식량을 계산하고 거처도 3곳이나 마련했다.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섬에 자신처럼 난파당한 배의 선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들이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량이 확보될 때까지 데리러 가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곳에서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철저하게 로빈슨 크루소가 혼자인 공간, 철저하게 문명과는 거리가 먼 공간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마치 문명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담을 쌓고 울타리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또 문명사회에서 사용하던 도구들을 그대로 재현해서 만들어 내기도 했다. 자신이 생명을 구해준 원시인 프라이데이에게 친구가 아닌 '주인님'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가르쳐 주었고, 급기야 그는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자신을 무인도를 다스리는 총독이라고 소개를 했다. 28년 동안 무인도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는 전혀 문명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루소가 좀 덜 철저하고, 좀 더 인간미가 넘치는 크루소였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바램이다.

아마도 다니엘 디포가 이 책을 썼을 18세기 당시에서는 크루소처럼 철저하게 문명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인물이 필요했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니엘 디포가 각색해서 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의 인물이 난파를 당해 머물렀던 칠레의 페르난데즈 제도를 '로빈슨 크루소' 섬이라고 이름 붙여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들끊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죄짓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뉘우치는 것은 부끄러워한다.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마땅한 행동은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현명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반성은 부끄러워한다. (p. 29)

 

사람들은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은 미워한다. 오늘 찾아 헤매는 것을 내일은 버린다. 오늘 바라는 것을 내일은 두려워한다. 아니, 그 생각만으로도 부들부들 떤다. (p. 241)

 

인간을 지배하는 신은 인간이 사물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한계를 아주 좁게 정했는데, 이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런 위험을 모두 보게 된다면 마음이 어지럽고 가슴이 내려앉을 것이 아닌가. 오히려 그런 일들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둘러싼 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모름으로써 인간은 평온하고 차분할 수 있는 것이다. (p.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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