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이란 무엇인가
매슈 드 어베이투어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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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핑이란 도시인들이 시골에서 즐기는 휴가요, 문명으로부터의 단절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캠핑은 일상의 중단이 아니라 또다른 유형의 일거리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도시에서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업무나 단순 반복적인 노동에서 벗어나 자발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을 안겨 주는 즐거운 일들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여가 활동의 저변에는 오늘날 적당히 조정되고 수동적이고 스트레스로 가득찬, 저당 잡힌 듯한 운명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캠핑을 꿈꾼다!

 

저자 매슈 드 어베이투어는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방송인이다. 일 년에 한 달 이상을 아내 (캐스)와 세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떠나는 캠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집어 들면 어베이투어와 함께 캠핑 투어를 나설 수 있다.그것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말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러 캠핑은 도시 생활의 무력감과 허약함을 보충해 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대대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각 개인의 힘이 약해지는 현실에 시달리던 캠퍼들은 조상들이나 유목민들의 신화에 빠져들었다.

 

책을 펼쳐들면 저자가 캐스와 세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난다. 그는 런던에서 지붕도 없는 미궁 해커니에서 살면서 자가용을 포기했다. 생활 반경이 작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굳이 차를 끌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다보니 짐을 꾸릴 때부터 악착같이 부피와 무게를 줄이기는 것이 큰 일이 되었다. 지하철 타는 일마저도 2005년 7월 7일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있은 이후에 큰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는 것은 성가신 의심을 받게 되었다.

 

저자는 캠핑과 관련된 역사도 고찰한다. 캠핑이 교육 체험으로 활용된 1930년대의 숲속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주류 문화에 맞서는 대항문화로서의 자신의 캠핑관을 피력하기도 한다. 작가의 이력 답게 캠핑에 관한 고전과 명문들을 덤으로 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캠핑 역사는 캠핑을 어떻게 보느냐는 시각에 따라 오른쪽, 왼쪽 길이 있다. 두 길은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오른쪽 길의 캠핑은 “자연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국가를 내세우는 데 전력하면서 군대 스타일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길의 끝에서는 이글스카우트라는 미국의 아이콘과 만난다. 닐 암스트롱, 스티븐 스필버그, 도널드 럼스펠드 같은 이들이 획득한 지위다. 친민족주의, 주류 문화의 길이다.”

 

반면 왼쪽 길의 캠핑은 “나체주의에서 채식주의에 이르는, 페미니즘에서 환경보호 운동에 이르는 20세기의 진보적 운동을 만난다. 신지학(神智學·신비한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알게 되는 철학적·종교적 지혜 및 지식), 오컬트, 파시즘의 무서운 유혹이라는 이상야릇한 짐승들이 잠복해 있는 숲속으로 빠져들기도 할 것이다. 주류 문화에 맞서는 대항적 문화의 길이다.” 저자는 자신은 왼쪽 길을 따른다고 당당히 밝힌다.

 

 

캠핑을 생생하고 강렬한 체험으로 만드는 것은 긍정적인 면들과 부정적인 면들을 모두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캠핑은 미소이자 찡그림에 해당한다. 행복을 좇는지 무엇을 좇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아가는 그 모호함 속에 존재하는 체험들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시간의 모호함 속에서 살며 노동하고 한편으로 인간적인 배려를 잊지 않는 따뜻함이 배인, 그런 것 말이다.

 

현대인들은 황야, 글래스턴베리 음악제와 같은 축제, 정치적 집단, 교회, 보이스카우트, 자연, 역사의 일원이 되기 위해 캠핑을 한다. 저자의 시선이 낭만적이요 신선하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문체가 경쾌해서 마치 함께 캠핑을 떠나는 것처럼 흥이 돋는다.

