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는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거의 몇 년 만에 병원에 간 것이다. (물론 사랑니 뽑았던 거 말고) 지금껏 살면서 크게 아파 본 적 없이 살아서 병원이란 곳은 나에게 너무 낯선 곳이다. 아파도 미련하게 그냥 참고 버텨왔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조금씩 나은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지금껏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틴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몸이 좀 힘들었다. 사실, 아프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29일이었으니 한달도 훨씬 넘었다. 주기적으로 오한과 콧물, 마른 기침을 반복하면서 지금껏 전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어제 공부방 어린이날 행사에 갔다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집에 일찍 오기까지 했다. 어제 하루 종일 끙끙 앓았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마침 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지갑을 두고 갔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와서 옷을 갈아 입고 좀 뒹굴거리다가 4시 30분이 마감이라는데, 끝까지 미적거리다가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했더니 먼저 온 사람들이 15명은 넘었다. 병원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하기야 하도 병원이란 곳을 가  본 적이 없으니...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3분 정도 진찰을 받고 주사를 맞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잘 설명해 주시려고는 하는데, 직업병인지 말씀이 너무 빨라 도통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래도 귀를 쫑긋하며 대충 알아들은 바로는 목감기와 코감기가 심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열이 없는데도 열이 나는 것 같은 증상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처방은 충분한 휴식과 찬 음식 주의하기!

   간단히 주사를 맞고 약을 타 오는 것으로 한 달을 끌어온 내 감기가 나을런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이렇게 간단하게 낫는다면 너무 허탈할 것 같기도 하다. 주사약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낫는다고 해도 유쾌하지만은 않겠다.

   아무튼 아픈 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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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월요일, 노동절이었다.  우리 학교는 그날부터 시험이라 오전에는 약간 바빴는데, 전화기에서 반가운 이름이 떴다. 녀석들이 작년에 내가 있던 자리인 우리 학교 1층에서 나를 찾은 모양이었다. 3층으로 올라오라고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남은 시간이 20분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문대학을 다니던 녀석이랑 진학을 못한 녀석 둘이서 노동절이라 쉬는 날에 그래도 선생이라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한 녀석은 전문대학을 다니다 이번에 그만두고 삼성자동차 생산공장에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갔다고 한다.(소위 말하는 비정규직이다.) 다른 녀석은 친구랑 같은 회사를 다니는데,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서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란다. 

   저희들 둘, 사는 이야기를 묻고, 내가 들은 다른 녀석들의 소식도 대충 전해 주고, 또 녀석들을 통해 다른 녀석들의 소식을 전해 들으니 시간이 후다닥 가버렸다. 나는 곧 시험 감독이 있어 일어서야 해서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그런저런 이야기 끝에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한 녀석이 모터쇼 초대권을 슬그머니 내 놓았다.(한 녀석은 그 회사 직원이니 아마 사원에게 지급된 초대권일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스승의 날은,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찾아뵙기 힘들거 같아서 쉬는 날 미리 찾아온 거란다. 그것도 1년에 딱 한 번 있는 노동절에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감독을 하면서도 내내 그 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녁에 한 녀석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저희들 댁에 초대 한 번 안 해 주십니까?> 아! 맞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저녁 한 끼 먹기로 했었지. 여태 그 약속을 못 지켰네. 이렇게 답 문자를 보냈다. <미안해. 알았어. 내가 날짜 잡아서 바로 연락하마.>

   나는 참, 무심한 선생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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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6-05-0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에 딱 하루 쉬는 노동절에 옛 선생님을 찾아뵙는 제자를 둔 느티나무님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2006년 4월은 나를 지독하게 짝사랑한 '감기'라는 녀석 때문에 늘 시들시들거렸다. 이젠 5월도 시작되었으니 이 녀석의 스토킹을 철저히 막아주어야 겠다. (나로서는 이렇게 아팠던 적은 태어난 후처음이라 좀 당혹스럽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서 되돌아 볼 여유가 있으니 다행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무엇이 있으려나,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문조회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들까 한 개도 없다.(사실은, 아이들에게 사 주는 책은 제외하고!) 그럼 한 달 동안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말인가, 싶어서 어이가 없었다.(가방에 책은 매일 넣어다니는데... 이상하네?)

   다시 생각해 봐도, 4월은 집에 오면 몸져 눕기 바쁜 시간들이었다. 내 인생에 앞으로 다시 못 올 시간들, 이제는 안녕! 읽은 책은 달랑 두 권 뿐인가?(예전에 읽다가 그만두었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 어린이와 평화 - 이라크에서는 아직도 전쟁 중이지, 하고 깨닫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내게 사랑한다는 말의 '책임'이 무엇인지도 일깨워준 책. 동년배일 박기범이라는 작가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 허삼관 매혈기 -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책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다.

