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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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
   파우스트는 괴테가 24세에 쓰기 시작해 죽기 직전인 82세에 완성한 인생작입니다. 이런 거대한 작품을 단 며칠만에 읽고 몇 자로 정리한다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다음을 위해 지금의 생각들을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분명 몇 년 후 다시 읽게 되면 다른 생각들이 떠오를테니까요.)

   『파우스트』는 12,111행에 달하는 희곡으로 작품 전체의 서곡에 해당하는 「헌사」와 단장, 전속 시인, 어릿광대가 등장하는 「무대에서의 서연」, 그리고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내기가 소개되는 「천상의 서곡」으로 시작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 : 내기를 할까요? 당신은 결국 그 자를 잃고 말 겁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녀석을 슬쩍 나의 길로 끌어내리리이다.

   주님 :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 그의 영혼을 그 근원으로부터 끌어내어,
   만일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면,
   어디 너의 길로 유혹하여 이끌어보려무나.
   하지만 언젠가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타나 이렇게 고백하게 되리라.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 라고.
   ─ 「천상의 서곡」, 23~24쪽

   주님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 '파우스트'를 두고 내기를 합니다. 독특한 방식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 파우스트를 메피스토펠레스가 온갖 방법으로 유혹해 쾌락 혹은 타락의 길로 빠트리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 '파우스트'의 본성을 믿었기 때문에 파우스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어떤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주님의 이런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마찬가지로 주님도 한 인간의 삶에 개입하게 된 것이니까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허락하면서 말이죠.

   다음으로 이어지는 「비극 제1부」에서는 회의에 빠진 파우스트가 등장합니다. 그는 학문을 통해서는 우주의 본질을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합니다.

   파우스트 :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신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움직일 수 있지만,
   내 모든 힘 위에 군림하는 신은
   바깥을 향해선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하며 내겐 존재한다는 것이 짐이 되고,
   죽음이 바람직할 뿐, 인생이 역겹구나.
   「비극 제1부」 90쪽

   그때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파우스트에게 제안을 합니다. 이 세상에선 자신이 파우스트의 종이 되어 파우스트가 온갖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줄테니 저 세상에서는 반대로 파우스트가 자신의 종이 되어 똑같은 일을 해달라는 겁니다. 이미 이 세상에서 회의에 빠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 : 이 세상에선 내가 하인 노릇을 하며
   당신의 지시에 따라 쉬지 않고 일하겠습니다.
   그 대신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땐,
   당신이 내게 같은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파우스트 : 저 세상 따위는 개의치 않네.
   자네가 우선 이 세상을 박살내 버린다면,
   다음에 어떤 세상이 생겨나든 무슨 상관이겠나.
   이 땅에서만 나의 기쁨이 샘솟고,
   이 태양만이 내 고뇌를 비춰줄 뿐일세.
   이것들과 우선 헤어질 수 있다면
   그 다음엔 무슨 일이든 될 대로 되라지.
   미래에도 증오와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 세상에도 역시
   상하의 구분이 존재하는지,
   그런 이야길랑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네.
   「비극 제1부」 94쪽

   파우스트 : 이건 엄숙한 약속이다!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땐 자네가 날 결박해도 좋아.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다!
   「비극 제1부」 95쪽

   메피스토펠레스는 우선 파우스트에게 마녀의 약을 마시게 해 그를 청년으로 만들어 줍니다. 20대 청년이 된 파우스트는 아름답고 순수한 처녀 그레트헨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레트헨은 한 눈에 메피스토펠레스가 악마임을 알아보았고, 그레트헨의 순수함은 쾌락에 빠진 파우스트의 마음까지 정화시켜 줍니다. 이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농간을 부려, 그레트헨은 어머니를 죽이고 파우스트는 그녀의 오빠를 죽이게 만듭니다. 파우스트는 감옥에 갇힌 그레트헨을 구하러 가지만, 그레트헨은 파우스트를 용서하며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때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녀가 심판받았다고 말하지만, 위로부터 들려온 목소리는 "구원받았노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비극 제1부」는 그레트헨의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파우스트 : 무지개는 인간의 노력을 비춰주는 거울.
   그것을 보고 생각하면,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하리라.
   인생이란 채색된 영상 속에서 파악된다는 사실을.
   「비극 제2부」 16쪽

   「비극 제2부」에서 파우스트는 고전 속 최고의 미녀인 헬레나와 사랑에 빠져 아들 오이포리온까지 낳지만, 오이포리온은 이카루스처럼 추락해 죽고 헬레나도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파우스트는 엄청난 땅과 재산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는 늙은 노인들이 쉬고 있는 보리수 나무 그늘까지 욕심냅니다.

