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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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passio)'이 아니라 '감정(sentiment)'이라는 어간으로 동정이란 단어가 형성된 언어에서 이 단어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나쁜 감정, 혹은 저급 감정을 지칭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어원이 발휘하는 비밀스러운 힘에 의해 이 단어는 또 다른 후광을 받아 보다 넓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co-sentiment)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soucit, wspolczucie, Mitgefuhl, medkansla)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37쪽

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 아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인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79쪽

그녀는 그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오류에 근거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날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던 <<안나 카레니나>>는 토마시를 속이기 위해 그녀가 사용했던 가짜 신분증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 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 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왜냐하면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하던 중 삼십 초쯤 말을 멈추었던 둡체크 같았고, 말을 더듬고 숨을 돌리고 말을 잊지 못했던 그녀의 조국과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약자다.-133쪽

프란츠의 아버지가 느닷없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어느날 문득 어머니 혼자 남게 되었던 것은 그의 나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프란츠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의심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평범하고 차분한 말투로 비극을 감추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자고 아파트를 나오는 순간, 프란츠는 어머니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당황했고,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자존심이 상할까 두려웠다. 그는 어머니의 발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두 시간 동안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걸어야 했다. 그가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155쪽

화가였던 그녀는 프라하 시절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고, 타인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생김새를 구별할 줄 알았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중지보다 검지가 조금 더 길었고 그 손가락을 상대방에게 겨누었다. 하긴 1968년까지 십사 년 동안 보헤미아를 통치했던 노보트니 대통령은 저 남자와 똑같이 미용실에서 파마한 회색 머리였고 중부 유럽 모든 주민 중에서 가장 긴 검지를 뽐낼 수 있었다.-163~164쪽

그들은 함께 오랫동안 뉴욕을 거닐었다. 환상적인 경치 사이로 꾸불꾸불 이어진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구경거리가 바뀌었다. 젊은 남자 하나가 인도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예쁜 흑인 여자가 나무에 기대 졸았다. 검은 정장 차림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향악단을 지휘하듯 손을 내저으며 길을 건넜다. 분수의 수반에서 물이 졸졸 흘렀고, 그 주위에 석공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흉측하게 생긴 붉은 벽돌집 벽을 타고 철재 사다기락 달려 있었고, 이 집들은 너무 추한 나머지 그 추함 때문에 아름다워 보였다. 그 벽돌집 아주 가까이에 거대한 유리 마천루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 탑, 회랑, 금빛 기둥이 있는 조그만 아랍풍 궁전이 꼭대기에 있는 또 다른 건물과 이어졌다.-169~170쪽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은밀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187쪽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202쪽

테레자는 그녀가 가족과 어떻게 살았는지 표현하기 위해서 거의 유년기부터 이 단어를 사용했다. 집단수용소, 그것은 밤낮으로 서로 뒤엉켜 사는 세계였다. 잔인성과 폭력은 이 세계의 부수적 (전혀 필연적이지 않은) 측면에 불과했다. 집단수용소, 그것은 사생활의 완전한 청산이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며 토론할 때 자기 집에서조차도 (그것이 치명적 실수였음에 틀림없다!) 안전하지 못했던 프로하즈카는 집단수용소에서 살았던 것이다. 어머니 집에 살던 시절의 테레자는 수용소에서 지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수용소란 아주 예외적인 것, 놀랄 만한 것도 아닌 뭔가가 주어진 조건, 뭔가 근본적인 것,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있으며 온 힘을 다해 극도로 긴장했을 때만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222쪽

그녀는 나무를 껴안고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그녀가 잃었던 그녀의 아버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그녀의 증조, 고조할아버지,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을 통해 그녀에게 뺨을 대 주기 위해 아득히 먼 시간의 심연에서 온 무한히 늙은 남자인 것 같았다.-246쪽

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 보니 이 익명성이 나라에 아무런 위험도 주지 않은 채 그냥 스쳐 지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거리나 집이 어느 하나 원래 이름을 되찾지 못한 것이다. 보헤미아의 온천 도시가 하루아침에 상상 속의 작은 소련으로 변했고, 테레자는 그들이 이곳으로 찾으러 왔던 추억이 압수당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도저히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없었다.-272-273쪽

중부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오로지 범죄자들의 창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진리를 어둠 속에 은폐하고 있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헀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며 이 길을 용감하게 지켜 왔다. 훗날 이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광신자들은 살인자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밝혀졌다.-287쪽

