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반전을 이끌어낼 것인가 - 관성과 습관을 1˚비틀어 문제를 해결하는 패러독스 발상법
크리스티안 안코비치 지음, 박정미 옮김 / 리더스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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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11일 아침 9시가 막 지난 무렵이었다. 당시 상행 스키 열차는 승객 162명을 태우고 휴양지 키츠슈타인호른으로 향하고 있었다. 총길이가 3.3km에 이르는 터널을 5분의 1쯤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열차가 멈춰 섰다. 맨 마지막 차량의 전기히터에서 불이 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유압장치에서 오일이 사방으로 튀면서 순식간에 다른 차량에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자 당신이라면 어디로 향할 것인가? 터널 위쪽인가? 아래쪽인가?

 

사망자 150명 대부분은 불을 피하려는 본능적이고 즉각적이었던 반응으로 터널 위쪽으로 향했다. 계속 위로 올라갔던 사람들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골짜기 측면에서 터널 안으로 공기가 유입되어 불길이 더 거세졌고 터널 안에 있던 독가스가 위쪽으로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터널 아래로 내려갔던 10명은 무사히 생명을 건졌다.

 

저자는 이처럼 평소의 습관대로 행동하는 것을 ‘루틴에 따른다’고 지적한다. 이런 무의식적인 행동은 2001년 9·11 테러 때에도 나타났다. 탈출한 사람 271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했더니 자기 책상을 정리하느라 적게는 1분에서 많게는 8분 가량을 지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저자가 소개한 사례를 접하고 마냥 흘려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우리 뇌 속에 깊숙이 저장된 루틴은 의식적인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단단히 벼려서 행동한다면 루틴을 극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호랑이와 맞닥뜨렸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심사숙고해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모면하고자 한다면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다.

 

인류는 재빠르게 반응하는 행동 습관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체득했고, 오랜 기간의 진화 과정에서 DNA에 각인시켜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반전을 이끌어 낼 것인가?”

 

우리는 하지 말라면 꼭 더 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음향이 차단된 캄캄한 방에 놓여지거나,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매트 위에 누워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한두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모든 감각이 사라지거나 환각 등 이상 감각을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인간이 생존하려면 스트레스와 저항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으로 어떤 규제나 슬로건을 보면 그에 순응하기보다는 반대로 자신의 능력과 자율성을 입증하려는 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폐업 광고나 절약 슬로건은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런 전략을 확장해 보면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싶다면 ‘무시 전략’이 소용이 닿을 데가 있고, 진짜 컨설팅을 받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망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저자는 관철시키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오히려 그 일을 금지시켜 보라고 조언한다. 금지는 때로 “독려의 채찍이자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금연 캠페인을 돌이켜 본다. 금연 로고가 찍힌 스티커가 이곳저곳에 붙어 있지만 어딘가 식상해 보인다. 대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흡연, 행운을 빕니다! (Smoking, Good Luck!)”.

 

저자의 주장은 때론 통념에 맞서고 때론 적극 이용하는 '상식과 법칙의 패러독스'다. 이 둘의 균형을 맞추기는 절벽 사이 놓인 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모험일 수 있겠지만. 아울러 뭔가를 하면서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해리 전략이나,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정 전략이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다. 일종의 반어법이나 반전이 되겠는데, 우리는 이를 더 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가령 마라톤 선수가 남은 거리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달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아우슈비츠 같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운명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생존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은 어째서 이 구절을 읽고 있나요? 이렇게 줄을 그어놓았는데도 말입니다! 줄을 그어놓았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읽지 말라거나 무시하라는 소리지요. 그런데 당신은 어쩌고 있습니까? 그냥 계속 읽고 있네요! 내 말에 관심을 갖지 마십시오. 뭐라고요? 이 구절을 완전히 삭제해버리면 될 것 아니냐고요? 그러니까 나도 당신이 읽기를 바란 것이 아니냐고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당신이 바로 위의 문장이 던진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면, 즉 줄을 그어놓은 문장 전체를 읽지 않았다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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