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윌리엄 케네디 지음, 장영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기차역에도 종종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대합실이나 화장실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노숙자들은 동정이나 가여움의 대상이 아닌 두려움과 혐오스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내 곁에 조금이라도 다가오면 나는 부리나케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 한권의 책으로 인해 그들을 조금은 더 따사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그들 한명 한명에게는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의 주인공 프랜시스 또한 부랑자이다. 젊은 시절 그는 야구 선수였으며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그가 던진 돌에 누군가가 맞아 죽었으며, 안고 있던 아들을 실수로 손에서 놓쳐 태어난지 13일 만에 죽게 만들었다.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그는 집을 뛰쳐 나왔으며, 그 후 부랑자, 살인자, 알콜 중독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 거리 저 거리를 전전하게 된 것이다.

부랑자, 살인자, 알콜 중독자. 그는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이름표를 달고 바닥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적어도 가슴만큼은 바닥을 헤매지는 않았다. 프랜시스 자신도 양말 한 켤레가 없어 다 떨어질 때까지 신고, 먹을거리를 얻으러 다니며, 무덤가에서 일하며 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면서도 다른 부랑자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자신보다 더 많은 가진 사람들조차 손가락질 하며 버리는 그런 사람들을 말이다.


미국, 특히 그 나라의 도시들은 전세계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모여드는 화려한 곳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은커녕 소박한 꿈조차 꿀 수 없으며, 오히려 더 나락으로 빠져든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감투 때문이 아니라 장영희 선생님 덕분에 읽게 된 이 책은 오래전 장영희 선생님의 『내 생애 단한번』이라는 책이 내게 주었던 그런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무턱대고, 내놓고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가슴이 저려왔다. 답답함이랄까. 겉으로는 그럭저럭 번지르하지만 우리 모두가 마음의 부랑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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