1950년대 초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선고가 언도되기를 요구했던 체코 검사가 실은 러시아 비밀경찰과 정부에 기만당했다고 해 두자. 그러나 그 기소가 허무맹랑하고, 피고가 결백하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지금, 검사가 자신의 마음만은 순수했다고 강변하며 가슴을 칠 수 있을까. 나는 양심에 한 점의 가책도 없어, 난 몰랐단 말이야, 그렇다고 믿었어! "난 몰랐어! 그렇다고 믿었어."라는 바로 그 말 속에 돌이킬 수 없는 그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까?-288쪽

수많은 여자를 추구하는 남자는 두 범주로 쉽게 나뉠 수 있다. 한쪽은 모든 여자에게서 자기 고유의 꿈, 여자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찾는다. 다른 쪽은 객관적이 여성 세계가 지닌 무한한 다양성을 수중에 넣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324쪽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은 그와 다른 여자와의 사랑이 끝났던 시점에서 정확하게 시작되었다. 그 사랑은 그를 여자 사냥에 나서게 했던 필연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테레자의 그 어느 것도 들춰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완전히 드러난 상태인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는 세계의 육체를 열기 위해 사용하는, 그의 상상력의 메스를 채 손에 쥐기도 전에 그녀와 정사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정사 중에 어떠할 거라고 궁금해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이미 그녀를 사랑해 버린 것이다.

사랑의 역사는 그 후에나 시작되었다. 그녀의 몸에서 열이 나는 바람에,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랬듯이 그녀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337쪽

"그보다도 나는 무엇 때문에 내가 이 기사를 썼는지 자문하고 있어요." 토마시는 문득 그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처럼 그의 침대 언덕에 좌초했더랬다. 그렇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찾으러 갔던 것이다. 그는 로물루스, 모세,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순간 불쑥 그녀가 보였고, 빨간 스카프로 감싼 까마귀를 가슴에 끌어안고 그의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 이미지가 마음을 한결 푸근하게 해 주었다. 마치 테레자는 살아있고 이 순간 그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 밖에 다른 것은 전혀 중요치 않다고 그 이미지가 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351~352쪽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것보다 생매장당한 까마귀를 꺼내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그는 이 말이 이해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해졌다. 예기치 못한 돌연한 도취감이 느껴졌다. 아내에게 그녀와 아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던 그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검은 도취감. 의사 직업을 영원히 포기하겠다고 쓴 편지를 우체통에 던져 넣었던 그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검은 도취감.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 그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서명하지 않겠습니다."-353쪽

그러나 작가란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마당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사랑이 고조된 순간 자기 배 속에서 끈질기게 꾸르륵거리는 소시를 듣는 것. 배신하고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배신의 길 중간에서 멈출 수 없는 것. 대장정 행렬 속에서 주먹을 치켜드는 것. 경찰이 숨겨 둔 도청 마이크 앞에서 유머 감각을 과시하는 것 등. 나도 직접 이런 상황을 겪어 보았다. 그러나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그 경계선을 넘어가면 나의 자아가 끝난다.)에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오로지 경계서 저편에서만 소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신비가 시작된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자, 이제 그만 하자. 토마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355~356쪽

똥은 악의 문제보다 더욱 골치 아픈 신학 문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으며 따라서 인류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똥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을 창조한 신, 오직 신에게만 돌아간다.-395쪽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건 정치적 믿음이건 간에 모든 유럽인들의 믿음 이면에는 창세기의 첫 번째 장이 존재하며, 이 세계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모양으로 창조되었고, 존재는 선한 것이며 따라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거기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근본적 믿음을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라고 부르도록 하자.
......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이것은 감상적이었던 19세기 중엽에 생겨나 그 이후 다른 모든 언어에 퍼졌던 독일어 단어다. 그러나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함에 따라 그것이 지닌 원래의 형이상학적 가치가 지워졌는데, 말하자면 키치가 본질적으로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문자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에서 그렇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398~399쪽

공포는 하나의 충격, 완벽한 맹목의 순간이다. 공포에는 모든 아름다움의 흔적이 결핍되어 있다. 오로지 우리가 기대하는 미지의 사건이 내뿜는 광폭한 빛만 보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슬픔이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상정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그들을 기다리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공포의 광채는 휘장에 가리고, 우리는 전보다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만드는 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발견한다.-493쪽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 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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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172
알베르 카뮈 지음, 김예령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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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고전. 그 중 <이방인>으로 시작한 고전 읽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쩌면 뫼르소라면 이런 말조차 부담스러워 했으리라 생각되어서, 이 소설에 '관하여'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다. 담백하게, 유의미한 말만 남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상 일에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종종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것은 현실과 소설세계와의 큰 차이점이리라. 하지만 <이방인>의 뫼르소에게 '이유'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이 소설이 쓰여진 '이유'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고, 뜨겁게 쏟아지는 태양빛  아래 아랍인을 총쏘아 죽인 것은 그저 그렇게 '벌어진 일'이었다. 이웃들이 포주로 여기고 멸시하는 레몽과 친구가 되는 것도, 갈망하는 여인이지만 그녀와의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고, 발가벗은 존재 자체로만 그에게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이다. 관습에 따른 관습으로, 죄와 벌에 앞에서 그럴듯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뫼르소에게 판사는 사형을 구형한다.

