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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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인간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가?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났는가? 반대로 악하게 태어났는가? 우리 본성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굳이 나누자면) 크게 두 줄기로 나눌 수 있다. 홉스는 인간을 자연 상태로 두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므로, '리바이어던'을 통해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반면 루소는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났는데, 문명의 발전과 사회제도 때문에 악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시작한 인간 본성에 대한 '나의 탐구'는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거쳐 『휴먼카인드』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책들은 (극단적을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휴먼카인드』만이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저자 브레흐만 역시 "이 책은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제목 그대로 『휴먼카인드』는 우리 인간이 친절하다고 말하는 책이다. 브레흐만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났지만 어떤 사회적인 요인들로 인해 인간 본성의 부정적인 면, 즉 폭력성이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브레흐만은 그동안 우리가 접했던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와 문학 작품들, 여러 사건들을 분석하며 말 그대로 '펙트'를 바로 잡아준다.

『파리대왕』 : 과연 인간 본성은 어두운가? 진실은 소설과 정반대였다!

만약 어린 소년들이 어른 한 명도 없는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 『파리대왕』은 윌리엄 골딩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주려 했고,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진실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브레흐만은 의문을 품었다.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할 때 이런 행동을 하게 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라며 이 소설을 반박하기 이해 실제 사례를 찾는다. 소설 속 소년들처럼 아타섬이라는 무인도에서 발견된 소년들은 규칙을 만들고 서로 협력하며 지냈다. 소년들은 1년 이상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보살폈고, 다투는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화해시켰다. 심지어 다른 소년이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자 절벽 아래로 내려가 소년을 구하고 부목을 대 뼈가 잘 붙도록 해주었다.

언론이 만든 방관자 효과

'방관자 효과'로 널리 알려진(나 역시 저널리즘 전공시간에 배웠었다.) 캐서린 제노비스의 이야기도 반박하고 있다. 뉴욕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제노비스는 칼에 찔려 죽었다. 그녀의 비명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목격자들이 38명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범인을 쫓겨나 신고하지 않고 제노비스가 그대로 죽게 내버려뒀던 사건, 사람들은 38명의 방관자들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도한 것과는 달리, 신고한 사람이 여럿 있었고 경찰로부터 이미 신고 전화를 받았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오지 않았다. 신고를 했는데도 경찰이 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살인사건이 아닌 취객의 주정이나 부부싸움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언론에서 부각되었던 측면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폭격을 받으면 사람들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일상생활을 이어갔던 사람들(하지만 폭격을 가했던 사람들은 진실을 보려하지 않고 의미없는 공습을 계속 가했다.), 배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돕고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 브레흐만은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선함이 있다,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친절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휴먼카인드』는 같은 연구자료를 두고도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자신이 원하는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조작하거나 유도했기 때문이라며 그 실체를 과감하게 보여준다.

진상을 모르는 냉소주의자가 아닌 새로운 현실주의자가 되라!

브레흐만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진상을 모르는 냉소주의자가 아닌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새로운 현실주의자'가 되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행성에 살고 있으니, 스스로의 본성에 충실하고 타인에게 우리의 신뢰를 보여주어라고 말이다. 우리는 가장 우호적인 존재로 태어난, 유아적인(귀여움) 외모로 진화한 호모 퍼피니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브레흐만이 "사람들은 선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자가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냥 '선하다'라고 옮겼을 뿐, 사실 저자가 의미하는 것은 "내심으로는 상당히 도덕적으로 온전하고 친절하며 선의를 지니고 있다"에 가깝다.

매일매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뉴스를 접하고 있지만, 나는 믿고 싶다. 그리고 기대고 싶다. 우리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으로 온전하고 친절한 선의"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사상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앞서 읽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책들은 과학자가 쓴 책이어서, 그런 책들과 비교하면 조금 가볍지 않을까 하는 깊이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휴먼카인드』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장점을 잘 살려 쓴 책으로,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사례들에 대한 펙트 체크 중심의 글쓰기가 흥미롭다.

브레흐만은 우정과 친절, 협력과 연민이 얼마든지 전염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우리가 본성으로 가진 선함을 믿고, 예외적인 사건을 과장하는 뉴스에 휘둘리지 않으며,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더 나은 휴먼카인드가 된다고 주장한다. 13쪽

그는 낙관적인 세계를 이끌 희망의 단초가 우리 본성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판단은 여전히 독자들이 몫이기에, 이 책을 포함해 폭넓은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인간관을 만들어보길 권한다. 14쪽

우리는 뉴스가 스포트라이트처럼 작동하는 것을 보았다. 공감이 특정 항목을 확대해 우리를 오도하는 것처럼 뉴스도 예외 항목을 확대해 우리를 속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더 나은 세상은 더 많은 공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공감은 우리로 하여금 덜 용서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가 피해자와 더 많이 동일시할수록 적에 대해 더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소수에게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적의 관점은 보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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