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 사감
젊은날의 치기와 선망과 욕정이 낳은 비극을 너무 늦게 알게 된 사람의 놀라움이라...
그런데 비극은 비극인데 왜 우리 토니 웹스터씨가 이리도 회한에 젖어야 하는 거지?
말의 저주라.. 그건 미스테리한 것이지 기정사실도 아닌데.
오히려 나는 이 소설이 '제2의 롭슨'으로 간주하고 밀어내 버린 그 부분에 집중했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젊은날의 치기를 깨달은 늙은이의 회한이 무슨 가치가 있으려나.
늙어서까지 고수한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
그 일관성과 그로 인한 희생과 거기서 시작되는 위대함 같은 거.
쪼잔한 토니씨에게서, 평범한 평균치 인생에서 위대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쉽게 간 소설이라는 생각을 금치 못하겠다.
문학도 늙는다.
문학에 주는 賞도 늙는다.
문학을 택하는 작가도 독자도 늙는다.
늙어서 어렵게 가는 길을 외면해 버린다.
그리 가도 역시 결과의 맛은 분명히 비슷하니까.
변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이 늙음이라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고
영원히 변치 말자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깨고, 깨진 약속에 화를 내는 쪽은
오히려 젊음이라는 것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백신처방을 받은 쪽은 젊은이가 아니라 늙은이인 것.
나이 든 요즘 자꾸 드는 생각은 지금에 와서 이렇게 오랜 노년을 겪을 바엔
차라리 인생의 정의를 노년 쪽에 포커스를 맞춰 결정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
아 ㅅㅂ 길어도 너무 길다. 어쨌거나...
변화가 초래한 그 상처들의 축적체가 인생이라면
그래서 늘그막에 회한에 휩싸여 고독과 합체해 버린다면
그야말로 늘그막에 삶이 역주행하기를 꿈꿀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어쨌든 상실의 시기이고 결국은 모두 내어놓고 말 것이니.
그리고.. 번역본 제목 그다지 좋지 않다.
원제의 느낌을 호도한달까.
끝의 감각. 끝의 느낌. 끝나는 느낌.
그게 왜 예감이고 나아가 징조인지... 읽고나니 더욱.
번역이나 출판이 독자를 가르치려 하면 안되요.
- 줄긋기
우리의 인생이 상황을 막론하고 이미 시작돼 버렸음을, 그래서 얼마간 이득을 봤고, 또 얼마간 손해를 감수했음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었을까. 21_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지.
역사는 생 양파 샌드위치입니다. 죽자고 반복하니까요. / 그걸 샌드위치 속에 다 넣기엔 좀 많지 않은가 싶은데?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33_
폭군이 적을 제거하라는 서신을 친필로 보내는 법이 거의 없듯이. 36_
마치 우주의 작은 레버가 눌리는 바람에 바로 이 곳에서 불과 몇 분 동안, 자연이 뒤집히고 시간도 거꾸로 흐른 것처럼. 67_
※ 해소(海嘯) 영국 세번강의 밀물, 바다에 버금갈 정도로 파도가 크게 이는.
1 . 삼각형 모양의 하구에서 만조 때나 폭풍, 해저 화산 따위로 인하여 바닷물이 역류하여 일어나는 거센 파도.
좁은 하구의 저항 때문에 생기며, 중국의 첸탕 강(錢塘江),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하구가 유명하다.
2 . 빠지는 조수가 바닷물과 부딪쳐 거센 물결을 일으킬 때 나는 파도 소리.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중략)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 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95_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의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101_
'모든 날이 일요일'이라. 묘비명으로 나쁠 것 같지 않다. 안 그런가? 110_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141_
회한remorse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를 뜻한다. 회한의 감정은 그와 같다. 236_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254_
옮긴이의 말 中,
과연 작가의 언어적 역량이 독자의 사고와 감각을 넓힐 수 있는가.
- 문학이 되기 위한 작품의 조건에 대해 저넷 윈터슨. 258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