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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남자의 패션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5년 7월
평점 :
한때 남자의 옷은 곧 남자의 신분을 상징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의상은 오랫동안 그것을 입은 사람의 지위와 재산, 권력의 정도를 드러내는 장치였다. 왕후 귀족과 부자들은 공작처럼 한껏 멋을 내며 자신을 과시했다.
19세기 들어 남자들은 자신을 꾸미는 것보다 함께 다니는 여자를 꾸미는 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검은색과 회색 일변도의 턱시도와 양장 차림으로 바뀌었다.
최근 남자들도 한껏 멋을 내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남자의 옷이나 패션도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나카노 교코는 명화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는 ‘명화 탐정’이라 불린다. 그녀가 이번에는 남자의 몸과 옷을 낱낱이 파헤친다.
당시 인물이 몸에 걸치고 있는 ‘무엇’은 시대의 양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사진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화가들은 시대마다 기발하고 다양한 수법으로 남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저자는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한 그림 속 남자들의 패션을 찾아냈다. 책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옷 뿐 아니라 가발과 수염, 신발, 모자 등 다양하다. 15가지 주제로 나누어 각각 2점씩 총 30점의 그림을 소개한다.
나는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에 눈이 갔다. 저자도 타이틀을 장식한 그림인 만큼 더욱 정성껏 남자의 패션을 설명한다. 그림(사진) 속의 주인공은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이다. 그는 삼총사의 주인공 다르타냥의 후손이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남색가 샤를뤼스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져 있다.

▲조반니 볼디니 〈작가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 (1897)
그는 당대의 대귀족이자 19세기 말 파리 사교계의 거물이었다. 당시 여성복은 프랑스, 신사복은 영국이 최고라 여겼다. 몽테스키외 백작이 영국 신사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 속의 백작을 보자.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날씬한 몸, 최고급 캐시미어로 지은 갈색 슈트, 특별 주문해 만든 산양가죽 장갑, 왼손에 들고 있는 실크해트, 터키석 커프스(셔츠 소매 장식용), 세심히 계산하여 연출한 검은 타이, 원래는 루이 15세의 것이었다는 명품 지팡이까지.
저자는 이 한 점의 그림에서 어떻게 그 많은 패션 코드을 읽어낼 수 있는지 너무나 감탄스럽다. 나는 그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남자의 패션을 읽어나간다.
티치아노가 그린 카를 5세의 초상화를 보면 코드피스로 남성을 상징하는 곳을 보호하고 있다. 이는 스위스 용병들에게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병들은 금속으로 만든 코드피스를 사용했다. 이것이 멋있다고 여겨져 금세 지배계급으로 확산되었다고.
프랑스 혁명의 추진력이 된 민중의 전형적인 복장도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시기의 파리 풍속을 주로 그린 루이 레오폴 발리의 그림 <샹-퀼로트 분장한 가수 슈나르>를 보면 바지가 당시 귀족이나 부유층이 입었던 반바지에 대항한 것임을 엿보게 된다.
여기서 저자의 코멘트가 자못 흥미롭다.
남자가 다리를 내놓았던 오랜 기간, 여자는 줄곧 다리를 숨겨왔다. 그리고 남자가 다리를 가리자 이제는 여자가 거침없이 다리를 드러내게 되었다. - 108쪽
남자의 패션은 여자의 패션과 어떻게 연동되어 왔는지 새삼 호기심이 일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6살 모차르트와 5살 에드워드 왕자의 그림을 통해 소년들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소개한다.
교코가 쓴 책을 읽노라면 미지의 영역을 새로 답사하는 듯한 야릇한 흥분이 인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남편은 분명 색다른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에 뒤지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