 

[아이들과 2006년 4월에 함께 읽은 책]

 

 

 

 

  • [열 두 번째]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사이시옷/십시일반(2006년 4월 14일) - 열 두 번째 모임은 정말 최고였다. 숙제는 세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이 받은 차별이나 인권 침해 사례 발표하기. 그리고 모둠별로 상황극 꾸미기였는데, 이날은 아이들의 능력이 참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날이기도 하다. 무지 기분이 좋고 들떠서 행복했던 날이었다.

 

  • [열 세 번째] 허삼관 매혈기(2006년 4월 24일) - 중간고사 준비하느라 아이들이 많이 안 왔다. 그래도 모임은 그대로 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했다. 아이들에게 부담을 적게 주려고 당일날 숙제를 발표했던 게 화근이었다. 전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렇게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걸 확인한 날이었다. 이 날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숙제를 주변에서 '허삼관'과 비슷한 인물을 찾아 이유를 설명하고 발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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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교시 학급회 시간,

우리반 아이들 모두랑 꼭지점 댄스 추면서 놀았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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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4-15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구경하고 싶다... 난 댄스는 죽었다 깨나도 안되던데...혹시 사진이나 동영상 찍어둔 거 있으면 보여주3 특히나 그반 녀석들은 내가 좋아하잖아요~ㅋㅋ

느티나무 2006-04-1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 교실에서죠. ㅋ 동영상은 애들이 찍었을테고.. 노래는 전화기를 프로젝션 TV에 연결하면 크게 나와요 ^^ 모두들 운동장으로 가자고 하던데..
 

   모꼬지로 배내골과 경주, 감포 앞바다를 다녀왔습니다.

   토요일, 4년만의 최악이라는 황사 바람도 우리들의 출발을 막지 못했지요. 복잡한 사정으로 아홉산 숲 탐방이 무산되어 아쉬움이 컸으나 그래도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아홉산은 다음에 더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가기 위해 남겨두어도 좋겠지요.

   사무실에서 김OO, 이OO, 홍OO샘, 그리고 느티나무. 이렇게 속닥하게 넷이서 12시 30분에 배내골로 출발했습니다. 처음 목적지는 밀양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망향정(?)이었어요. 호포를 지나 물금, 원동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꽃비가 내리고 있을 때 달려 갔습니다. 김광석의 명곡들이 흐르는 차 안에서 창 밖으로 내다본 낙동강의 모습까지! 다 좋았는데, 황사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었던 게 무척 아쉬웠습니다.

   본격적인 배내골로 들어서서는 주변의 매화와 벚꽃으로 더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다만 도로가 확장 공사중이라 울퉁불퉁 길을 달리게 되어, OO샘의 '주/쭈(?)'가 좀 고생을 했습니다. 밀양댐 가는 길로는 절벽 곳곳에 핀 진달래 때문에 즐거웠습니다. 밀양댐 근처에 도착해서 밀양댐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파래소폭포로 갔습니다.

   배내골 한 중간에 있는 파래소폭포는 신불산자연휴양림에 주차를 하고 한 30분 정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오솔길을 걸어 가는 동안에도 곳곳에 핀 진달래와 생강나무들 때문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물도 맑아서 날씨만 아니었다면 뛰어들었을 겁니다. 모두들 폭포 주변에 편하게 앉아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폭포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다음은 석남사 쪽으로 나와서 통도사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들꽃으로 이름난 서운암에 들르기 위해서지요. 어렵게 통도사까지 왔으나, 서운암으로 오르는 길을 못 찾아 헛걸음을 하고 말았답니다. 저희들은 통도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줄 몰랐거든요. 다음에 이 곳 지리를 잘 아시면 같이 가요. (OO샘이 가까운 곳에서 자는 게 어떠냐고 했으나, 제가 억지를 부려서 경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경주까지는 생각보다 차가 많이 밀리더군요.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고속도로를 지나서도 보문단지로 들어가는 차들이 너무 많아서 저희들이 숙소로 잡은 감포까지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감포로 가는 중간에 꼭 밥을 먹고 싶었던, '어일'이라는 곳에 유명한 '감포식당'도 밥이 다 떨어졌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고, 감포 바닷가에 도착해서도 숙소를 잡는 게 쉽지 않아 고생 좀 했습니다.

