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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 ㅣ 청소년을 위한 인문 시리즈 1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안성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윤리학을 공부하긴 해야겠는데 무턱대고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이나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은 이 책부터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은 윤리학의 정의와 기본 개념, 역사 등을 다루지는 않는다. 심지어 윤리학이라는 용어 자체도 책 안에서 그리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양심, 자유와 책임, 나와 타자, 개인과 공동체, 진정한 행복의 의미 등에 관해 편안하고 섬세하게, 무엇보다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머와 익살을 동반하며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들려줄 뿐이다. (이 책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이상의 키워드들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윤리학의 핵심 화두들이라는 것만 기억해 두면 되겠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왜 사냐?"라는 덧없어 보이는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는 머리 굳고 웃음을 잃은 어른들에게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에 따르면 윤리란 결국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삶을 살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자신이 원하는 삶, 멋진 삶, 기쁨과 행복한 삶... 등등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이성적 시도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타자와 공동체의 문제 역시 멋진 삶을 원하는 자신의 윤리로부터 나온다. 이를 모른 체하고 마냥 불의와 폭력을 타도해야 하고 타락을 막아야 한다는 식의 '좋은 소리'만(우리가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태도라고 말하는)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그들이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세속에 대한 질타나 협박, 으름장들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삶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것을 배아파하는 데서 비롯된 고약한 언사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짐짓 고상하고 점잖은 체 하지만 실은 위선적인 어른들, 곧 '꼰대들'이야말로 이 책의 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가장 윤리적인 태도임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성경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아우렐리우스, 셰익스피어, 스피노자, 루소, 보르헤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에 이르는 동서고금의 텍스트들을 수시로 넘나드는데, 이들을 죽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알차다. '읽어두면 좋은 글들'이라는 코너를 각 장의 끝에다 마련하고 관련 텍스트들을 일부 발췌하여 수록하고 있으니, 윤리학 교본으로서도 톡톡히 값어치를 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칸트와 스피노자, 아렌트의 논의를 주로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딱히 걸리는 부분 없이 부드럽고 매끈하게 읽힌다는 점도 이 책이 갖는 커다란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종이질도 좋고 가볍기까지 하니 어여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