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2006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7-06-11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좋아하는, 을 읽는 내내 사랑을 놓치다,라는 시집이 생각났다. 둘 다 좋은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드팀전 2007-06-1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진복이닷...

느티나무 2007-06-1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토피로 고생 중입니다. 입 주변이 벌겋습니다. 별로 가렵지는 않은가 본데, 계속 침을 흘리니 연고를 발라도 그 때뿐이고, 소용이 없네요. 녀석, 늘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닙니다. 안녕하세요, 드팀전님?

드팀전 2007-06-1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흘려서 생기는 건 아토피가 아닐 수도 있으니 꼼꼼히 알아보세요.
어제 저희집은 난리였습니다.아이가 밤에 30분 간격으로 깨면서 울고 비비고..짜증내고ㅜㅜ
불쌍한 녀석 같으니...
아토피를 뱀 독 빨듯이 쏙 빨아서 퇘퇘 내뱉고 싶다니까요..

느티나무 2007-06-11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병원에서는 아토피성이라고 하면서... 침을 안 흘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던데... 벌건 기운이 점점 번지던걸요. 아기가 고생이 많네요. 물론 부모님들께서도 함께 고생하시구요. 키워놓으면 이 고생한 거 다 알려나?ㅠㅠ<저도 잘 몰랐으니, 녀석들도 잘 모르겠지요?>

푸른나무 2007-06-11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귀엽다. 느티나무님 닮았네요. ^^ 어쩌나요. 아토피...

느티나무 2007-06-1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그냥 기다리고 심해지면 병원 가고, 자주 산책 나가서 바람 쐬면 나아질까 싶어요^^ 저는 저렇게 귀여운 얼굴 아닌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