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 마치고 처음 한 일은, 시원하게 샤워를 한 것이었다. 가뿐한 방학맞이를 위해 다시 가지고 갈 필요 없는 교과서들을 집으로 옮기느라 가방은 제법 무거웠고(물론 교과서 뿐만 아니라 소설책, 각종 만화책과 비디오의 무게도 있었겠지만), 찐득하게 물기 섞인 기분 나쁜 바람에다, 학교에서 집까지 계속되는 차도의 후덥지근한 기운과 그 위의 차들이 내뿜는 숨막히는 매연까지 더해져서 그 때 내 불쾌지수는 절정에 달해있었다.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할 일은 축축한 교복을 벗어던지고 샤워기 물 아래로 뛰어드는 것 뿐이었다.

  한참동안 물을 맞고 있었다. 아니, 그냥 맞고만 있었던 건 아니고, 떨어지는 물 아래서 온 몸을 손바닥으로 박박 문질러 땀을 흘린 느낌을 지우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닐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역시 돈을 모아야지, 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고 손에 샴푸를 짰다. 푸쿵푸쿵. 샴푸가 다 떨어져가는 모양이었다. 언제 봐도 특이한, 하얀 색도 아닌 것이 은색도 아닌, 약간 이상한 빛으로 번들거리는 샴푸를 손 위에서 잠시 쳐다보다가, 곧 머리에 묻히기 시작했다.

  폽폽... 오므렸다 폈다하는 손동작에 거품이 머리를 가득 덮을 때쯤, 손에 뭔가 이상한 게 걸렸다. 동그르하니 한 1cm쯤으로 느껴지는 것이 걸렸다. 얼라리, 머리가 엉킨 건가? 수욱- 잡아당겼다. 그런데 엉킨 머리카락이 이렇게 쉽게 떨어져 나올 리 없는데. 잠깐. 엉킨 거면 풀려야지 '떨어져 나와'?

  "끄아아아아아악~~~~!!!"

  벌레였다! 머리카락인 줄 알았을 때는 별 생각없었는데, 눈으로 벌레임을 확인하고 나니 손가락에 꼼질하는 놈의 다리가 느껴졌다! 안경을 안 쓰고 있어서 형체를 알아보기 위해 얼굴 가까이에 댄 게 나의 비명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 벌레는 '나 바퀴벌레랑 무지 닮았죠?'하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바퀴벌레 동생, 혹은 친척, 적어도 친구는 됐을 것이다. 온 몸이 비틀렸다. 손을 꺾어내고 싶은 강한 충동에 시달리면서, 대신 벌레만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설마, 저게 고시락 고시락 기어가는 건 아니겠지? 얼른 안경을 집어쓰고 타일 위에 움찔거리는 벌레를 뚫어져라 봤다. 처음엔 살짝 움직이려는 것 같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벌레는 바닥에 뒤집어진 채로 꼼짝도 않았다. 죽은 것이다.

  여전히 손가락을 맴도는 그 불쾌한 벌레의 느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 벌레를 완전히 손가락으로 짓눌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을 때렸다. 하지만 곧 벌레를 손에 대는 감촉과 이미 죽은 걸 가지고 끝장을 봐야겠냐는 생각이 들어 관두고, 나의 잔인함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제정신일 때는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인다는 걸 생각하면 차라리 인간의 잔인함인가. 아니면 모기도 제대로 못 잡는 것은 그저 나를 포장한 것일 뿐이고, 나는 원래 잔인한 사람인가. 갑자기 우울해졌다. 추적추적한 날씨때문에 원래 우울했는데, 더 우울해졌다.

  벌레, 벌레. 지금도 그 벌레는 내가 물로 쓸어보낸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의문이 생기는데, 그 벌레는 왜 죽었을까. 샴푸독에?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룸 2004-07-08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에에에엑~~ >ㅁ< '머릿속의 벌레'라놓고 너무 상쾌하게 시작하시길래 그저 은유적인 표현인줄 알았건만~~~ 우아악~~ >~< 결국 천장을 기어가다가 발을 헛디뎠던 그 바퀴는 그렇게 어이없고 편하게(?) 세상을 뜨고 만거군요...으음...왠지 서글픔이...^^;;;
예전에 떡볶이 먹다가 파리 씹었던 생각나네요...=_= '아작' 씹고는 '허걱! 틀림없어! 이건 벌레야! 그냥 뱉을거야 안볼거야 안볼거야'그러고는 결국 눈으로 확인후 버렸다는...ㅠ.ㅠ 그래도 그 떡볶이를 다 먹고만 강철비위^^;;;(배고팠단 말예요, 집에 먹을것도 없고...ㅠ.ㅠ) 요즘도 가끔 떡볶이 먹을때 생각나요...^^;;;;;
근데 정말 걘 샴푸독땜에 죽었을까요...? --a

明卵 2004-07-0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우.................... 파...파...파... (꼴깍)

明卵 2004-07-08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그럼 정신을 차리고...
너무 상쾌했나요? 하하~;; 정말 왜 죽었는지는 불가사의예요. 제가 그렇게 씨게-.- 잡아 뗀 것도 아니고, 분명히 꼼질거렸는데 좀 있으니 잠잠하더라구요. 바닥에 너무 강하게 부딪혔나? 설마. 만약 샴푸독 때문이라면... 샴푸란 정말 무서운 거군요. 살충제를 머리에 쓰는 기분ㅜㅜ

어룸 2004-07-08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늘 명란님을 너무 겁주는구만요^^a ㅎㅎ죄송혀라...
그 바퀴는 원래 어디가 아팠던 애 아닐까요? 아니면 기절한 척 한걸지도!!! (하지만 역시 샴푸살충설도 무시는 못하겠다는...ㅠ.ㅠ)

