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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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들어오는 아기자기한 시리즈 『소설 보다』
   소설 보다』는 참 아기자기한 시리즈입니다.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로, 1년에 네 권씩 출간된다고 합니다.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빠르게 선사하며, 한국 문학의 현재와 호흡할 것이며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히 첫 책은 봄과 여름, 두 계절의 선정작들을 담고 있습니다.

김봉곤 「시절과 기분」 :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일부의 독자들을 위한
   서점에서 '나'의 책을 발견했다며 거의 5년만에 날아온 혜인의 문자. '나'는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부산으로 내려가 직접 사인해서 줄테니 사지 말라고 말합니다.

   계산해보니 혜인과는 2011년, 그녀가 졸업할 때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럼에도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이토록 허무하고, 쉽고, 단박에 잡혔다 안부도 없이 기별도 없이 용건만 말하고 끊었지만 그게 부족했다거나 미안하지 않았다는 것마저 익숙했다. 「시절과 기분」, 14쪽

   이렇게 불쑥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아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자주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런 친구들도 참 좋은 친구들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혜인은 '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친구입니다. 책 속에는 '나'의 사연과 취향이 담겨 있는데, 적어도 혜인에게는 직접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아서 책을 사겠다는 그녀를 저지하고 다급하게 약속을 잡은 것입니다.

   책을 뿌리겠다는 말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제보'라는 단어에 지레 움칠해 나는 전화를 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이제 알 사람은 다 알았다. 등단 소감에도, 소설에도, 잡문에도 제발 좀 알아달라고 봐달라고 온갖 떼를 다 써놨는데 모를 수가. 그건 때론 대수였고 대체로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혜인에게만큼은 꼭 내입으로 직접 말하고 싶었다. 「시절과 기분」, 13쪽

   부산까지 내려간 '나'는 혜인과 함께했던 '그 시절과 기분'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그곳들을 돌아다닌다. 직접 사인한 책도 그녀에게 전달하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하지 못한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릴테니 그때 이야기하자고 말합니다.
   '나'가 떠올리는 그 시절 속에는 뚜렷한 사물(소재)들이 등장합니다. 훌리건천국, 스페셜포스, 나프나프, 에고이스트, 숨마쿰라우데, 개념원리... 언뜻 떠오르는 것도 있지만 짐작 조차 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절을 이야기하는건지, 그때의 기분은 어떤 기분인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작가 김봉곤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 좋다고 말합니다.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오히려 그 특수함을 발견하고 알아주는 독자를 만나고 싶어요." 「인터뷰 : 김봉곤 X 황예인」 53~54쪽

  "전적으로 나에 기대어, 나를 재료 삼아 쓰는 글쓰기, 나를 모르는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배타성, 그 배타적임으로 생기는 내밀함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름, 스피드』 중

조남주 「가출」 : 가부장의 부재, 아버지가 사라진 가정
  
아버지가 가출했다.(61쪽) 「가출」의 첫문장입니다. 일흔 둘의 아버지가 이제라도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며 가출을 한 것입니다. 이미 아버지가 가출한지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뒤늦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아버지 집에 모여서 밥을 먹고 의견을 나눕니다.
   아버지에게는 막내딸인 '나'가 주어준 신용카드가 한 장 있는데, 아주 가끔씩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나'의 폰으로 날아옵니다. '나'는 그게 아버지가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경치가 좋구나. 너무 걱정 마라. 엄마에게 말하지 마라."(85쪽) 이렇게 말이죠.

김혜진 「다른 기억」 
   학교 신문사에서 활동했던 '나'와 '너'. 신문사 주간 교수였던 임 교수가 각종 비리와 횡령에 연루돼 학교와 신문사를 떠나게 되자 그들의 사이에는 틈이 생깁니다. '나'는 임 교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혹은 사실들을 받아들였지만 '너'는 다른 사정이 있을거라며, 그렇게 좋은 교수님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며 신문사를 떠납니다.

   낡지도 닳지도 않는 책.
   뭐 하러 그런 것을 다 기억하고 있나. 그러다가도 한 번씩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좋은 것을 좋은 대로 두는 일.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두는 일. 망치거나 훼손하지 않고 간직하는 일. 시간을 거슬러 가서 그 모든 일을 없던 것처럼 무너뜨리지 않는 일.
   나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었다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세간의 말들을 무시하고 좋았던 순간들만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네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다른 기억」, 119~120쪽

   내 것이었고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어떤 추억에 대해. 관계를 망가뜨린 것에 대해. 내가 깨부수지 않아도 좋았을 어떤 신뢰와 믿음에 대해.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순간도 불쾌한 기억으로 남을지 몰랐다. 그래서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 내 안의 무언가가 이날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릴지도 몰랐다. 「다른 기억」, 121쪽


   '너'는 교수님과의 좋았던 기억, 교수님의 좋은 부분만 떠올리며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나'는 '너'를 '너'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다른 사람 때문에 그 관계가 벌어진 것이 서운할 뿐입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빴던 부분도 퇴색되어 예전처럼 나쁘게만 여기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한데, 바로 눈 앞에 드러난 것을 외면하고 좋았던 기억만 간직할 수 있을까요? '너'는 선생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그런 식으로 회피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정지돈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1968년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해 서울에 올라왔고 그 전까지 영천에서 살았으며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133쪽) 나온 태순과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연세대 대학원에 입학한 양코씨"(133쪽). 그 시절에 그들은 비슷한 처지여서 친하게 지냈지만 양코씨는 1970년 9월 연세대 대학원을 중퇴했고, 태순은 한국 남성과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립니다. 이 소설은 오랜만에 한국에 들른 태순의 회상을 담고 있는데, 회상을 끝내며 태순은 이렇게 말합니다.

   반복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미래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다 쓴 것 같으데 지금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가 반복된다면 그것을 미래라고 할 수 있나요,라고 말했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154쪽   
   '일상'에 관심이 없다는 정지돈 작가. 이 소설의 기획 자체가 2018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전을 위해 제작된 것이었듯이, 문장은 상당히 아방가르드하고 그것을 채우고 있는 소재들은 상당히 낯섭니다. 그는 소설 속에 현실을 그려놓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데, 소설은 물론이고 인터뷰까지 그만의 세계가 있어 보입니다.

계절이 바뀌면, 그때 다시!
   봄엔 김봉곤과 조남주의 소설이, 여름엔 김헤진과 정지돈의 소설(하필이면 두 작가 모두 뜨거운 여름의 상징, 대구 출신입니다.)이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되어 실려있습니다. 『소설 보다』에는 각각의 작품들에서 봄과 여름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을에는 또 어떤 작가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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