 

이 책의 압권은 말미에 있다. 바로 ‘캠프 철거’. 저자는 글래스턴베리 음악축제가 마끝났을 때 맛보았던 황량감을 토로한다. 2009년의 축제 때에는 텐트 5,572개, 침낭 6,538개, 의자 2,220개, 에어 베드 3,321개, 노대 400개가 버려졌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나온 것이다. 저자는 텐트를 걷고 뒤처리를 위해 몸으로 때워야 할 일들을 기꺼이 감수할 마음이 되어 일상생활로 복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가 캠핑 여행에서 필요로 하는 것, 거기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더 큰 자유다. (중략)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캠프를 확실하게 거둬야 한다. - 410쪽

 

우리가 짐을 꾸릴 때 무게와 부피를 줄이기 위해 악착같이 애쓰는 것처럼 마무리도 그렇게 더 악착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캠퍼가 캠핑하는 일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음 여행에 관해서 꿈꾸는 것이다.” 저자는 히피의 낭만을 제대로 아는 것 같다. 후레이!

 

여기서 팁 하나. 부록으로 캐스의 짐 꾸리기 목록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더 많은 팁이 필요하다면 저자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웹 사이트(www.cathandmathcamping.com)를 방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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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 사랑과 전쟁과 천재성에 관한 DNA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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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샘 킨은 미 미네소타 대학에서 물리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사이언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는 『사라진 스푼』에 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DNA다. 읽어 보니 단순히 DNA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담고 있거나 최근 연구 동향을 전달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뭐랄까, DNA에 관한 히스토리 그리고 DNA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경쟁과 그 속에 깃든 애환을 담고 있다. DNA에 관한 인문학이라면 어떨까 싶다!

 

옮긴이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교양 과학도서의 번역가로 활동 중인 이충호 씨. 과학을 전공하 전문가 답게 번역문이 세련되어 무난하게 읽힌다.

 

 

그런데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바로 19세기에 활동한 바이올린의 거장 니콜로 파가니니를 말한다. 특히 그의 엄지.

 

파가니니는 아주 유연할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엄지손가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주로 연주했는데, 그 곡들은 그의 현란한 손놀림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성공을 거둔 이유가 놀랍도록 강하고 유연한 손 때문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저자는 파가니니의 엄지에서 화두를 펼친다. 그는 파가니니에게 손가락을 아주 유연하게 만드는 유전 질환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파가니니의 탁월한 연주 실력 이면에는 DNA가 작동한 것이다!

 

킨은 “DNA의 이해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우리 몸과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DNA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 역시 우리 몸과 마음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보면 DNA를 들여다보는 것은 인류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과도 같다. 자, 이제 저자가 이끄는 안내에 따라 DNA 투어를 떠나보자.

 

나는 DNA하면 우선 멘델이 떠오른다. 당시 가난했던 멘델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대학 등록금을 포함해 필요한 비용을 대주었기 때문에 기꺼이 수도사가 되었다. 이는 《은유로서의 질병》을 번역한 이재원도 “종교 기관이 의학 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던 이유는 비교적 자금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권 계층들이 종교 기관에 정기적으로 돈을 헌납했고, 결론적으로 이것이 유전학 등의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책에 따르면 멘델은 좀 괴팍한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평을 보면 “(멘델은) 자신이 오로지 적과 배신자와 음모자들도 둘러싸여 있다고 의심으로 가득차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당대에 정부 당국 등과의 불화로 연구 논문과 문서가 모두 불태워지는 등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는 니콜로 파가니니가 지닌 천부의 재능은 손을 놀랍도록 유연하게 만든 유전 질환의 도움이 컸다. 기괴할 정도로 멀리 벌려진 엄지손가락에 주목하라. (책 325쪽)

 

사후 16년이 지난 1900년에 세 과학자가 독자적으로 멘델을 재발견하면서 마침내 빛을 발휘했다. 아울러 다윈의 자연 선택설과 멘델의 유전학 사이에 불꽃 튀기는 내전이 벌어진다.

