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발~* > [퍼온글] 여러분의 도움을 청합니다

알라디너 중 soul kitchen이라는, 주로 쏠키로 불리는 분이 계십니다. 깊은 내공으로 인해 매니아 층을 확보하고 계신 분이지요(주소는.... http://my.aladin.co.kr/strangedays) 


그런데, 쏠키님의 큰언니가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백혈병이래요.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해도 암은 여전히 우리에게 공포스러운 질병이고, 암과 싸우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인들의 고통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 싸움에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병이 병이니만큼 수혈을 여러번 받아야 하는데, 헌혈증이 있으면 도움이 되나 봅니다. 그래서... 비발샘님께서 헌혈증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있거든요. 혹시 가지고 계신 헌혈증이 있으시면 비발쌤님 댁으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게도 몇장 있을텐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이번 기회에 헌혈 한번 더 하구요.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편번호 120 - 847,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 3동 277-43 풍림 아트빌 501호 최아람

참고로 최아람은 비발쌤님의 아드님이시랍니다.


혈액증서를 최다로 모은 분에게는 비발쌤께서 풀빛 그림동화책 [핀두스 시리즈]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복돌이님께서 브라질의 라틴 재즈 그룹 '템포 레이'의 [Instinto Tropical]앨범 두 장을 드린답니다. 저도 뭐 내놓을 게 없나 싶어서 보니까 적립금과 마일리지를 합쳐서 2만6천원 정도가 있네요. 이 금액만큼 책 보내드리겠습니다. 1등이 이 모든 걸 다 가지면 좀 그러니, 1등부터 원하는 걸 하나만 선택하시는 게 좋겠지요? 이런 게 없더라도 여러 분들이 잘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거니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쏠키님에게 큰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쏠키님 서재에서 퍼온 글을 소개합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쓰신 건데,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많이많이 도와 줍시다. 알라딘은 유난히 정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잖아요?


[제목: 큰언니 기다리기

작성자: 쏠키님


큰언니가 고1이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큰언니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올 시간이 되면 항상 아빠의 자전거를 몰고 나가 큰언니의 무거운 책가방을 받아 싣고 오곤 했다. 큰언니가 고3이었을 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도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11시에 학교에서 나오는 언니가 기다리지 않게 항상 먼저 가 교문 앞에 서 있다가 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같이 왔었다. 큰언니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어쩌다 밤늦게 도착하는 날이면 꼭 내가 역까지 마중을 나갔었다. 친구들과 노느라 기차를 놓쳤다고 하면 또 올 때까지, 또 다음 기차를 놓치면 또 올 때까지 그렇게 미련하게 새벽 서너 시가 될 때까지 언니를 기다렸다.


내가 고3때, 언니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 날짜에 맞춰 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아씨발, 나는 대학시험을 망치겠구나. 그리고 떨어졌다. 성적도 한참 남은 학교와 과였음에도 불구하고. 후기대를 칠 때는 마침 언니가 와 있었고, 붙었다. 등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니가 등록하랬다. 그래도 다녀 보라고.


아, 길게 쓸 기력이 없다. 나는 언제나 언니를 따라 다녔고, 언니의 세계를 동경했고, 언니를 좋아했고, 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고, 언니와 함께 하고 싶었다. 우석이와 수희도, 그 자체로도 예쁘지만 큰언니의 아이들이기에 아마도 더 좋아하고 이뻐하는지도 모르겠다. 큰언니는 내게 엄마 같고, 선생 같고, 친구 같고, 연인 같고, 언니이면서 또 어느 땐 어린 동생인 것만 같고..그래, 그렇고....그렇고..


그런 큰언니가 지금, 종합병원 무균병동에, 보호자도 없이 혼자 누워 있다. 간밤에,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있던 나는, 집에서 급히 부르는 전화를 받고, 그 길로 바로 형부, 언니와 함께 콜택시를 불러 타고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왔고, 밤을 새웠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석이 운동회에서 저렇게 환하게 웃던 언니는 핏기 하나 없는 노랗게 뜬 얼굴로 응급실에서 수혈을 받다가, 우리가 병원에 도착한 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1시에 무균병동으로 옮겨 갔다. 교대로 대기실 의자에서 행려처럼 새우잠을 자던 형부와 나는, 언니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챙겨들고, 두 개의 문이 가로막은 무균병동 너머로 언니의 얼굴을 보고 다시 5만 원을 부르는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수희가 총총 뛰어나와 엄마는? 하고 물었다. 미역국을 먹고 세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앉아 울었다. 형부가 아직 확실한 거 아니니까, 골수검사를 끝낸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진 아무 말도 마라고 해서 혼자 숨죽여 울었다.


