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 하혜경, 그게 바로 내 룸메의 이름이다. 522호에서 3주를 함께했던 사랑하는 내 친구. 그 친구가 전학을 갔다. 전학.

  그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2주 반 정도 전, 국제중을 나온 다인이에게서 "그 애 전학갈지도 몰라,"라는 말을 들은 것을 시작으로, 1주일 정도 지났을 때는 본인의 입에서 "전학갈까 고민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 때 나의 "그래도 안 갈 거지? 너 가면 어떡해, 나 독방 쓰는 거야? 싫어..."란 소리에 웃으며 "말이 그렇단 거지 누가 간댔냐? 나 안 간다."라고 대답했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같은 입에서 "전학 갈 거야"라는 말이 나왔다. 이번에는 눈에서 눈물도 함께였다. 거짓말이 아니구나, 그냥 고민이 아니라, 정말로 가는 거구나. 그렇게 알게 된 게 일주일 전이었던 것이다.

  월요일 야자시간, 자습실 옆 자리 책상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내 옆에 쪽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혜경이의 편지가 있었다. 편지를 읽고, 나도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혜경" 두 자를 쓰자, 마치 3년같았던 3주간의 일들이 생각났다. 코가 찌르르 아프기 시작하더니, 서너줄 써 내려가자 공책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겨우 편지를 다 쓰고, 그걸 또 혜경이 책상 위로 슬쩍 밀어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세수를 하고 코를 닦고 있는데,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났다. 같은 반 친구 정선이가 나왔다. 그리곤 아까도 누가 울면서 왔다 갔다며 울지 말라며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울지 말라고 하면 더 눈물이 나는 법이다.
  "아니, 안 울었는데, 옆에서 혜경이가 우니까 나도 같이..." 
  끝맺지 못한 말은 다시 눈물에 묻혀버렸다.

  그날 밤부터 우리는 송별회 계획을 짰다. 며칠 안 남았으니 같이 잔다고 혜경이 침대에 기어 올라가 있던 나는, 밤중에 혜경이를 빼놓고 하는 모임에 참가하느라 애를 먹었다.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니, 뭘 버리고 오니, 말을 지어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재밌었다. 그렇게 일어나서 친구들이 모인 방에 달려가 이야기를 듣고, 또 생각해보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송별회 계획은 짜여갔다.

  수요일. 아침에 한 명 당 3000원씩 돈을 모아서, 3교시가 끝나고 각자 맡은 곳에 음식을 주문했다. 케익, 피자 두 판, 치킨 두 마리, 15000원어치의 과자와 음료수. 4교시를 마치자 민지가 혜경이를 데리고 나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해든실(도서실)에 갔다가 화장실에 갔다가 난리도 아니었단다. 그 동안 우리도 스릴넘치는 모험을 감행했다. 체육관 앞에 배달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선생님들이 너무 많았다. 선생님들이 모두 점심식사를 하러 가시기까지, 치킨 배달원 아저씨는 3번 정도 그 앞을 돌아야 할 정도였다. 나는 슈퍼에서 배달온 과자를 코트로 덮고 뛰었다. 교실에 가자, 책상 여러개를 붙이고 신문지를 덮어 만든 식탁이 그럴싸하게 나와 있고, 그 위에는 이미 케익까지 올려져 있었다. 과자를 올리고, 컵을 놓고, 치킨과 피자도 놓고, 민지에게 돌아오라는 연락을 한 다음 부를 노래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혜경이가 들어오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조금만 부르다 말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혜경이는 울기 시작했다. 나라도 울었을 거다, 아주 많이.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며, 1번부터 혜경이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나는 20번째였다. "너만큼 귀여운 룸메는 다신 못 만날 거다. 지금 가도 넌 우리반이니까 나중에 1-3반 동창회 할 때 꼭 와라." 이런 말을 정신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우리는 첫 단체 사진을 찍었다.
  놀라운 속도로 뒷정리를 하고, 우리는 완전범죄에 흡족해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반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아, 너무 완벽하지 않은가. (이런 일은 들키면 안 된다. 교칙 위반이라 벌점이다.)

  그날 야자시간, A4용지 1/4크기의 종이에 증명사진(학교에서 찍었다)을 붙이고 혜경이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반 전체가 하는 일이었다. 앨범에 넣어서 선물로 주려고 말이다. 바로 옆자리인 나는 안 들키게 쓴다고 진땀뺐다.

  밤에는 혜경이 짐 싸는 걸 도와주고, 같이 샤워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샤워였다. (혜경이와 함께 샤워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기숙사는 언제나 샤워 전쟁이다.) 그리고나서는 국제중 친구들이 그 애를 불러서, 나는 방에 혼자 남았다. 혜경이의 물건이 한쪽에, 나 떠나오, 하고 몰려있는 모습이 슬퍼서, 청소를 시작했다. 쓸고 닦고, 가기 전에 깨끗한 방에서 잘 수 있도록 청소를 했다. 청소를 마치고 곧 혜경이가 들어와서, 우리는 같이 침대에 누웠다. 같이 잘 때는 늘 2층이었는데, 이 때는 혜경이의 이불을 다 싸버려서 내 침대인 1층에서 잤다.