 

다윈은 1882년에, 멘델은 1884년에 세상을 떠났다. 둘은 동시대의 사람들이었다.  20세기 벽두에 빚어진 다윈과 멘델의 치열한 논쟁을 보면 두 사람이 근대 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 수 있다. 샘 킨은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한 필체로 DNA를 둘러싼 논쟁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어젖힌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몰입해 들어간다. 

 

멘델에 이어 다음 타자는 초파리 연구로 유명한 모건과 그 제자들(일명 플라이 보이스fly boys)다. 나는 모건 이야기도 흥미로왔지만, 허먼 밀러에게 눈길이 가는 것을 어쩌지 못하겠다.

 

밀러는 낮에는 호텔과 은행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밤에는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했다. 그는 연구에 대한 열정을 어쩌지 못했는지 모건의 연구실을 어슬렁거렸고, 마침내 모건의 플라이 보이스에 합류했다. 샘 킨은 밀러를 두고 나름대로의 통찰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부실한 모건의 이론을 튼튼하게 다져나갔다고 평한다. 이상하게도 모건은 그에게 급여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정식 연구원 신분이 아니었던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밀러의 노력에 보답을 했다. 모건은 1933년 단독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어 밀러 역시 1946년에 방사선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상을 받았다. 인생 역전이 아닐 수 없겠다.

 

야마구치 쓰토무에 관한 이야기는 의외로 반전이 있는 사례였다. 야마구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연이어 피폭된 히바쿠샤 150여 명 중 한 명이었다. 두 번이 피폭당했으니 일찍 사망했으려니 했지만, 웬걸 전혀 아니었다. 그는 피폭된 지 65년이나 더 살다가 2010년 위암에 걸려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저자는 야마구치에게 일어난 돌연변이는 ‘침묵’ 돌연변이였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한다. 밀러의 발견에 따르면 DNA 돌연변이가 생겨야했던 것이다.

 

여성 과학자에 대한 소개도 이어진다. 가령 미리엄 마이클 스팀슨 수녀, 로절린드 프랭클린 그리고 바버라 매클린톡 등이다. 사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을 풀게 된 실마리는 앞의 두 과학자 연구에 힘입은 바가 컸다. 커다란 후드가 달린 수녀복을 입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미리엄 수녀의 모습은 한편으로 경건하면서도 한편으로 엄숙했다.

 

일찍이 북극 탐사과정에서 맞닥뜨렸던 북극곰과의 한판 승부도 소개한다. 북극곰을 잡아먹은 선원들은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구토를 계속 반복”하면서 “머리뼈 안쪽에 큰 압력을 느꼈”고 심지어 정신이상 증상까지 보였다. 왜 그랬을까? 곰의 간에는 비타민 A가 농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관심은 고농도의 비타민 A에 적응하게 된 북극곰의 내막을 추적하는 것이다.

 

 

게놈 프로젝트 결과로 밝혀진 사실 중에 30억 개의 염기쌍 중 8%는 바이러스의 유전자라는 것이었다. 순수한 인간 유전자는 2% 미만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의 DNA는 인간 보다 바이러스의 속성이 4배쯤 많은 셈이다. 더군다나 2006년 프랑스의 티에리 에드만은 이 바이러스들의 유전자 문자열을 복제하여 “피닉스(Phoenix)”를 만들어냈다고 하니 DNA의 묘미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 유전자를 침팬지 유전자와 합쳐 ‘휴먼지’를 만들려고 했던 러시아 일리야 이바노비치 이바노프 이야기는 섬뜩하기조차 했다. 비록 이바노프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마치 과학사에서 최대의 사기 중 하나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은 파울 카메러 처럼 유전학 영역에서 일정 부분 기여한 측면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다만 인륜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는 조건을 잘 지켜야겠지만.

 

여기서 잠시! 저자는 과학에는 ‘독불장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프레임이나 패러다임에 갇힌 사람들이 주어진 상황에 눈이 멀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청개구리’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호전적으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대표적인 인물에 린 마굴리스와 크레이그 벤터가 있었다.

