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기 저 산, 달 뜨는 산!
강진에서 무위사로 들어가는 길, 오른편으로 우뚝 솟은 저 산, 월출산이다. 월출산은 두 번 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달이 떠 있을 때- 영암에 내려 산에 올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산세 험한 월출산 능선이 처져 내려간 곳 아래에 있는 소담한 절, 무위사로 향했다.
남도 어느 들에나 마늘싹들이 올라와 파랗지만, 월출산 아래 들판은 더욱 파래 보인다. 봄이 여기쯤에 이미 와 있나 보다.
무위사 극락보전(정면)
검박하고 단정한 건물이다. 이 집에서 풍겨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은 절 안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다. 고려 시대 건물인 수덕사 대웅전이나 부석사 조사당을 많이 닮은 맞배지붕 겹처마에 주심포 집인데, 세종 12년(1430)에 지어졌다.
비탈진 지세를 따라 앞쪽에만 얕은 축대를 쌓은 기단 위에 아무 조각도 없는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워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이다. 정면의 가운데 칸이 양 옆 칸보다 오히려 조금 좁은 것이 특징이다. 또 전체적으로 보아 기둥 높이에 비해 기둥 사이 간격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측면)
한 점의 허세나 치장, 허튼 구석 없이 단정한 그 모습은 무위사(無爲寺), 인위나 조작이 닿지 않는 맨 처음의 진리를 깨달으라는 절 이름과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이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담담하고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을 어느 곳보다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여느 절처럼 여기도 공사중이었고, 극락보전 앞에 소박하던 화단도 없어져 버렸다. 아쉽다.
백련사 동백숲 속, 부도
백련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 물론 동백숲이다. 절을 애워싸듯 1,500여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앞의 숲도 대단하지만 백련사 사적비에서 더 서쪽으로 가서 허물어진 행호토성 너머에 펼쳐지는 동백숲은 더욱 장관이다. 이곳의 동백나무들은 해묵어서 둥치가 기둥만큼이나 굵다. 잎이 짙어서 침침한 숲속 여기저기에는 단정한 부도 네 기가 흩어져 있다. 3월 말을 전후한 꽃필 철이면 이 동백숲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또 그 무렵이면 백련사 앞길 가에 붉은 밭흙과 새파랗게 자라 올라오는 보리 그리고 샛노란 유채꽃이 저마다 선명한 색으로 어우러지고 길가 집의 흰둥이, 누렁이까지 어울려 정다운 '고향의 봄'을 이루곤 한다.
나는 유채꽃, 흰둥이, 누렁이는 못 봤지만 어둑어둑한 숲 속에서 바람따라, 후두두둑, 부도 앞으로 떨어지는 동백꽃만 보고 있어도 감동적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산초당에서[丁石]
초당도 없고, 다산도 없고, 고요함도, 유배의 고통과 외로움도 없었다. 12년 전에 대학 동기 녀석이랑 이 곳에 들렀을 때-그 때도 2월의 끝무렵이었다-와는 너무 달랐다. 동네 앞 수퍼에서 겨우 방을 얻어 잠을 잤었는데... 아, 그리고 그 때는 아무도 없었지(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던 수퍼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요즘 행복하실까?). 다산이 유배지를 떠나오기 직전,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새겼다는 글씨에서 그 결기를 읽을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