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진복이가 어제 수술을 받았다. 지난 20일에 수술 날짜가 잡혔었는데, 한 나흘 전부터 감기가 왔는지 열이 올라서 정해 둔 수술 날짜를 미뤘다. 그래서 다시 잡은 날이, 1월 30일, 바로 어제였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차곡차곡 준비해 온 덕분에 29일 오전에 서울로 편하게 올라왔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진복이가 계속 잤기 때문에 좀 편했다. 입원 시간이 오후 3시 이후라 서울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했다. 녀석은 모든 게 신기한 지 환자복을 입고도 복도를 내내 신나게 걸어다녔다.(지나다시는 분들이 귀엽다고 다들 칭찬해 주셨다.)

   아내와 나는 한 열흘 정도의 입원 생활을 각오하고 왔는데, 전날 밤에 의사 선생님을 면담해 보니 그 정도까지는 걸리지 않겠다고 하셨다.(요도하열이 심하지 않아서 5-7일 정도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야 할 시간. 진짜 힘든 건 이때부터였다. 4인실에 배정을 받았는데, 밤새 진짜 힘들었다. 같은 병실의 다른 분들은 입원 생활이 익숙하신 지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부스럭거리고, 코를 골고, 전화벨이 울리고(옆에 계시던 할머님의 전화기가 압권이었다. - 한 시간 간격으로 "O시 입니다."라는 알람이 계속 울렸다.) 새벽엔 애기가 빽빽 울었다. 

   우리 가족은 좀 어리숙하게 구석에서 쥐죽은 듯이 지냈다. 저녁에 그렇게 걸어다니던 진복이도 밤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그럭저럭 잘 자는데, 예민한 아내는 거의 잠을 못 자고, 잠귀가 아주 먼 나도 잠을 한숨도 못 잤다.(또 새벽 6시부터 금식이라 5시 반에 일어나 분유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예상 수술 시간은 오전 12시. 아침부터 하나하나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당연, 금식은 새벽부터 시작되었고, 오전에는 수액을 손에 꽂았다. 꽂는 내내 많이 아팠는지 꽤 울었다. 11시 30분에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다. 녀석은 수술실로 가는 내내 불안한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자꾸 보챘다. 나는 마취실 앞에서 아내와 진복이만 남겨두고 왔다.

   오후 3시 30분. 수술이 끝나고 회복시간을 거쳐 입원실로 이동한다는 방송이 나와서 반사적으로 달려가 보니 진복이가 약간 멍한 상태로 우리를 쳐다 봤다. 생각보다 훨씬 씩씩했다. 거의 병실에 와서야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날 밤의 고통 때문에 1인실로 옮기면 좋겠다고 했는데, 오전에는 없다고 하더니 진복이가 수술실에서 나오니까 바로 1인실이 생겨서 그리로 옮겼다.(수술하고 난 밤에 진복이가 힘들어 할 걸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폐가 많을 것 같았다.)

   전신 마취 수술하고 나서부터는 폐가 마취 상태에서 깨어나도록 하기 위해 계속 가슴과 등을 두드려줘야 열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팔이 아프도록 두드렸다. 진복이도 바짝 입술이 타고 볼이 벌겋게 상기되어서 힘들어했다. 유모차에 태워 복도를 거닐기도 하고 침대에 앉아서 등을 토닥토닥해도 기분이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진복이가 저녁부터 계속 끙끙거리고 힘들어했다. 또 저녁 때까지 소변을 보지 못해서 결국 담당 의사가 왔다. 수술한 부위를 붕대로 감아뒀는데, 붕대가 너무 꽉 조여서 피가 안 통했는지 수술 부위가 새까맣게 변했다. 의사가 붕대를 칼로 잘라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씩 색깔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결국 소변이 안 나와서 소변줄을 꽂으려다 오줌 구멍이 작고 애기가 힘들어해서 그만 뒀다.

   새벽 1시에 다시 소변을 보는 지 점검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소변줄을 꽂기로 했다. 의사는 1시 반에야 왔고, 여전히 소변은 안 나왔다. 진복이는 배에 오줌이 가득 차서 빵빵했다. 의사가 아랫배를 살짝 눌러주자 오줌이 비치기 시작했다. 다시 더 지켜보기로 했다. 새벽 2시 반에 진복이가 울면서 조금 소변을 봤다. 조금 시원해졌는지 울음도 그치고 잠이 들었다.

   한밤 중에 여러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선 진복이가 소변을 못 봐서 다시 수술실로 가는 내용도 있었다. 악몽이었다. 아침 8시. 일어나니, 같이 일어났던 아내가 진복이의 기저귀를 살피더니 오줌을 어찌나 많이 봤는지 기저귀가 흥건하다고 반색했다. 이제, 다행이다.