 

저자는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둘러싼 프랜시스 콜린스(『생명의 언어』 저자)와 크레이그 벤터(『게놈의 기적』 저자)의 대결, 후천적으로 획득한 형질이 유전되는 후성유전학의 발전, 복제양 돌리의 탄생으로 생명의 영역에 발을 내딛게 된 내막 등을 풀어낸다.

 

유전과학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즉각적인 진단이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전과학은 우리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무엇이며, 지구의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더 넓은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 450쪽

 

다 읽고 나니 DNA에 관해 이처럼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쓸수 있다니, 작가의 역량이 부럽고 또 부럽다. 경탄마저 일게 만든 역작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과학계에도 샘 킨 같은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이제 구입해 놓고 미처 읽지 못한 샘 킨의 다른 저작 『사라진 스푼』을 읽어야겠다. 주기율표에 얽힌 세계사라니 벌써 기대가 된다. 이 책 역시 이충호 씨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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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똥장수 -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
신규환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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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4월 베이징 똥장수의 리더격인 위더순과 쑨싱구이가 반동 혐의로 체포된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당시 중국 똥장수들은 대부분 산둥 출신이었다. 청대 이래 중국 내 최대 이주민은 산둥인이었다. 그들은 황제가 사는 베이징에 가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몰려들었지만, 이와 달리 베이징에서 안착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얻은 자리는 점원, 접대부나 잡역부와 같이 도시하층민이 접근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여기에 물장수와 똥장수도 해당된다.

 

산둥인들이 똥장수를 장악하게 된 것은 팔기군의 화부를 맡아 대거 베이징으로 이주하면서였다. 그들은 분뇨채취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업권을 독점하고 분도(糞道)라는 구역을 나누어 자신들끼리 임대, 양도, 매매를 독점했다. 위더순의 일가는 바로 이러한 관행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저자 신규환 교수는 연세대 의과대학 의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사학을 살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도시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박사 학위도 베이징의 위생행정 분야였다. 이 때 중국 똥장수 이야기를 일부 다루었다.

 

[민화 속의 북경 똥장수]

 

신 교수는 중국 똥장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 하던 차에 마침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업을 진행, 이 책으로 마무리했다.

 

저자는 특정 집단을 다룰 때 “관련 사료를 발굴”하는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토로한다. 그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숨겨진 하층 대중의 목소리와 일상을 탁월하게 복원해 냈다.

 

책은 중국 혁명기 시절 똥장수라는 사회 밑바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근대사의 한 면모를 드러낸다. 이는 로버트 단턴이나 카를로 진즈부르그 읽기와 같이 독특한 체험이었다.

 

당시 똥장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본가인 분창주(분뇨창고 소유주), 분도주(분뇨재취 구역 소유주)와 똥장수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분창주는 분뇨를 말려서 농촌에 되팔았다. 분창에는 대개 똥차를 보관하고 똥장수가 기거하는 숙소가 딸려 있었다. 한편 본도는 똥장수에게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똥장수 노동자가 돈을 모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분도를 구입하여 분도주가 되는 것이었다.

 

 [위생국이 촬영한 북경 똥장수. 공식적인 모습은 이처럼 말쑥했다]

 

 

이 무렵 베이징 최대의 분창주가 바로 위더순 일가였다. 그는 시내에 40여 채의 가옥과 40만 평 규모의 토지를 가진 대지주였다. 이에 반해 쑨싱구이는 똥장수 브로커로서 자신의 분도와 소규모 분창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경제력은 대부분 위더순이 몰아 준 계약업무와 회계업무에서 나온 것이다.

