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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2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원효는 왕과 귀족, 황룡사로 대변되는 권세와 기득권층과 대립한다. “어떻게 하면 대립과 증오에 빠진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원효의 화두는 끝없이 이어졌다.
선덕 여왕은 원효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한편으로 요석에게는 여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당부했다. “석아, 너는 사랑을 이루거라.” 선덕 여왕이 요석에게 내린 말이다. 부제 ‘요석 그리고 원효’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원효가 꿈꾸었던 이상 보다 요석과 원효의 사랑에 큰 방점을 두고자 했다.
원효는 요석의 사랑을 끝내 외면하지 못했다.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심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원효는 요석을 받아들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가시지 않았던 의문. 어쩌면 원효는 도리천에 머물러 있는 뭇 중생들을 구제할 행(行)을 직접 보이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불립문자(不立文字). 당대의 승려들은 경전 읽기에 매몰되어 오히려 중생의 지난한 삶에 무심했다. 원효는 “말씀은 행위로 다투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보았다. 붓다의 가르침을 세상에 꽃피우는 일, 행(行)이야말로 진정 수행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니던가.
비록 한 여인과의 사랑은 속세의 일이요 파계의 빌미가 되었을지언정 진정한 깨달음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함에 말해 무엇할까. 요석의 애절함에서 장륙존상 위에 올라 몸을 던졌던 소녀 단이의 아픔이 겹쳤을 것이다. 욕망의 현생도 극락의 영생도 불일불이(不一不二)한 깨달음의 바다에 융화되는 것이려니.
원효는 붓다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작가는 이를 위해 고구려 옥중 옥리들에게 혹은 백고좌 법회 때 원효가 들려준 붓다 이야기를 통해 살려냈다. 붓다의 초심이 경전의 지식으로 전수되면서 왜곡되고 뒤틀려 중생들의 삶과 괴리되어 왔음이라. 그렇기에 원효는 초심을 일심(一心)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겠다.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도 중생의 미혹된 마음도 모두 일심에서 펼쳐지는 것이기에 수행을 통해 정신 차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부처임을 각성해야 더 이상 권력의 질주에 놀아나지 않는다.
한편 타자는 곧 ‘나’라는 존재의 조건이라고 했다. 정치가 바로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야당이 있어야 여당이 있고, 국민이 있어야 지도자가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진정 화합과 소통의 시대를 열 수 있겠다. 이는 곧 원효가 꿈꾸었던 백성이 평안한 불국토의 세상이요, 일심으로 통하는 붓다의 세상이 아닐까.
요즘 같이 어지러운 시국에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이 간절히 그립다. 대화와 타협, 화합과 대자(大慈)의 마음과 서로 보듬고 함께 할 수 있는 상생의 정신이 필요하다.
아무쪼록 이번 첫 눈이 어지러운 세상사를 한번 장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