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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52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으로 곁들여진 것들 :
생 토마토 la tomato crue
타인의 식사 le repas de l'autre
크스라 모로코 빵 la kesra marocaine
토스트 le toste
슈게트 la chouquette
인상적인 사람 :
마르트이모의 정원
자크 데스트레르 삼촌의 식사
사감 :
수사의 성찬. 때론 풍부하게, 때론 과하게, 때론 민망하게, 아주 아주 현란한 수사가 곁들여지는데
그 수사의 찬란한 관을 씌워준 요리맛을 내가 맛본 적이 없고, 또한 들어도 맛있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참 읽기가 난해하고도 미묘하게 가독성이 떨어졌다.
요리관련 만화도 그렇고, 뭐 음식 하나, 식재료 하나로 나라도 지구도 우주도 구한다는 논리라서 ㅋㅋ
하여간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넘치는 수사였다.
또 하나 남은 것이 있다면,
철학 전공자라서 그런가. '맛도 추억의 힘'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될 것을
작가가 참 길게도 찾아다녔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만큼 결말이 상식적이었다는 뜻.
뭔가 이보다는 참신한 결말을 바랐던 건 내가 비상식적이라서인지 뭔지.
독선으로 만인의 미움을 산 이 주인공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인지상정의 수준으로 안착하는 것,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는
그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읽고난 날 하필 슈choux를 만들었다.
슈는 속에 커스타드와 생크림을 잔뜩 넣어야 진정한 슈.
한 입 베어물면 차갑고 달콤하고 뭉클한 슈크림이 입 안이 미어지게 가득 채워져야 제맛인데.
대체 왜 크림을 2분의 1만 넣어야 한다는 것일까.
크림이 느글하지 않다면 그야말로 풍부함의 절정이 슈인 법인데. 이상한 친구들이야... 훔.
밑줄 :
72_ 완전성이란 회귀다. 퇴폐기의 문명만이 완전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8_ 먹는 것은 쾌락의 행위이고 이 쾌락을 글로 쓰는 것은 예술 활동이지만 진정한 단 하나의 예술작품은 결국 타인의 식사이다. 나의 식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일상의 전후에 범람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크 데스트레르 삼촌의 식사는 완전함을 갖추었고 완결된 자기만족적 단위로서, 내 기억 속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새겨진 유일한 순간으로서, 내 인생의 감정들로부터 해방된 영혼의 진주로서 남을 수 있었다. 마술 거울 속에 반사되어 다른 아무 것에도 열려 있지 않은 그림이 된, 거울틀 안에 내접하고 주변의 삶에서 고립되어 밖이 없는 하나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방을 바라볼 때처럼 타인의 식사는 우리 관조의 틀 안에 갇혀 있고 무한히 새어나가는 우리의 기억과 미래의 선으로부터 자유롭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거울 또는 자크 삼촌의 접시가 내게 떠올리는 삶, 관점들이 없는 삶, 그래서 가능성이 소거됨으로써 예술 작품이 되는 삶,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고 주변도 지평선도 없는 삶. 여기 그리고 지금. 그것은 아름답고 충만하고 완결적이다.
105_ 아무도 좋아해야 할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망하는 게 실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몰라서 모두가 불행하다는 걸 나는 안다.
108_ 수식이 없는 네 개의 굴. 그것은 그 투박한 겸손 덕에 장엄한 자연 그대로의 완전한 전주곡이었다. 과일향 나는 차가운 드라이 백포도주 한 잔.
매끄럽게 물결치며 나른하게 접힌, 얇게 저민 훈제햄 두 장. 소금을 넣은 버터, 커다란 둥근 빵에서 잘라낸 한 조각. 넘칠 듯이 왕성한 부드러움. 거짓말 같은, 그러나 맛있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두 번째 잔의 백포도주. 자극적이고 매력적이고 선정적인 서언.
멍청해질 정도로 부드러운, 파랗고 굵은 아스파라거스 몇 줄기.
영계 남은 것. 엄청난 크림과 라드, 검은 후추 약간, 누아르무티에 산인 듯한 감자, 그리고 삼십 그램도 포함되지 않은 기름기.
사과타르트. 얇고 바삭거리는 타르트 판과 노르스름하게 구워져 도도한, 수정같은 설탕으로 만든 캐러멜이 살짝 얹힌 과일.
그리고 그들의 노골적인 이야기들. 말 더럽게 안 듣는 자동차와 못먹을 술들과 아직 죽지 않은 멧돼지 등등. 촌구석 형제들의, 난삽하고 거칠지만 진짜 젊음이 있어 따뜻한 이야기들.
모든 삶은 말과 사실이 서로 침투할 때에만, 그리고 거기서 말이 사실에 옷을 입혀 내보일 때에만 비로소 삶으로서 존재한다.
123_ 이 이야기에 교훈이 있어야 할까?
132_ 환멸을 맛본 듯한 눈초리를 가진 요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