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저항 - 일제말 사회와 문학
김재용 지음 / 소명출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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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이란 말만 들으면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누군가 면전에서 "일제 때 친일 안 한 사람이 어딨냐? 조선어로 글도 못 쓰는 상황에서 걔네는 뭐 하고 싶어 했겠냐?"라고 반문하며 염장지르는 통에 가슴을 쳐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 책이 최종적인 해답은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문학에 관한 한 이 책은 그 어떤 논문이나 저작보다도 친일 행위에 대한 효과적이고 쓸모 있는, 한 마디로 '빼도박도 못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근대문학의 저항성에 대해 연구해 온 저자는 이 책 [협력과 저항]에서 친일문학이 폭압적인 일제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데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산물이라는, 그렇기 때문에 일제 말기에 친일 행위를 하지 않은 작가가 없다는 기존의 편견에 맞서 친일문학을 비판할 수 있는 다양한 논거들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그 근거의 핵심은 친일문학이 단단한 내적 논리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자발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 있다. 1937년 일본에 중국 본토를 침략하고 이듬해 '동양의 마드리드'라고 불리던 무한을 함락하였을 때 이광수를 비롯한 조선의 여러 작가들은 일본의 군사력에 압도되었고, 급기야는 조선의 독립에 관한 어떠한 희망도 버리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조선이 나아갈 길은 피와 살을 모두 일본의 것으로 바꾸어 모든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내선일체'를 추구하는 방향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1940년에 나치가 파리를 함락하게 되자 또 많은 작가들은 서구가 추구해 온 근대 이념, 즉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파탄에 도달했다고 보고, 아시아는 일본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유럽중심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과 질서를 '대동아공영권'의 기치 아래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미국 및 영국과의 전쟁에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운명적인 소임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고와 행동들이 철저하게 자발적이었고, 또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친일 협력을 하였던 이들보다 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 엄연한 문학사적 현실"(4면)로 남았을 리 없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항문인으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이육사와 윤동주 외에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작가들을 기억해야 한다. 동양의 가치란 것에 대해 전면적으로 검토하면서도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이 동양을 물신화하는 것을 비판하며 결국 조선어 글쓰기가 금지되자 절필을 택하고 해방 전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였던 김기림,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작품 속에서 우회적으로 식민주의를 비판했던 한설야, 그리고 일본어 작품 활동만으로도 성에 안 차 작가들로 하여금 입대를 종용하도록 강요하는 식민 당국을 피해 결국 조선의용군의 대일항전이 펼쳐지는 중국 연안으로 망명하였던 김사량 등이 저자가 논하는 대표적인 저항작가들이다.

그러나 이상의 작가들을 온당히 평가하고 이들의 작품을 명백한 친일문학들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우리도 친일을 바라보는 기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일본어로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친일문학이라는 멍에를 씌우지 말아야 한다. 식민지배를 찬양하고 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이라면 조선어로 글을 쓰는 것도 부분적으로 허용되었으며, 반대로 일본어로 썼을지언정 작가의 의지에 따라 교묘하게 일제의 폭압성과 비합리성을 비판하는 것도 가능했음을 당시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엄연히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조선문인보국회따위의 어용 문인단체에 가입되었다는 사실만 놓고 친일 여부를 판단해도 안 된다. 정지용처럼 일회적으로 친일적 논조의 작품을 남겼을 경우, 이는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김사량처럼 학도병 위문단의 이름으로 중국에 건너간 뒤 이를 이용하여 망명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창씨개명을 이유로 삼는 것도 불충분한 혐의 가운데 하나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조차 히라누마(平沼)라는 성으로 창씨개명을 했는데, 그의 대표시 <참회록>이 이와 관련된 고뇌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면, 과연 윤동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결국 친일 여부를 가리는 데 중요한 것은 어느 단편적인 사실 하나만을 확대하여 전면적인 판단의 잣대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작가의 작품과 삶 전체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시도하는 바는 위의 세 가지 잣대(일본어 글쓰기, 종군단체 가입, 창씨개명)로 친일의 혐의를 드리우는 단순하고 일의적인 민족주의적 관점과, 식민주의에 저항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내셔널리즘을 동반하므로 식민주의 이후에 다시금 억압을 낳게 된다고 보는 이른바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한꺼번에 극복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잣대를 비판하면서도 민족주의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일제파시즘에 저항하였던 작가들이 단지 잃었던 국민국가를 되찾는 것만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나 국제주의 같은 민족주의 이외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지니며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주의에 선 ...... 작가들은 저항을 하였지만 문학적 저항 전체를 고려할 때 극히 소수였다. 오히려 끝까지 저항을 하였던 문학인들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자이거나 혹은 세계주의자였던 것이다."(186쪽) 이 같은 의미에서 이 책은 민족주의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나머지, 식민주의의 재검토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국내의 몇몇 이론적 흐름들, 아울러 식민주의가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판단하고 식민주의 이후의 제반 문제들을 다루는 탈식민주의 이론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모성의 강조가 철저하게 일본의 전시체제에의 협력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는 최정희론은 페미니즘과 식민주의의 관련성을 살피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이 땅의 근대화에 실질적으로 공헌한 일본의 식민 통치를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크게 잘못되었냐고 항변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이 책이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근대 자체를 물신화시키면서 그것이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해 눈을 감고자 하는 ...... 식민주의와 공모하"(43쪽)는 행위와 맞닿아 있음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바꾸어 말하면 공부 제대로 안 한 무지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학적 인식의 변모가 그대로 친일의 내적 논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서정주론은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라는 책에 실린 김진석 교수의 글과 더불어 서정주의 친일 행각을 비판한 글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곧 서정주의 옹호가 음험한 이데올로기 또는 '무식'에 기인함을 까발리는)  글이다. 물론 이 책은 문학이라는 섬세한 지적 산물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성급한 일반화와 가설의 도식적 적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에둘러 일제를 비판하고자 했던 한설야를 언급할 때 저자가 명명한 '우회적 글쓰기'라는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에의 협력과 저항의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일이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의 평가와 비판이 신념에 찬 단호한 어조로 줄곧 표현되고 있고 또 비슷한 내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아마 여러 편의 논문을 한데 모은 듯하다)은 이 책의 문제의식이 그만큼 다급하고 절실하며 그만큼 뒤이은 생산적인 토론과 비판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하자. 대신 별 하나를 깎는다. 그러나 저자의 목소리가 거칠다고 하여 책까지 후다닥 졸속으로 만드는 것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너무나도 명백한 오타와 뜬금없는 비문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편집자의 불성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편집자의 불철저가 가뜩이나 도발적이고 아슬아슬한, 그러나 소중한 저자의 문제의식을 희석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저자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출판사가 괘씸해서라도 별을 하나 더 깎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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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7-04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두 보관함에 넣어놨는데 언제 읽게될지... 사놓고도 안읽는 책이 넘 많거든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사량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언제 읽어도 좋은 글들입니다.

비로그인 2005-07-04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이광수의 무정을 읽고 참 좋아했었는데. 친일파라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씁쓸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서정주의 신부라는 시도 아주 좋아했었는데.. -_-;
'빼도박도 못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하니.. 한번 읽어보고 싶긴하네요.



로드무비 2005-07-04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사량님의 김사량 사랑이 이 글에서도 느껴지는군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