"너랑 나랑은 전생에 부부였었나 보다. 전생에 내가 너한테 정말정말 잘 해서, 네가 그 은혜를 갚을려고 내 동생으로 태어난 거 아니겠나." 얼마 전부터 시난고난 앓던 언니를, 나 자신 환자이긴 하지만 뭐 좀 나일롱이고 어차피 백수도 된 터라 곁에서 좀 살펴줬더니 새삼스럽게 언니가 한 말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548453]

 

덧붙임: 엇, 복돌님이 제안하신 건데... 다만 집에 주로 있는 사람이라 제 주소로 한 거구요. 약소하지만 비룡소 프란츠 시리즈(12권)도 추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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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11-1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군요.

해콩 2004-11-15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그 아이가 생각나네요. 지난 학교 있을 때.. 그런 아이가 있었거든요. 잊고 있었는데.. 무균병동.. 저도 도움을 청해봐야겠어요. 주변에..

느티나무 2004-11-1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던 헌혈증이 어디로 갔는지 없네요. ^^;;
 

 - 정윤수(스포츠/문화평론가)

 - 월간 우리교육(11월호) 재인용, 2004년 10월 1일 오마이뉴스

   추석, 긴 연휴의 틈을 비워, 서점에 갔다. 가서 놀라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고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동서양의 이야기를 만화로 엮은 책 사이에 몰려 있는 것에 또 놀랐다. 그러나 내가 정작 놀란 것은 신간 소설 코너였다. <청소년을 위한 칼의 노래>,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것은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청소년들이 읽기 쉽도록 새로 고쳐 쓰고 그림과 각주를 단 '청소년본'이었다. 두 책을 구분하기 위하여 '원본'과 '청소년본'으로 구분하여 부르겠다.

   내 기억에 그 소설은 한 권으로 출간된 바 있다. 무슨 까닭으로 그 책은 두 권으로 나눠 팔렸고 최근에 청소년본까지 출간된 것이다. 그 과정의 어떤 유의미를 나는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왜 한 권을 두 권으로 나눠 출간하고 그다지 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소설을 '청소년본'으로 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잠깐, 나는 방금 <칼의 노래>가 '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고 했는데, 아마 반문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길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꽤나 어려운 소설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 것이다. 물론 그런 점은 있다. 짧게 끊어 치는 인파이터의 문장 사이에는 서늘하면서도 장중한 바람이 잉잉 불어대고 있으니 틀림없이 쉬운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본'을 낼 만큼 어려운가 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설령 어떤 소설이 대단히 난해하며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거의 주술에 가까운 귀기를 내뿜는다 해도 그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다'는 것은 소설에 대한 모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손창섭이나 박상륭의 소설이 아무리 난해하다 해서, 그것을 해체/재구성하여 청소년들을 위한 판본을 달리 출간하는 것은 볼펜을 꽉 움켜쥐고 새벽까지 글을 쓰다 지쳐 쓰러진 소설가의 뒷통수에 찬물을 끼얹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생, 뭘 그리 어렵게 사슈."

   예를 하나 들겠다. 박경리의 <토지>도 청소년본이 따로 있다. 마침 추석도 지냈으니 원본의 첫 페이지를 읽어보자. 
제1편의 제목은 '어둠의 발소리'. 1백 여년 전의 한가위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풍요로운 들판과 흥겨운 가락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첫머리는 음산하고 적막하다. 최참판 댁의 장려한 운명을 예고하는 듯한 심란한 단어들이 곳곳에서 배수진을 치면서 이 소설이 한가롭게 풍경 묘사로 끌려가는 것을 단단히 붙들어매고 있다.

