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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과 그림자 도둑 1
리들리 피어슨.데이브 배리 지음, 공보경 옮김, 그렉 콜 그림 / 노블마인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어릴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동화 속 주인공은 어린왕자였다. 유성을 타고 지구별까지 오게 된 어린왕자, 세상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자신의 장미에게만 충실한 어린왕자, 그런 어린왕자를 사랑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동화 속 주인공에게 매혹되었다. 절대 나이를 먹지 않고, 절대 늙지 않는 피터팬. 어쩌면 피터팬은 모든 어른들의 꿈일지도 모른다. 피터팬이 된다면 귀찮게 매일밤 주름개선 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되고, 그 비싼 보톡스를 맞지 않아도 될테니까. 사실은 그런 신체적인 꿈보다는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항상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부러운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꾸는 꿈은 아무래도 순수하지 못하고, 이해타산적인 면이 많지 않은가.
올해가 피터팬 탄생 100주년인 덕분에, 나를 매혹시키는 요녀석을 올해는 참 자주 만나게 된다.
처음 연애를 할 때는 상대방을 만나러 가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상대방에 대한 신비감이나 호기심 같은 것도 어느 정도 가지고 만나게 되지만 몇 년씩 만나다 보면 그런 설레임이나 호기심은 사라지게 된다. 나와 피터팬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피터팬을 만났을 때는 마치 내가 웬디라도 된 것처럼 설레였다. 요녀석은 어떻게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나이도 먹지 않는지 정말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전편 『피터팬과 마법의 별』을 통해 피터팬도 여느 아이와 다름없는 평범한 아이였었고, 그가 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신비로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법의 별가루'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실망스러웠던지, 그의 젊음의 비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다.
『피터팬과 그림자 도둑』에서는 마법의 별가루를 얻기 위해 별지킴이들의 반대편들이 또다시 쳐들어 온다. 그리고 얼굴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오직 어둠 밖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어둠이 내려 앉았을 때만 활동을 할 수 있으며, 그의 그림자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닿게 되면 사람들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그가 원하는대로 조정 당하게 된다. 피터팬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별지킴이들은 이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는 반대편들을 피해 별가루 반환을 시도한다. 별가루 반환을 둘러싸고 쫓기고 쫓는 가운데 별가루 반환이 이루어지는 곳은 그 유명한 테스가 누워 있다가 잡힌 '스톤헨지'이다. 누가 왜,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항상 의문을 갖게 만든 스톤헨지는 바로 별가루 반환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당연히 이야기는 무사히 별가루 반환을 하고 피터팬은 네버랜드로 돌아온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무협지라는 것을 읽어본 적이 없다. 주위에 있는 남자친구들을 보면 놀라운 속도로 무협지를 읽어버리곤 했었다. 무협지라는 것이 항상 비슷한 플롯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캐릭터의 특성만 파악하면 10권짜리도 금새 읽어버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피터팬과 그림자 도둑』을 읽으면서 그 친구들이 어떻게 무협지를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피터팬과 그림자 도둑』에는 그림자 도둑 외에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림자 도둑에 의해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피터팬과 마법의 별』에서 등장했던 마법의 별가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읽는 이들로 하여금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참신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앞부부만 읽으면 이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저렇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대략의 스토리가 머리속에 쫙 펼져진다. 덕분에 무협지 고수들만 만끽할 수 있다는 속독 방법을 그대로 따라할 수가 있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 피터팬 시리즈 덕분에 죽은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서는 대화를 시도하는 갑판장 스미, 비록 그는 해적이지만 해적들 중에서는 가장 풍부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서는 스미가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멍청하고 우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피터팬』에서 내가 피터팬 다음으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캐릭터가 바로 스미였는데, 원작에서의 스미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너무 크다.
또 피터팬의 영원한 맞수인 후크가 겨우 피터팬이 던진 망고를 맞는 엔딩 장면으로 끝난다는 것, 그림자 도둑 덕분에 후크의 비중이 극히 적어졌다는 점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보통 전편보다 나은 후속편은 없다. 그래서 전편보다 못한 후속편을 만나더라도 "역시"라는 말 한마디만 할뿐, 그다지 개의치 않는 편이다. 하지만 전편에서 쌓아놓은 명성이나 감동을 깎아먹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 내가 피터팬 시리즈를 접하면 접할수록 피터팬에 대한 설레임이나 환상이 사라졌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