   왜 끝내 그는 변명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답답했다. 그는 설마 위선 없는 태도의 댓가로 사형에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두려움이 없는 걸까. 그의 존재는 정직함과 본능만으로 채워져 있는 건가. 이야기의 후반에 이르러서 벼락처럼 쏟아져 내리는 뫼르소의 말들에서, 그 의문이 풀리는 듯하다.

  "그들이 새벽녁에 나를 찾으러 오곤 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의 저녁들을 그 새벽을 기다리는 데 썼다. 나는 기습당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어떤 일이 닥칠 때 그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낮시간에만 약간 자고 밤에는 내내 참을성 있게 창유리로 하늘의 새벽빛이 터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가장 참기 힘든 때는 통상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시간대라 알고 있는 무렵으로 접어들 즈음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동정을 살폈다. 내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를 포착하고 그토록 희미한 음들을 분간해 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게다가 그 모든 시간 내내 발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러고 보면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종종 사람이 완벽하게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늘이 채색되고 새 빛이 내 독방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이 오면, 나는 나의 감옥에서 엄마의 말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간밤에 발소리를 듣지 말란 법도 없었고, 또 만약 그랬다면 내 심장은 터져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비록 아주 사소한 기척에도 문으로 달려가 나무 널판에 귀를 찰싹 붙이고 정신없이 기다리다 잠시 후 나 자신의 숨소리, 마치 개의 헐떡임처럼 으르렁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스스로 놀랄지언정 내 심장은 아직까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24시간을 확보한 것이었다."(203-204)

  죽음 앞에 두려움 없는 것이 아니고, 생의 본능적 감각 앞에 누구보다 민감한 모습인 뫼르소의 모습. 터질듯한 심장을 그러쥔 뫼르소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장면이 주는 감각이 낯익다. 위선도 위악도 없는 뫼르소의, 가장 그다운 모습이다. 사실 내게도 두려움이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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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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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이상해요."
"'이상해요'라니. 이런 신랄한 비평가를 보았나."
"아닙니다. 시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시를 낭송하시는 동안 제가 이상해졌다는 거에요."
"친애하는 마리오, 좀 더 명확히 말할 수 없나. 자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침나절을 다 보낼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바다처럼 말이지!"
"네, 그래요. 바다처럼 움직였어요."
"그게 운율이란 것일세."
"그리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이 움직여서 멀미가 났거든요."
"멀미가 났다고."
"그럼요!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같았어요."
시인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내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바로 그래요."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30쪽

"저를 버리시면 안 돼요. 과부에게 이야기해서 미쳐 날뛰지 말아달라고 해주세요."
"이봐. 나는 시인일 뿐이야. 딸 가진 어머니의 오장 육부를 녹이는 재주는 없다고."
"도와주셔야 해요. 선생님이 그렇게 쓰셨잖아요."

지붕없는 집도 유리창 없는 창도 싫네.
노동 없는 낮도 꿈이 없는 밤도 싫네.
여인 없는 남자도 남자 없는 여인도 싫네.
남녀가 얽혀 그때껏 꺼져 있던
키스의 불꽃을 불태웠으면 좋겠네.
나는야 유능한 뚜쟁이 시인.

"지금 와서 이 시가 부도 수표라고는 말씀 못하시겠죠."-74쪽

시인은 막 태어난 아기를 안아주라는 듯이 마리오의 팔에 음반 재킷을 안겨주었다. 그러고는 펠리컨이 날개를 펄럭이듯 덩실거리면서, 동네 춤판을 주름잡는 장발족 청년들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국의 여인과 시골 처녀들의 따스한 허벅지를 섭렵한 바 있고, 지상의 모든 길은 물론 자신의 시 속의 길까지 다 밟아보았던 두 다리로는 리듬을 맞추었다. 나이 탓에 힘겨워 하면서도 연륜에서 우러나는 단아한 세련됨으로 요란한 드럼까지도 감미롭게 승화시키며 춤을 추었다. 마리오는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78쪽

"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천만에! 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게다가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너무나 민주적인 말이라 감동하겠군. 하지만 아버지가 누군지 가족 투표로 정할 만큼 극단적인 민주주의를 행하지는 말자고."
마리오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가방을 열어 포도주 한 병을 꺼냈다. 네루다가 애호하는 상표의 포도주였다. 네루다는 어쩔 수 없이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이내 동정에 가까운 자애로운 표정으로 변했다.-85쪽

