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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똥장수 -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
신규환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5월
평점 :

중국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4월 베이징 똥장수의 리더격인 위더순과 쑨싱구이가 반동 혐의로 체포된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당시 중국 똥장수들은 대부분 산둥 출신이었다. 청대 이래 중국 내 최대 이주민은 산둥인이었다. 그들은 황제가 사는 베이징에 가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몰려들었지만, 이와 달리 베이징에서 안착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얻은 자리는 점원, 접대부나 잡역부와 같이 도시하층민이 접근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여기에 물장수와 똥장수도 해당된다.
산둥인들이 똥장수를 장악하게 된 것은 팔기군의 화부를 맡아 대거 베이징으로 이주하면서였다. 그들은 분뇨채취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업권을 독점하고 분도(糞道)라는 구역을 나누어 자신들끼리 임대, 양도, 매매를 독점했다. 위더순의 일가는 바로 이러한 관행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저자 신규환 교수는 연세대 의과대학 의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사학을 살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도시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박사 학위도 베이징의 위생행정 분야였다. 이 때 중국 똥장수 이야기를 일부 다루었다.

[민화 속의 북경 똥장수]
신 교수는 중국 똥장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 하던 차에 마침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업을 진행, 이 책으로 마무리했다.
저자는 특정 집단을 다룰 때 “관련 사료를 발굴”하는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토로한다. 그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숨겨진 하층 대중의 목소리와 일상을 탁월하게 복원해 냈다.
책은 중국 혁명기 시절 똥장수라는 사회 밑바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근대사의 한 면모를 드러낸다. 이는 로버트 단턴이나 카를로 진즈부르그 읽기와 같이 독특한 체험이었다.
당시 똥장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본가인 분창주(분뇨창고 소유주), 분도주(분뇨재취 구역 소유주)와 똥장수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분창주는 분뇨를 말려서 농촌에 되팔았다. 분창에는 대개 똥차를 보관하고 똥장수가 기거하는 숙소가 딸려 있었다. 한편 본도는 똥장수에게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똥장수 노동자가 돈을 모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분도를 구입하여 분도주가 되는 것이었다.

[위생국이 촬영한 북경 똥장수. 공식적인 모습은 이처럼 말쑥했다]
이 무렵 베이징 최대의 분창주가 바로 위더순 일가였다. 그는 시내에 40여 채의 가옥과 40만 평 규모의 토지를 가진 대지주였다. 이에 반해 쑨싱구이는 똥장수 브로커로서 자신의 분도와 소규모 분창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경제력은 대부분 위더순이 몰아 준 계약업무와 회계업무에서 나온 것이다.
전통적인 베이징 시민들의 주거공간과 일상공간을 대표하는 사합원(四合院)을 보자. 사합원은 건물이 사각형의 평면구조로 연결되어 외부에는 폐쇄적이고 내부적으로는 개방적인 독특한 가옥 형태다. 정방은 대개 세 칸 규모로 사합원의 중심 공간이었고, 중앙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좌우에 최연장자가 거주하는 침실이 있었다. 내원의 양 옆으로 있는 상방에는 아들이 거주하며, 창문은 오직 내원을 향하였다. 정방의 뒷면에 있는 후원에는 미혼의 딸과 하녀들이 기거했다.

[사합원의 구조]
이렇듯 사합원은 정방형의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환기에 취약했다. 따라서 화장실을 원내에 설치할 경우 냄새가 집안에 진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주민들은 일종의 간이 분뇨처리기구인 마통(馬桶)에 배설한 후 보관해 두었다 똥장수가 오면 마통을 비우고 세척, 햇볕에 말리는
일상을 반복해야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황제 일가가 살던 내성의 분뇨를 담당했던 분도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배출된 양질의 분뇨가 생산되는 곳이어서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는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다를까마는 똥은 확실히 달랐던 모양이다!
1930년대 당시 베이징의 상하수도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가령 1940년대 말까지만 해도 10퍼센트 내외 만이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분뇨처리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분뇨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배출되었지만, 분뇨처리시설의 진전이 없어 불결한 공중화장실의 난립 속에서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약한 냄새와 함께 도시환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당시 똥장수들은 도시의 분뇨를 수거하는 데 있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분뇨를 비료로 되팔아 이중의 차익을 남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분뇨처리를 대가로 별도의 처리비용을 요구하거나 태업을 자행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그들을 ‘분벌(糞閥)’이라고 불렀다.
1930년대 당시 베이징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분뇨업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이때 똥장수들의 저항과 대규모 시위가 거세게 이어졌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다룬다. 당시 최대 이슈의 하나가 분뇨업의 관영화였다. ‘분벌’이라고 불리던 똥장수들의 횡포가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현대식 위생개혁의 정점이기도 했다.

마침내 1951년 인민정부는 대대적인 분도제도 개혁에 관한 6개조를 포고했다. 이에는 일체의 분도 및 화장실을 위생공정국이 관리하도록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었다. 마침내 1954년 분뇨업은 관영화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체포된 위더순 등은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당시 재판부가 “대분벌 위더순은 사형에 처한다”고 판결했음을 밝히고 있다.
중국 근대사 격변의 시기 1930년대를 베이징 똥장수라는 화두를 통해 꼼꼼하게 일관(一觀)한 저자의 성실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이는 근대적인 위생개혁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역사를 다른 주체의 입장에서 조망한다는 것은 색다른 재미는 물론이려니와 폭넓은 시각을 길러주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보건과 위생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능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