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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 행복한 공간을 위한 심리학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쇼핑몰이나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다. 고객의 동선도 상품 진열에 맞추어 빈틈없이 짜 놓았다. 이처럼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이라고 한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면서 신경건축학을 전공한 에스더 M. 스턴버그다. 그는 책에서 건축과 공간이 인간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힐링과 치유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소개한다.
우리가 특정 장소나 공간에 대해 갖는 감정과 기억은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모든 감각을 거쳐 만들어진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공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개조하거나 공간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우리의 심신을 지배하는 생물학적 작동 기전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가령 뇌의 활동과 호르몬의 영향 등에 따라 우리의 감정과 기억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가 착안한 것은 우리의 심신이 지치고 아플 때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편안히 쉬게 하거나 회복할 수 있는 공간, 즉 치유의 공간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이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는 약 30년 전(1984) 처음 발표되었다. 이 결과에 의하면 병실 창으로 자연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되었다. 사실 어둡고 비좁은 장소에 사람들로 가득해서 소음이 끊이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혼자 살아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스턴버그는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면밀히 파악해서 정서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공간을 짓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가령 소아마비 배신을 개발한 조너스 솔크는 백신 개발이 답보 상태에 빠졌을 때, 홀연히 찾았던 이탈리아의 아시시 마을에서 얻었던 영감을 자신이
세운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에 재현하고자 했다. 이 연구소는 샌디에고에서 태평양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나란히 서 있는 기다란 4층 건물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2001년에 오픈한 메이요 병원의 레슬리 앤드
수전 곤다 빌딩(Leslie and Susan Gonda Building, 사진)을 보자. 로비는 3층 높이의 아트리움으로 되어
있고 한 켠에는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다. 천장에는 갈색 유리로 만든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로비의 벽에는 현대 화가들의 대형 그림이나
벽화가 걸려 있다. 벽 전체를 차지하는 거대한 창문으로는 일 년 내내 꽃과 식물이 자라는 테라스의 정원이 내다보인다. 유리벽을 따라 놓인
의자들은 모두 정원을 향해 있다. 환자와 가족들은 그곳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우리 두뇌의 기능에 도움을 주도록 병원 환경을 설계하면 몸이 원래 지닌 치유력을 빨리 회복할 수 잇을 것이다. 아니 병원뿐만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거나 일하는 공간도 자연친화 설계를 한다면 안락한 환경에서 쉬거나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눈길은 병원 공간에서 도시와 지구촌으로 향한다. 그는 19세기가 도시 전염병의 시대였고 20세기 초반은 도시 전염병이 소탕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전염병 확산이 증가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자연친화 설계’(biophilic design)라는 건축학의 한 분야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 자체에 치유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설계 연구의 목표는 환경에서 스트레스 요인들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환자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고 환자의 삶의 정신적·사회적 측면까지 고려한 요소들을 더하는 것 또한 포함한다.
이런 맥락에서 뜻있는 건축가, 심리학자, 의료인 등이 모여 꿈의 병원(Fable Hospital)을 만들기 위해 태동한 페블스 프로젝트(Pebbles Project)는 참고할만하다. 페블스 프로젝트는 마치 연못에 작은 자갈을 던지면 파랑이 일 듯이 하위 병원들, 가령 아동병원, 재활병원, 암동병, 중환자실 등을 병원이나 병동 특성에 맞게 재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경쟁 사회에 내몰린 현대인들이 심신을 안정시키고 진정한 휴식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과 건축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게다가 질병 예방과 치유까지 아우를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까. 공간과 건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폭넓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이 책, 일독을 권해 드린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아니, 나는 이 말을 ‘공간이 심신을 치유한다’로 바꿔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