9월 4일 밤 깜짝 놀랄 뉴스가 세계를 휩쓸었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었다. 민주적인 투표로 집권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대통령이었다.-87쪽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 소리.(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제가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한 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절제미가 담긴 무수한 날갯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울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다섯째, 벌집.(거의 삼 분간 윙윙거리는 위험천만한 주음향이 들리고 배경음으로는 개 짖는 소리와 무슨 종류인지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122쪽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녹음의 절정의 순간으로, 큰 파도가 요란하게 모래를 쓸어 가다가 새로운 파도와 뒤섞일 대까지의 소리를 마이크가 매우 가깝게 쫓은 듯하다. 마리오가 내리 쏟아지는 파도 옆을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끼리 절묘하게 섞이는 것을 녹음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곱째, (분명히 긴박함이 깃든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 군.(갓 태어난 아기가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123쪽


하늘의 품에 휩싸인 바다로 나 돌아가노니,
물결 사이사이의 고요가
위태로운 긴장을 자아내는구나.
새로운 파도가 이를 깨뜨리고
무한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때가지,
어허! 삶은 스러지고
피는 침잠하려니.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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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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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밀 아자르, 또는 로맹 가리.

 

  그의 많은 소설들 중에서도 이 책이 가장 좋다. 늘 복닥거리고 혼나가며 살았어도 서로 사랑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늙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보며 눈물 흘리는 모모의 상상은, 거꾸로 흘러가는 세계를 모모가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말들은 뒤로 달리고, 8층에서 떨어진 사람도 살아나서 창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것은 정말로 모든 것이 거꾸로 된 세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 거지 같은 생애에서 본 것 중 가장 멋진 것이었다. 한순간 나는 젊고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의 튼튼한 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를 보다 뒤로 가게 하여 더욱더 예쁘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났다.”라고 말하던 모모.

 

  열네 살의 모모는 시간이 갈수록 늙어지는 로자 아줌마의 약한 모습 그대로를 진심을 품어준다. 다음 대목에서 그 진심이 표현된다. “그녀는 무척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밑에 오줌을 쌌으니 닦아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참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모모의 순수한 사랑은 인종, 나이, 오물, 심지어 죽음까지 넘어선다. 때문에 극한의 고통에 떠는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으며 그를 따뜻하게 품고 사랑해주기까지 한다.

 

  이 아이의 생각을 따라가는 동안, 아름다움과 가치란 무슨 관계인지, 삶과 죽음에 있어서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이지 위대한 가치란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서 잠잠히 드러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세게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다. 세상과 아이에게, 사랑받지 못한 이들에게, 사랑하며 살지 않은 순간들이 미안해서 눈물이 나온다. 


  “사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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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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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신화를 벗겨내고 인간 카를 마르크스를 재발견할 때가 왔다."

 

  내게도 그러한 시간이 주어졌다. 

 

  이 책은 '평전은 지루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인간 마르크스에 부대껴보게 한다. 책의 시작부터,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의 모순된 모습이 그 자체로 마르크스였음을 알리고, 각 장마다 마르크스에 관한 분명한 인상을 심어준다. 늘 싸우고 비꼬고 위압적인 인상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마르크스의 모습은 마치 커다랗고 여기저기 모가 나 있는 고독한 바위와 같다. 특히 마르크스가 사람들과 싸울 때면 놓치지 않았던, 주된 전략인 변증법 역시 흥미롭다. 프랜시스 윈조차도 그의 '사소'하고 '엄청난 정력을 쏟는' 다툼들을 기록하는 동시에, 어처구니없어 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자기만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패배하면 존재의 뿌리가 뽑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해보면, 마르크스의 다툼들을 그 나름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한편으론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세 딸을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귀족적인 숙녀로서의 조건'들을 갖춰주려는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모순이고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저 '인간'임을 느끼게도 한다. "욥만큼 신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욥만큼 고통은 겪고 있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깊은 고통에까지 다다른 사람이라면 '모순'이야말로 일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마르크스는 그 고통 속에서, 필요악으로 보이는 다툼들 속에서, 당대에 작은 이슈도 되지 못한 『자본』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적인 깡패”라고 불리던 마르크스, “욥만큼 신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욥만큼 고통은 겪고 있다”라고 말하던 마르크스. ‘행복’이란 ‘싸우는 것’이고, ‘불행’이란 ‘굴복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적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저 편안하게 하루 이틀 이 책을 읽었을 뿐인데, 다소 거칠지만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친구처럼 다가오는 칼 마르크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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