  목요일 아침, 혜경이 어머니가 오셔서 짐을 가져가셨다. 나도 같이 들고 내려갔다. 혜경이는 목요일에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침을 늦게 받게 되어서, 먹지 말까 하다가 한 식판에 두명 걸 받아서 같이 먹기로 했다. 이것도 처음 해보는 거였다. 한 식판에 있는 밥을 먹으면서 "야, 이런 것도 해보고 간다"며 웃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폰으로 전화를 받은 혜경이는 "금요일에 가게 됐다"는 말을 했다. 덕분에 혜경이에게 줄 선물이 늘어났다. 반장이 환경미화 재료를 사러 나가서 인형을 사 온 것이다. 착한 너구리(반장 별명)같으니라구.

  목요일 밤에 혜경이는 내 옷을 빌려입고, 내 샴푸와 린스, 수건같은 모든 것을 빌려썼다. 그것도 꽤 재밌었다. 내 침대에서 자려고 했는데, 옆방에 놀러갔다가 거기서 아주 자 버렸다.

  금요일. 0교시와 1교시 수업을 하고 나서, 혜경이는 갑자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혜경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지금 오래."라고 말했다. 가방을 다 챙기고, 우리의 포옹 세례를 받고 나서 혜경이는 미니 핫브레이크를 모두에게 한 봉지씩 주었다. 우리도 가만있지 않았다. 앨범과 인형을 안겨주자, 혜경이는 송별회때만큼 놀랐다. 나는 그 때 혜경이를 꼭 안아주고, 잘 가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것이 다였다. 눈물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2교시 화학시간이 되자 일이 터졌다. 뒤에서는 은정이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혜경이 자리를 돌아봐도 혜경이는 보이지 않자 내 눈에도 자연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소리죽여 울다가, 수습이 안 돼서 공책에 '휴지 좀'이라고 써서 뒤의 친구에게 보여줬다. 곧 내 책상에는 휴지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옆에서, 뒤에서 모두가 등을 어루만지며 달래주었다.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해보였지만, 수업을 조금 듣다가 또 울고, 듣다가 또 울고를 계속했다. 혜경이의 짝인 희권이는 때때로 나를 웃음짓게 했지만, 결국은 역효과를 불렀다. 웃다가, '혜경이가 옆에 있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 또 다시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5일제 덕분에 금요일 저녁에 집에 왔다.

  혜경이에게서 문자도 오고, 전화도 왔다. 전화를 받으면서 "울지 마라"는 말을 많이 했다. 왠지 혜경이가 울고 있을 것 같아서. 혜경이는 지금은 안 운다면서, 이젠 눈물도 안 난다고 했다. 하지만 어제는 정말 많이 울었단다. 특히 우리가 준 그 앨범-편지가 들어있는-을 보면서 계속 울었다고 했다.

  이렇게 나의 룸메는 국제고의 2호 전학생이 되었다. 내 룸메이자, 내 댄스 파트너이고, 우리 반의 친구이고, 귀엽고 예뻤던 사랑스러운 혜경이. 잘 가. 절대 울지 말고,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지내야 해! 그리고 종종 우리에게 와라. 우리반의 21번은, 그리고 내 룸메는 언제나 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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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5-03-27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런 송별회도 규칙위반이라고요...굉장히 엄격하군요....
그럼, 이제부터 명란님은 혼자 방쓰시는거예요?
에고고, 우리 명란님, 그래도 잘 버티시길... 힘들면 언제나 여기에 푸념하시면서요..
일요일, 잘 쉬고, 들어가세요...^^ 아자!!

明卵 2005-03-2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별회가 위반이라는 사항은 없지만 음식물 반입은 교칙 위반이니까, 들켜선 안 되죠.^^ (이 학교는 매점도 없어요.) 송별회라고 하면 벌점을 안 주실지도 모르지만, 그건 일단 걸려봐야 아는 거고.. 저희는 안 걸렸기 때문에 모릅니다ㅎㅎ
혼자 방 쓰게 되는 건 맞는데, 혜경이가 그러대요. 혼자 자지 말고 다른 방 가서 자라고. 원래 그것도 벌점인데 안 들키면 괜찮아요^^ 혹시나 걸리면 자기한테 전화하래요. 사감쌤이랑 친하다면서ㅎㅎ

어룸 2005-03-2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상 차리는 동안 혜경양을 데리고 학교를 뺑이돌아야했던 민지양에게 고생하셨다고 전해주셔요^^
저는 과자먹을때마다 매점도 없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계실 명란님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섭취하겠습니다^^ 다음 주말에 또 뵈어요~!!

明卵 2005-03-2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고생했을 거예요ㅎㅎ 계획짜러 간다고 밤중에 침대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던 저도 그 고생을 압니다;ㅂ; (훗.. 그래도 혜경이가 전혀 눈치를 못챘다고 해서 다 보상받았습니다^^)
다음 주말에 뵈어요~ 아마 글 하나 정도 더 남기고 갈 것 같아요. (지금은 숙제중..ㅜㅜ)

부리 2005-03-2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송별회, 이별은 아쉽지만 그 송별회 때문에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될 겁니다....

明卵 2005-03-2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