   녀석의 얼굴색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입술도 조금 촉촉하다. 이후로는 계속 오줌을 본다. 아침을 먹이고 오전부터는 계속 병원 복도를 산책했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하지 않는 평소 모습 그대로다. 음, 오늘은 그게 좀 고맙기도 했다. 수액과 무통 주사를 달고도 씩씩하게 잘 다닌다. 덕분에 아내와 나도 한시름을 덜었다. 진복이에게 음악도 틀어주고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오후에는 부산에서 오신 장모님이 진복이를 많이 봐 주셨고, 진복이가 자는 동안에, 아내와 나는 이틀 동안 못 잔 잠을 잤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 교수님의 회진 시간. 진복이 상태가 좋다시며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내일 그냥 퇴원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2월 3,4일에나 퇴원할 줄 알고 미리 기차표를 샀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그냥 기분이 멍 했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저녁에도 진복이는 방안에 있는 걸 싫어하고 유모차를 타고 복도를 다니는 걸 좋아했다. 며칠 있다 보니까  가까운 곳은 싫증을 내고 해서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녀석이 수술했던 곳 근처에도 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10시 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직 퇴원이 행정적으로 시작된 건 아니지만 담당 교수님이 퇴원하라고 하셨으면 아침에 준비를 해서 12시 전후로 퇴원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조금 전에는 지금껏 돌봐 준 간호사들에게 과일을 깎아서 돌렸다. (아내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고 조금 불만이 있었다.) 낮에 잠을 잤더니 아내와 나는 잠을 못 자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껏 진짜 힘든 과정을 잘 버텨주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는 진복이가 대견하고 고맙다. 태어났을 때는 직장에 있느라 자주 못 가봐서 우리 애가 얼마나 씩씩한 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계속 같이 있으니까 얼마나 대견스러운 지... 마음이 뭉클하다.(태어나서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백절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번에 보니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쉽게 잠 못 드는 밤이지만, 이젠 자야겠다. 내일은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조금 불편한 건 오늘 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08-02-01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어린 진복이가 수술이라니 정말 큰일이 있었네요. 진복이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짠합니다. 두분도 몸과 마음 모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그래도 수술이 잘 됐고 생각보다 빨리 퇴원한다니 수술경과도 아주 좋은 것이겠죠? 그래도 다행이예요. 이제 아프지 마라 진복아!

느티나무 2008-02-02 13:34   좋아요 0 | URL
네, 보통은 열흘 정도 입원하고 심한 경우는 보름 정도? 좀 상태가 가벼운 상태는 5-7일 정도 입원한다는데, 진복이는 뭐 어찌된 셈인지 그냥 나흘만에 나왔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을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드팀전 2008-02-0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큰 일이 있었군요.어린 진복이가 잘 해내서 정말 다행입니다.내용을 보니까 한 동안 쉬를 못했나봐요...
예찬이도 지난 주에 수술을 했답니다.사실 수술까지는 아니구요...기저귀 안간다고 도망가다가 의자에 꿍해서...눈 꼬리 옆을 5바늘 꿰맸어요...아이가 움직이면 안된다고 해서 아내와 둘이 아이의 팔다리를 꼭 잡고 있는데...울면서 '엄마..아빠' 하는데 가슴이 아프데요.하얀 살결 사이로 실이 서걱 서걱 오고 가는 모습도 마음아팠어요........어제 실밥을 뽑았는데 생각보다 흉이 커보이지 않아서 한숨 놓았습니다.(사실 잘 모르니까 약 잘발라줘야지요)

느티나무 2008-02-02 13:36   좋아요 0 | URL
예찬이도 다쳤네요. 맞아요, 아기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서 팔다리를 잡고 있으면 아파서 버둥대는 녀석의 마음이 전해져서 부모 마음도 내려앉지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없어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노아 2008-02-02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복이가 큰일 치렀군요. 수술이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씩씩한 진복이에게 상이라도 줘야겠어요. 느티나무님도 고생 많으셨어요ㅠ.ㅠ

느티나무 2008-02-02 13:37   좋아요 0 | URL
씩씩하다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퇴원할 때는 이 녀석이 간호사들에게 '살인 미소'를 날리니까, 간호사들이 진복이가 귀엽다며 안아줬거든요. 녀석은 또 입이 헤벌레 해가지고...ㅎ 아무튼 부산에 잘 와서 푹 자고 오늘은 집에서 잘 놀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마노아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