   감포에서 아래로 봉길해수욕장까지 내려가서 괜찮은 민박집을 구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뒤에 오시기로 한 김OO, 장OO, 황OO샘이 민박집 근처에 도착하셨다는 연락이 왔구요. 잠깐 정리를 하고 맥주를 가볍게 한 잔 했습니다. 늘 모이면 이야기가 마르지 않던 우리 모임이건만 그 날은 어찌된 영문인지 이야기가 좀 짧게 끝났습니다. 다들 몸이 무겁고, 아픈 사람도 많았던 탓이었나 봅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고, 서둘러 시내를 둘러본 다음에 빨리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일찍 일어나신 선생님들은 일출을 보셨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지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찾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아침을 '왕후의 밥' 같은 컵라면으로 먹고, 서둘러 민박집을 나섰습니다. 날씨가 제법 차서 마음도 좀 우중충했습니다. 감포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고, 감은사지로 갔습니다. 감은사지는 공사중이었으나 말로 꾸며낼 수 없는 웅장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제법 이른 시간에 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았나 싶은데, 새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대종천을 따라 장항리 절터로 올라갔지요. 장항리 절터는 토함산 동쪽 기슭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폐사지를 그냥 지명이름을 따 장항리 절터라고만 부른다네요. 장항리 절터엔 언제봐도 휜칠하게 잘 생긴 오층 석탑이 있습니다. 개미들이 들락거린 흔적인지는 몰라도 얼금뱅이처럼 돌의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렸어요. 그래도 이만큼 아름다운 탑을 찾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탑입니다. 탑신의 조각도 선명하구요. (가장 경주를 잘 나타내는 유물로 국립경주박물관장이었던 최순우 선생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라고 하죠)과 진평왕릉, 그리고 장항리 절터의 5층 석탑을 꼽았다고 하더군요.) 역시나 폐사지는 휑뎅그레한 맛에 가는가 봅니다. 날이 약간 쌀쌀한 게 딱 무너진 절터를 돌기에 좋았습니다.

   토함산을 넘어 불국사로 난 길에 벚꽃과 목련과 개나리는 또 어찌나 활짝 피었던지. 모두들 원색의 화려한 꽃들은 처음보는 사람들처럼 넋을 놓고 봤다니까요. 오히려 약간 막히는 도로가 고맙기까지 했어요. 시내로 들어오다 중간에 잠깐 전(傳) 신문왕릉에 들렀습니다. 신라왕릉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격식과 위엄을 갖춘 능인데, 이 능에 운치를 더해 주는 게 능을 지키는 소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렸는지 비실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까치는 그 위에다 집을 떡 하니 지어놓고 사는 거 있지요?

   12시에 부산으로 출발하기로 한 약속을 무슨 중천금처럼 여기며 서둘러 도착한 곳은 최제우가 동경대전을 썼다는 용담정이었습니다. 검지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든 최제우가 앞으로 걸어가려는 모습을 한 동상을 보며 꼭지점 댄스를 떠올린 저희들에게 용담정은 동학의 성지가 아니라, 참 예쁜 정원처럼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가을에 용담정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아직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용담정의 꽃나무를 보며 가을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용담정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 아래 가게도 없이 허름한 난전에서 사 먹은 부추전이었습니다. 패밀리 크기의 피자만한 부추전이 단돈 삼천원이었는데, 부실한 아침을 먹은 우리들은 부추전 두 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어요. 방금 부추전이라는 글을 쓰는데도 그 때의 달콤한 기름냄새가 느껴집니다. 정직한 맛이었어요. 얄팍한 술수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원재료의 맛을 잘 살린 부추전이었어요. 진짜 맛있는 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모임 선생님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으로 내려온 길은 좀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게다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건천에서 경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도 꽤 막혔거든요. 그래도 부산까지 오는데 별로 힘들지는 않았어요. OO동 근처에서 주꾸미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약간 맵긴 했지만, 최악은 아니었어요. 회비로 낸 돈이 약간 모자랐으나 총무님이 해결하시는 것 같았어요.(다들, 총무의 마인드가 안 되어 있다며 구박 아닌 구박을 하더군요. 담부턴 그러지 마세요. ^^)

   다른 일행들은 모두 잘 들어가셨나 모르겠어요. 저는 집에 오자마자 밀린 청소는 밀쳐두고 잠이 들어서 늦게 일어났습니다. 뭔가 아쉬움이 가득한 모꼬지였다 싶다가도, 그래도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움직이는 게 좋겠단 생각입니다.

   그냥 요즘에는 별 욕심은 안 생기고, 그냥 힘든 시간,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만 듭니다. (제가 밤무대를 다시 나간지가 이제 8년째인데, 거기서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마도 거기서 옮긴 게 아닐까 싶은데...) 잘 나가면 잘 나가는 대로, 힘들면 또 힘든 대로 그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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