   파우스트 : 저 언덕 위의 노인들을 몰아내고
   보리수 그늘을 내 자리로 삼고 싶다.
   내가 갖지 못한 저 몇 그루 나무들이
  세계를 차지한 보람을 망치고 있구나.
   저곳에서 사면을 둘러보도록
   나뭇가지 위에 발판을 만들고 싶다.
   멀리까지 시야가 터지게 해서
   내가 이룬 모든 것을 바라보겠다.
   현명한 뜻으로 백성을 위해
   넓은 복지의 땅을 마련해 준
   인간 정신의 걸작품을
   한눈에 둘러보고 싶단 말이다.
  
   부유한 가운데 결핍을 느낀다는 건
   우리의 고통 중에 가장 혹독한 것이다.
   「비극 제2부」 348~349쪽

   백 살 가까이 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실현시켜 준 것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순간의 쾌락은 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백만에게 땅을 마련해 주기 위해 드넓은 땅을 비옥한 땅으로 개간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외칩니다. 오래전 메피스토펠레스와 자신이 한 계약을 매듭짓는 외침을 말입니다.

   파우스트 :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에 둘러싸이더라도 여기에선
   남녀노소가 모두 값진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군중을 지켜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메피스토펠레스 : 어떤 쾌락도 행복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변화무쌍한 형상들만 줄곧 찾아 헤매더니,
   최후의 하찮고 허망한 순간을
   이 가련한 자는 붙잡으려 하는구나.
   내게는 억세게도 항거한 놈이지만,
   세월 앞엔 별수없이 백발이 되어 모래 위에 누웠구나
   시계는 멈추었다 ─
   「비극 제2부」 363~364쪽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는 죽은 파우스트의 영혼을 갖지 못합니다. 구원 받은 그레트헨이 파우스트도 구원해달라고 간청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파우스트와 맺은 계약만 마무리된 것이지 사실 주님과 맺은 내기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진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그렇게 유혹했는데도 결국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길로 가지 않았고, 주님은 살아있는 동안만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파우스트가 죽은 이후에 개입해 그를 구원해 준 것도 내기의 기본 룰을 어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 쓴 작품이라 배경이나 메시지가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갖추지 못하고 다소 산만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무대에서의 서연」에서 이미 단장의 입을 통해 살짝 주지시켜 준 부분이기도 합니다.

   단장 : 우리 독일 무대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으니
   오늘은 배경이건 소도구건
   마음대로 사용해 보자고.
   (…) 천국에서 현세를 거쳐 지옥에 이르기까지.
   「무대에서의 서연」 17~18쪽

   아무리 괴테의 인생작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재미를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썼을 때의 괴테의 나이와 상황을 생각한다면, 또 비슷한 시기와 상황을 지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연결시켜 본다면 새겨두고픈 문장들도 많습니다.
   괴테가 그랬듯이, 『파우스트』를 읽는 우리들도 단 며칠동안 단숨에 읽어버릴 것이 아닌,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공들여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여인 : 내 이름은 결핍이에요.
   둘째 여인 : 나는 죄악이라고 해요.
   셋째 여인 : 내 이름은 근심이에요.
   넷째 여인 : 나는 곤궁이라고 하고요.
   셋이 함께 :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군요.
   안에는 부자(富者)가 살고 있어서 들어가기 싫네요.
   근심 : 언니들은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서도 안 돼요.
   근심인 나는 열쇠구멍으로 살짝 들어가지만요.
   「비극 제2부」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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