   "이를테면 '최참판 댁 사랑은 무인지경처럼 적막하다. 햇빛은 맑게 뜰을 비쳐주는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12쪽), 혹은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려주기도 한다."(14쪽) 등의 황량한 서정이 <토지>의 서두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토지문학연구회'가 '엮은' '청소년본'(이룸출판사)에서 그 대목들은 과감한 생략에 '힘입어' 문장 사이의 온도가 사뭇 다르게 변하고 만다. "평사리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최 참판댁 뜰에도 햇살이 화사하게 비추었다. 다섯 살배기 계집아이 서희는 뜰 안을 팔랑팔랑 뛰어나뎠다. 혹시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한 봉순이가 서희 뒤를 쫓아다녔다. '넘어지믄 큰일난다 캤는데, 애기씨'"

   이건 전혀 다른 소설이다. 집필기간 26년이요 등장인물이 700여 명에 이르는, 말 그대로 '대하장편'이므로 청소년들이 읽기에 부담이 될 수는 있다. 그래서 원본의 1/6로 과감하게 줄여서 '청소년본'을 냈는지도 모른다. 원본의 압도적인 질감을 어느 정도는 되새기려고 고생은 한 듯하다.

   그러나 부질없는 고생이다. 우선 누군가 이 청소년본을 읽는다면 그는 '원본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아마 원고지 5000매 가량의 '청소년본'을 사는 순간부터 '언젠가는 21권짜리 원본 세트를 사서 읽어야지'하는 압박을 느낄 것이다. 청소년본만 읽고 만다면 그는 <토지>를 전혀 읽지 않은 셈이며 다만 조금 길게 요약한 줄거리를 읽은 것에 불과하다. 그가 만약 성실한 청소년이라면 지나치게 친절한 출판사 때문에 두 번 고생을 할 것이다.

   자, 이번에는 문제의 책 <청소년을 위한 칼의 노래>를 보자. 원본이 대하장편인가? 그렇지 않다. 원래 한 권으로 출간된 적도 있다. 수백 명의 인물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조선과 일본의 수군들이 수천 명이나 등장하지만 그것은 단지 '수천 명'일 뿐 주목할 만한 인물을 너댓이다. 윌리엄 포크너나 제임스 조이스처럼 끝없이 쉼표로 이어지는 복합문의 나열인가? 그렇지 않다. 제목처럼 칼날같이 끊어치는 단문이 대세다.

   그런데 왜 청소년본을 따로 출간하는가? 그 사색의 우물이 깊고 난해한가? 혹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문장의 표면에 착색되어 있지는 않다. 이를테면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1권 19쪽)와 같은 문장? 독자들은 저마다의 교양 수준과 인생 경험으로 전율을 느낄 만한 이 단호한 스타카토 문장 사이로 스며드는 것이다. 이제 막 몽정의 짜릿한 황당함을 느꼈을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칼의 노래> 청소년본은, <토지>가 그러하듯이, 삽화와 자막들이 자주 나온다. 나는 이것이 소설 읽기를 방해하는 저주받을 악이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삽화와 자막에 의하여 독자들은 문장 사이로 스며들지 못하고 어떤 상황을 '비주얼'로 직역해준 그림에 의존하여 줄거리를 잇기만 할 뿐이다. 문장 속의 깊은 우물로 들어가지 않고 삽화에 문자를 짜맞출 뿐이다. 이는 세상을 쉽게 설명하고 마는 비주얼의 마력에 대항하기 위해 악착같이 결기어린 문자에 매달린 소설가의 각오를 배반하는 악덕이다.

   청소년을 위한 '재집필' 부분도 많지 않다. 예컨대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원본, 17쪽)는 문장을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쳐 들었다.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묶인 사슬을 풀고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는 정도로 바꾸었다. 문장이 두 개로 나누고 '결박'과 '듯싶었다'가 다른 단어로 바뀐 것인데 그 변화가 '청소년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결박된 사슬'과 '묶인 사슬'의 차이는 무엇이며 '듯 싶었다'와 '것 같았다'의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원본의 내러티브를 청소년본이 과감하게 해체/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처음에 저자/출판사 측에서 '쓸 데 없는' 줄거리나 '지나치게' 사색적인 문장을 빼거나 고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 보니 원본의 순서를 대대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 많았다. A-B-C-D를 A-D-B-C 식으로 섞어놓은 것이다.

   엄밀히 말해 '청소년본'이 아니라 '개작'에 가까운 것인데 어떻게 부르든 간에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청소년본'이라고 하기에는 원본의 스산한 정서가 여전하며 줄거리 또한 축약되거나 '선명'해지기 보다는 원본의 패를 뒤섞은 것에 불과해 보인다. 저자 자신이 '청소년본'임을 밝혀두고 있으니 '개작'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처음 이 소설을 쓸 때 "19세 이상 사용가'를 염두하고 썼는지도 의문이다.

