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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김수영
김명인.임홍배 엮음 / 창비 / 2005년 1월
평점 :
김수영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빚을 진 사람으로서 김수영에 관한 저작들이 지속적으로 발간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100살 정도 먹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김수영 말고는 재조명할 만한 시인이 결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은 과도한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과도함이다. 어느 시인이나 작가에게서 새로운 문학적, 지적 자양분을 발견하고 섭취하여 오늘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문학 연구의 핵심적인 작업이므로, 굳이 문제를 삼고 싶다면 다른 시인에 대한 의미 있는 성과물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문학 연구자들을 질타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끝내 우려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김수영에 집중된 문학 연구자들의 관심이 결과적으로 김수영의 문학적 성취를 아카데미의 테두리 속에서 물신화하는 데까지 이를지도 모른다는 느낌 때문이다.
[살아있는 김수영]은 1990년대 후반 이후의 김수영 연구 논문들을 모은 것인데, 일단 이 책에 수록된 글 열 다섯 편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고르다. 필자들도 40대 현장비평가, 소장연구자, 시인, 한국문학에 대해 종종 글을 써 온 외국문학 연구자 등 평단 및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로 선별되었다. 김수영의 시, 시론과 산문, 문학사적 의의, 영향관계 등 네 가지 주제 아래 관련 논문들을 모은 점도 무난하고, 특히 김수영의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번역의 문제에 대해 두 편의 글을 실은 것은 이 선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강조했기 때문인지 파격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글이 없다는 점(좀더 과감한 읽기를 보여주는 선집으로 김승희가 엮어 프레스21에서 2000년에 발간한 [김수영 다시 읽기]가 있다), 수록글 가운데 삼분의 일 이상이 기존에 발표된 글들을 재수록하거나 개정한 것이라는 점, 치명적인 오타가 몇 개 발견된다는 점, 올초에 발간되었음에도 관련서지목록에 2004년 자료들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2003년에 민음사에서 나온 개정 [김수영 전집]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다는 점(이 책의 논문들은 모두 1981년판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2003년판본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서는 직접 보고 판단하시라) 등을 제외하면, [살아있는 김수영]은 내용상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선집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다시 말해 김수영 연구서지가 넘치고 또 넘치는 상황에서 왜 또 한 권을 추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엮은이의 한 사람인 김명인이 작성한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김수영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연구자들이나 평론가들 상호간의 간주관적 소통이 특히 희박한 것은 많은 연구자들이나 평론가들이 김수영을 이렇듯 개별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을 문제삼는 글들은 대개 연구자나 평론가 자신의 관점이 두드러지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나 연구성과를 폭넓게 받아들인다거나 그것을 토대로 축조해나간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말하자면 모두들 제가끔 김수영과 씨름하며 제가끔 김수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 김수영의 전기적 사실, 사상적 근거, 현실인식, 시의식, 시창작방법 등에 관하여 이제는 좀더 협동적이고 축조적인 방식의 공동연구가 이루어질 시점에 이르지 않았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본격적인 김수영학(學)이 시작될 필요가 있지는 않은가. 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문학사적 사실이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김수영이 제출한 '한국에서의 근대적 시 정신의 정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학사적이면서 정신사적인 과제를 제대로 이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책머리에> 5면)
연구자나 평론가 자신의 관점이 두드러진다는 사실 자체가 왜 문제가 되는가? 국문과 대학원생들이 하듯 하나하나 연구사 검토 과정을 밝혀주고 자신의 연구를 이러한 사적 맥락과 관련시켜야 비로소 참다운 연구가 된다는 말인가? 관련 연구자들 사이의 상호 소통은 나름대로 중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연구자의 개성이 도드라지는 개별적인 김수영 연구를 '김수영이라는 감옥'으로 비유한다면, 김수영에 관한 국문학계, 또는 평단 외부의 논의는 아예 평가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이 같은 입장에 선다면, 김상환의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민음사, 2000)과 같은 국문학계 바깥의 작업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실제로 김명인은 자신의 다른 글에서 이 책에 대한 비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사실 소통이 부족한 것은 인문학 전반에 걸친 현상이며, 이는 제도적인 부분을 비롯한 학계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이에 눈감은 채 개별자적 연구를 문제 삼으며 '협동적이고 축조적인 방식의 공동 연구'라는 미명 아래 김수영학을 세우려는 시도는 김수영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독점하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음을 김명인은 명심하기 바란다. '학'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정설을 마련한다는 것인데, 전기적 사실 이외의 사항들에 대해서 통일된 무언가를 세우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오히려 김수영의 정전화에 따른 신비화가 지속되고 이에 대한 비판을 거세하는 분위기가 도래하지는 않을까? 황현산, 남진우 등을 제외하면 이 책에 글을 수록한 필자들이 대부분 <창작과비평> 및 <실천문학>과 가까운 위치에 있음을 고려할 때, 김명인 등이 상정하는 김수영학이란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한 해석을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히자면, 내 정치적, 문학적 감각은 <창작과비평>이나 <실천문학>에 더 가깝다, <문학과사회>나 <문학동네>, <세계의문학> 등보다는).
김수영이 제출하였다는 '한국에서의 근대적 시 정신의 정립'은 얼마든지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자면 김수영만이 점유하는 작업인 것도 아니다. 김수영에 대한 아카데미적 해석은 알아서 지속하라. 대신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김수영의 매력에서 발산되는, "미대륙의 석유가 고갈되는 날"까지 계속될 무한한 해석의 증식을 막지 말라. 학자들이 무어라 말하든, 김수영은 무수한 이름 없는 독자들 속에서 맘껏 뛰놀면서 살아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학자들은 다른 시인들에게도 좀 눈길을 줘라. 그래야 한국의 시문학사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덜 가난해 보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