 

전통적인 베이징 시민들의 주거공간과 일상공간을 대표하는 사합원(四合院)을 보자. 사합원은 건물이 사각형의 평면구조로 연결되어 외부에는 폐쇄적이고 내부적으로는 개방적인 독특한 가옥 형태다. 정방은 대개 세 칸 규모로 사합원의 중심 공간이었고, 중앙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좌우에 최연장자가 거주하는 침실이 있었다. 내원의 양 옆으로 있는 상방에는 아들이 거주하며, 창문은 오직 내원을 향하였다. 정방의 뒷면에 있는 후원에는 미혼의 딸과 하녀들이 기거했다.

 

[사합원의 구조]

 

이렇듯 사합원은 정방형의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환기에 취약했다. 따라서 화장실을 원내에 설치할 경우 냄새가 집안에 진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주민들은 일종의 간이 분뇨처리기구인 마통(馬桶)에 배설한 후 보관해 두었다 똥장수가 오면 마통을 비우고 세척, 햇볕에 말리는 일상을 반복해야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황제 일가가 살던 내성의 분뇨를 담당했던 분도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배출된 양질의 분뇨가 생산되는 곳이어서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는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다를까마는 똥은 확실히 달랐던 모양이다!

 

1930년대 당시 베이징의 상하수도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가령 1940년대 말까지만 해도 10퍼센트 내외 만이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분뇨처리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분뇨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배출되었지만, 분뇨처리시설의 진전이 없어 불결한 공중화장실의 난립 속에서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약한 냄새와 함께 도시환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당시 똥장수들은 도시의 분뇨를 수거하는 데 있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분뇨를 비료로 되팔아 이중의 차익을 남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분뇨처리를 대가로 별도의 처리비용을 요구하거나 태업을 자행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그들을 ‘분벌(糞閥)’이라고 불렀다.

 

1930년대 당시 베이징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분뇨업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이때 똥장수들의 저항과 대규모 시위가 거세게 이어졌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다룬다. 당시 최대 이슈의 하나가 분뇨업의 관영화였다. ‘분벌’이라고 불리던 똥장수들의 횡포가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현대식 위생개혁의 정점이기도 했다.

 

 

마침내 1951년 인민정부는 대대적인 분도제도 개혁에 관한 6개조를 포고했다. 이에는 일체의 분도 및 화장실을 위생공정국이 관리하도록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었다. 마침내 1954년 분뇨업은 관영화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체포된 위더순 등은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당시 재판부가 “대분벌 위더순은 사형에 처한다”고 판결했음을 밝히고 있다.

 

중국 근대사 격변의 시기 1930년대를 베이징 똥장수라는 화두를 통해 꼼꼼하게 일관(一觀)한 저자의 성실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이는 근대적인 위생개혁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역사를 다른 주체의 입장에서 조망한다는 것은 색다른 재미는 물론이려니와 폭넓은 시각을 길러주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보건과 위생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능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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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livier)는 걸으면서 자신을 치유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은퇴한 뒤 그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찾아왔다. 사랑하던 어머니가 죽고, 부인까지 애를 낳다 죽자 인생이 싫어져 자살까지 시도한다. 이랬던 그가 걸으면서 점차 치유되기 시작한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099일 동안 걸은 후 이를 바탕으로 《나는 걷는다》란 여행기를 썼다.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친 뒤 일단 파리...를 떠나자고 생각했다. 석 달 동안 2,300km를 걸으면서 걷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매일 20km씩 걸으니 내 몸이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주 전만 해도 죽으려 했던 사람이 3주 후 걷기의 즐거움에 취해 버린 거다. 인간이란 걷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란 생각을 그때 했다. 신체의 균형이 잡히면 정신의 균형도 잡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바탕으로 소년원 아이들을 걷게 하면서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른 죄수들은 재범률이 80%가 넘는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죄수들의 재범률은 15%에 불과했다. 걷기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선물이다.

- 한근태 《몸이 먼저다》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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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바로 그곳이 당신의 힘이 놓일 자리이기 때문이랍니다."

Have faith in small things because it is in them that your strength lies.

- 마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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