明卵 2004-07-0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샴푸살충설'.. ㅜㅜ....슬퍼야 하는데... 웃음이 나는 이유는... ㅋㅋㅋ

starrysky 2004-07-08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악, 으아아악!!! ㅠ_ㅠ
간만에 명란님 서재에 놀러와서 비명만 잔뜩 지르고 있습니다. 몰라요 몰라. 저도 '머릿속의 벌레'가 은유적 표현인 줄 알았다고요. 요새 머릿속이 복잡하신가 보다..하구.. 아아, 이런 생생한 삶의 현장(?)이 가득가득 넘치게 들어 있을 줄이야. toofool님은 거기에 한술 두술 열술 더 뜨시네요. 파리 떡볶이!!!!!! ㅠ_ㅠ 으아아아악! (비명 한번 더 질러주고) 앞으로 머리 감을 때마다, 떡볶이 먹을 때마다 님들을 기억하겠사와요. 으으으.. (그래도 제 기억 속에 남으니 기쁘시죠? 호호. 꼭 마지막에는 이런 안 해도 될 쉰소리를..;;)

明卵 2004-07-08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그 쉰소리가 좋아요^^
지금 제목을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머리를 감다 벌레를 발견하다"라든가; 흠~ 하지만 그러면 신비감이 떨어지니까 안되겠어요! 사실 머릿속이 복잡한 이야기도 여기 연계해서 넣으려고 했는데, 더 이상 쓰기가 귀찮아져서 갑자기 잘라먹은 거랍니다;
근데, 아무래도 파리 떡볶이가 더 쇼킹하죠? (제발~;)

어룸 2004-07-08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후에 다 먹었단 말은 쓰지 말걸~~TㅁT 뻥이었어요~! 다먹지 못했어요~! 그후로도 떡볶이는 못먹고 있어요~~~~!! >.< (믿어주실라나...?)

明卵 2004-07-0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이미 기차는 떠나갔어요~ 괜찮아요, 저 역시 그 후로 머리는 다 감았답니다 ㅎㅎ

starrysky 2004-07-0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샴푸 푹푹 짜서 머리 벅벅 감을 거고, 어두컴컴한 포장마차에서 시뻘겋고 걸쭉한 떡볶이 국물에 뭐가 들었는지 생각 않고 먹을 겁니다.
그리고 toofool님을 요맨큼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저런 뒷북 변명은 쳐다도 안 볼 거라 확신합니다. 오호호홋~

어룸 2004-07-08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머멋~ 아니라는데두욧!!! >.< 명란님을 웃겨드리고 싶은데 소재가 딸려서 그냥 해본소리라구요~~~TㅁT

明卵 2004-07-08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풀님, 걱정마셔요. 저는 어떤 말씀을 하셔도 님을 이해하니까요~ㅎㅎ

물만두 2004-07-0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주머니 속에 노린재가 하는 냄새나는 벌레가 들어있었답니다. 모르고 손 넣었다가 그 벌레 죽이고 냄새땜에 저도 죽다 살아났습니다. 으... 벌레 넘 싫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싫은 건 등교길에 비둘기 똥에 맞았을때죠...

가을산 2004-07-08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옛생각나네.... 중학교때 등교길에 등나무로 아치를 만든 길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무척 운치있고 아름다운 길인데, 이게 해마다 2주일간은 송충이숲이 되버렸었어요.

바닥에는 송충이가 발 디딜 틈 없이 기어다니지, 가끔 이파리에서 머리나 어깨로 톡톡 떨어지는 털이 숭숭한놈들이라니...

에에, 그리고 그 벌레가 왜 죽었을까를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았는데,
샴푸의 '독'은 아니고, 샴푸나 비누의 특성인 '표면장력을 약화시키는' 성질 때문 아닐까 생각되네요... 벌레가 그냥 물에 빠지면, 벌레의 작은 숨구멍에 물이 침투하지 못해서 오래 버티는데, 비눗물이나 샴푸가 섞인 물은 작은 숨구멍에도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익사한 것이 아닐지...
아니면 명란님이 너무 세게 던져서 기절한 것인지.... ^^

starrysky 2004-07-0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의 길고 자세한 '과학적' 설명 덕분에 무지한 상태로 널부러져 있던 스타리의 뇌세포 오백 마리가 벌떡 잠에서 깨어나 광명을 보았나이다. 할렐루아~ 흐흑, 알라딘은 어쩜 이리도 지식과 지혜의 보물창고인지.. ㅠ_ㅠ

明卵 2004-07-08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노린재...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는데 징, 징그럽게 생겼군요ㅜㅜ 저는 냄새나는 노린재도 아니고, 더군다나, 등교길에 비둘기 똥이요?! (아니 그런 난감한 경우가..)그것도 아니니 너무 충격받지 말고 머리 잘 감고 살아야겠네요.
가을산님/ 헉! 이쪽은 송충이;; 그러고보니 송충이를 잊고 있었는데 저희 초등학교엔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보도블럭을 따라 죽- 서 있었죠. (지금은 플라타너스 나무가 안 좋다던가 뭐라던가 해서 다른 나무로 바뀌었지만요.) 그 곳 역시 송충이 잘 떨어지기로 유명했는데... 저는 역시 벌레는 질색팔색을 하는 터라 꼭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녔어요^^; 그리고 벌레의 죽음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에 "역시 가을산님이셔!"하고 탄성을 내질러봅니다. 멋지세요ㅜㅜ
스타리님/ 정말 그렇죠ㅠㅠ 저는 샴푸나 비누가 표면장력을 약화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오늘도 좋은 지식 머릿속에 얻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