   출판사 측에서 홍보용으로 만든 청소년본의 띠지(책 표지에 씌워진 홍보용 전단)는, 출판사와 소설과 김훈 모두를 모욕하는 단어로 채워져 있는데 "논술과 수능 준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예비 텍스트"이란 말, 그리고 뒷표지에 적힌 "네티즌 선정 노벨 문학상 후보 차세대 우리작가 1위" 등의 수사는 지우개로 박박 지워야 할 만큼 천박하기 짝이 없다.

   물론 김훈은 중요한 작가다. 어떤 일로 문학평론하는 사람과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요즘 김훈 만한 작가가 있습니까"라는 그의 말, 지금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유보적이다. 아직 문학적인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았다. 무슨 문학상을 타고 대통령이 추천하고 많이 팔리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김훈답지 않은 어수선한 풍경이다.

   '수능 텍스트'요 '노벨문학상 1위 후보' 운운은 만년필을 꽉 쥐고 온 몸으로 원고지 칸을 밀어나가며 글을 쓴 김훈의 소도구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훈은 그를 사랑하고 또한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자들과는 슬며시 비껴서서 어디론가 사라질 때 가장 김훈답다.  

   독자들이여. 난해하면 난해한대로 읽고, 읽히는 대로 읽으면서 결국 몇 년에 걸쳐 읽고 또 읽는 것이 소설 아닌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를 읽어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사이로 독자가 산책하는 것이며 작가와 독자가 그 울창한 문장의 숲 속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 과정 아닌가. 

   '청소년을 위한...'이라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세상의 속됨이여, 이젠 '견고한 고독'에 사무쳐야할 소설가의 결기마저도 속류로 만들고야 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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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 2004-11-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맘 먹고 토지 전집을 사고 나서 얼마 안되어 청소년본이 나온 걸 보았습니다. 분량에 압도당한 딸애에게는 청소년본이 어울리는 게 아닌가 고민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싶네요. 문구점에서 볼 수 있는 만화로 보는 상도, 홍길동전 등 류는 아니겠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치루어야 하는 목적있는 글 읽기의 서글픈 결과물이군요.

느티나무 2004-11-1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실에 있어 보면 청소년 토지를 찾는 녀석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못마땅하긴 했는데, 왜 그러는지 제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만 같을 뿐, 다른 책이라는 것을요!
 

눈물겨운 너에게

 

- 이정하

 

나는 이제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하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사랑하다 그 사랑이 다해 버리기보다,

한꺼번에 그리워하다

그 그리움이 다해 버리기 보다,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해

오래도록 그대를 내 안에 두고 싶습니다.

아껴가며 읽은 책, 아껴가며 듣는 음악처럼

조금씩만 그대를 끄집어내기로 했습니다.

내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인 그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지워지지만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영원히 남아 있길

간절히 원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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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1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4-11-1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 글쎄요. 저도 그 점이 궁금하긴 하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래도 가끔은 시를 읽으면 한 편의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큰 울림이 있을 때도 있더군요.
 

 백원담, '살아간다는 것' 해설

   중국의 문호 노신은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제자이자 연인 허광평에게 이런 편지를 적어 보낸 적이 있다.


   인생이라는 장도에는 큰 난관이 두 개 있다.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가 그것이다. 갈림길에서는 묵적 선생도 통곡하다 돌아갔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우선 갈림길 앞에 앉아 쉬거나 한숨 자고  괜찮을 만한 한 길을 택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가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음식물을 달라 해서 허기를 달래되, 길을 묻지는 않으련다. 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호랑이라도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놈이 배고픔을 참다못해 제 갈 길을 가면 그때 내려올 것이고, 끝내 가지 않는다면 나무 위에서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혁대로 몸을 꽁꽁 묶어두고 시체마저도 놈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놈에게 잡아먹히긴 먹히되, 놈을 한입 물어뜯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으로 완적 선생도 대성통곡을 하고 돌아갔다는 막다른 길에서는 갈림길에서처럼 성큼 걸어갈 것이고, 가시밭길이 가로막는다 해도 여전히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온통 가시밭뿐이어서 결코 갈 수 없는 길은 분명 한 번도 맞닥뜨려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본래 막다른 궁지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다행히도 그런 지경에 데이지 않았거나.


   갈림길과 막다른 길. 노신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지경을 이 두 개의 난관으로 집약하였다. 특히 막다른 길에 대해 온통 가시밭길뿐이어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그런 간 데 없는 지경은 한 번도 닥쳐본 적이 없노라고.


295-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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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토요일 오후 3시

- 나는 남포동에 있었다. 공부방 교사 모꼬지가 있는 날이었다. 3시 정각! 다들 어디에 있다 나오는 것인지 모두 제 시간에 모였다.(한 분은 늦게 오신다고 해서 세 대의 차 중에서 한 대만 남고 출발했다.)

O 토요일 오후 4시 30분

- 우리의 목적지인 콜핑하우스에 도착했다. 가는데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통도사 출구를 놓쳐서 언양까지 돌아갔다가 왔다. 통도사 맞은 편에 있는 콜핑하우스로 가는 길은 절경에다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했다. 콜핑하우스도 생각보다 깔끔하고 주변 경관도 아주 좋았다.

O 토요일 저녁 7시

- 저녁을 먹었다. 공부방 수녀님들이 준비해 오신 무농약 상추, 시금치, 배추를 비롯해서 각종 야채와 구이용 삼겹살, 대하, 해물까지 곁들여서 잊을 수 없는 맛난 저녁이었다. 군고구마도 만들고 포도주도 곁들였다. 밖은 조금 쌀쌀하기는 했지만, 무수한 밤하늘의 별과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로 행복했다.

O 토요일 저녁 9시

- 수녀님들은 돌아가시고 선생님들만 남았다. 적당히 배도 부르고, 가벼운 술잔을 곁들여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도 이야기를 했다. 부자 열풍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영화 이야기, 사업 이야기... 많은 이야기로 밤은 아주 깊어 갔다.

O 토요일 저녁 12시

- 밖에서의 자리를 정리하고 방안에 들어와서 앉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게임은 사람을 금방 친하게 하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되어도 피곤한 줄 몰랐다.

O 일요일 새벽 3시

-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방안은 너무 더워서 혼자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O 일요일 아침 8시

- 눈을 떴으나 며칠간의 피로가 쌓인 탓인지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다. 남들은 식사준비로 바쁜데 방안에 들어가서 눈을 좀 더 붙였다. 나중에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잠이 부족한 건 곤란한 일이다.

O 일요일 아침 10시

- 비몽사몽의 두 시간이 지나고 잠을 깨어 다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여전히 푸짐한 식탁. 다른 선생님들 덕분에 맛난 아침을 먹었다. 식사 준비를 못한 탓에 열심히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O 일요일 오전 11시

- 콜핑하우스를 나와 통도사로 갔다. 통도사는 갈 때마다 가고 싶지 않은 절이다.(그렇지만 너무도 자주 가게 된다.) 통도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정말 거기에 스님들만 살지 않는다면 '시장'일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통도사 앞의 그 많은 모텔들은 또 어쩌자는 것인지...

O 일요일 오후 14시

- 집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타니 금방 부산에 왔지만 동아대학교에 잠시 들러와야 했기 때문에 정작 집에는 조금 늦게 왔다. 서둘러 좀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3시, 박OO 선생님의 결혼식이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또 차를 몰고 나왔다.

O 일요일 오후 3시 30분

- 예상대로 결혼식에 늦었다. 근처에는 일찍 도착했으나 지독하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주차할 곳을 찾지 못했다. 주차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거의 최악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신부와 눈인사를 나누고 학급운영모임의 선생님들과도 만났다.

O 일요일 오후 5시

- 송정에 도착했다. 바닷가에 왔으나 별다른 감흥이 없다. 오늘은 감흥을 느끼기엔 너무 피곤했나 보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본다고 했다.

O 일요일 오후 7시

- 해운대 스펀지에서 주홍글씨를 보았다. 영화는 내용을 두고 글을 써 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많이 피곤했으나 졸지 않고 다 보았다. 그 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몸은 아주 힘들었다.

O 일요일 저녁 10시

- 다시 다른 선생님들을 모시고 예식장 근처로 왔다. 각자의 차가 근처의 할인점에 주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짧았지만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모두 헤어졌다.

O 일요일 저녁 12시

- 피곤으로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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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09: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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